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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국민들 고통 아랑곳없이 개혁 남발 … 법과 원칙 세울 마지막 보루마저 무너져

  • < 함승희/민주당 의원 >

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필자는 과거 검사시절, 정치 관료 금융 기업 등 사회 발전의 견인 역할을 하는 중심세력에 도사린 수많은 부패현상들과 맞서 끊임없이 싸웠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일은 일회성-단발성으로 끝나고 만 느낌이다. 사회적으로 화제가 되었고 일시적인 파급효과는 있었으나 근본적 해결책은 못 되었기 때문이다.

사회 발전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잘못된 구조적 병리 현상들을 제도적-법적으로 개선할 것을 다짐하고 국회의원이 된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그동안 필자를 포함한 우리 국회는 사회적 병리현상의 개선, 구시대적 체제의 개혁을 위하여 무슨 일을 얼마나 했는지 반성한다.

솔직히 자괴감이 앞선다. ‘나는 열심히 하려고 했지만…’ 하는 식의 변명도 구차스럽기만 하다.

요즘은 신문을 펴기가 두렵다. 어느 한구석 잘 되어간다고 생각하는 분야를 찾아보기 어렵다. 온통 비리, 파행, 독선, 험담, 음해 투성이의 기사들로 지면이 가득 메워져 있다.

이러한 혼돈상태에서 벗어나 국민에게 새로운 가치관을 제시하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는 길은 법과 원칙에 중심을 둔 공권력의 확립과 강한 정부의 구현이라는 소신을 여러 경로를 통하여 수차례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요즈음 우리 사회에서 빚어지는 몇 가지 현상들을 보면 과연 우리 사회에 바로 세울 법과 원칙이 있기나 한지 의심스럽다.



몇 가지 예를 들겠다. 최근 권력 실세의 개입 의혹을 불러일으켰던 한빛은행 부정대출사건에 대한 1심 판결, 경기도지사 뇌물수수사건에 대한 2심 판결, 그리고 이른바 ‘총풍사건’에 대한 2심 판결이 있었다.

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이 세 가지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한 판사 또는 공소유지 담당 검사들은 거의 예외 없이 판결 또는 수사 이외의 방법으로 기자회견까지 자청했다. 그 회견에서는 자신이 한 수사 또는 판결의 정당성과 상대방이 한 판결 또는 수사의 부당성에 대하여 원색적 표현까지 써가며 상대방을 비난하였다.

이 사건들과 관련되었던 정치인들은 한술 더 떠 그와 같은 판결 내용이 마치 확정된 기정 사실 또는 진실인 것처럼 호도하며 정략적으로 이용하는 데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 보면 이와 같은 소행들은 모두 3심급 제도를 두고 있는 우리 사법제도 아래서 명백하게 상급심 판결에 영향을 줄 우려가 있거나 이를 의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이와 같은 판사, 검사 그리고 정치인들의 언행들이 결합하여 법원과 검찰에 대한 국민적 신뢰의 추락을 부채질한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판결 내용이 자신에게 유리하면 용기 있는 판사에 형편없는 검사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문제 있는 판사에 소신 있는 검사라고 평가하는 이중잣대의 문제는 국민을 혹세무민하기에 충분하다. 이러고도 이 사회에 법과 원칙이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것뿐이 아니다. 사법부는 최근 형사재판 실무지침을 통하여 ‘불구속 재판을 원칙으로 하되 국가형벌권의 이완을 막기 위한 과감한 법정구속과 유-무죄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집행유예를 해주는 타협 판결의 지양’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러자 언론과 법조인들은 형사재판의 옳은 방향이라고 쌍수를 들어 지지했다. 그 후 일반 형사범에 대한 법정구속 사례가 증가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그러나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형사 사건들은 왜 한결같이 예외가 되었는지 알 수 없다. 돈 1억5000만원을 받은 죄로 징역 5년의 실형선고를 받고도 법정구속을 면하고, 오히려 돈을 준 오모씨는 검찰에서 구속되어 수개월간 옥살이를 한 황낙주 전 국회의장의 뇌물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김윤환 전 의원의 독직사건도 마찬가지다.

김영삼 정권 시절 최대 의혹사건으로 국민들의 뇌리에 남아 있는 PCS 사업자 선정비리사건에서 당시 권력 실세의 깊숙한 개입 의혹의 열쇠를 쥔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을 배후 실세에 대한 규명이나 거액의 뇌물수수 사실도 밝히지 않은 채 단순한 직권남용죄로 구속 기소한 처사는 이해하기 힘들다.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가 관련된 독직사건에 관한 한 법과 원칙이 지켜졌다고 믿는 국민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법과 원칙의 확립에서 마지막 보루라 할 수 있는 법원과 검찰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다른 국가기관이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는 법과 원칙을 말하기조차 어렵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음으로 강한 정부의 구현은 물리적 힘을 배경으로 한 밀어붙이기식 정책 추진이 아닌, 대단히 유능하고 정치(精緻)한 관료집단에 의해 정책 입안과 추진을 전제할 때 비로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존 제도에 대한 단순 개선의 정도가 아니고, 종래에 없던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는 데 에서는 그 제도가 갖는 좋은 점보다 초래할 수 있는 부작용-문제점-국민 불편사항에 대하여 훨씬 많은 노력과 시간을 할애하여 연구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모든 대비책을 마련한 다음에 입안을 실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개혁 입법이니 구조 개혁이니 하는 미명 아래 밀어붙이기식으로 새로운 제도를 제정하고 집행하는 것은 결코 국리민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새로운 제도가 가져올 부작용과 그에 대한 대책을 얼마만큼 정치하게 헤아릴 수 있는지가 바로 그 공직자나 그 정치인의 능력인 것이다.

의료보험 재정파탄 문제를 예로 들어보자. 의약분업을 개혁정책으로 여기고 강하게 밀어붙였던 사람들은 이 제도만 시행하면 의약품 유통구조상의 부조리를 해소하여 그 부조리 비용만큼 국민적인 혜택을 추가창출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최근 의료보험 재정파탄이 사회문제로 제기되자 의-약업계의 탐욕이 그 주범인 것으로 지목한다.

선무당 같은 관료와 정치인이여!
지난 89년 서울 시내 병원들에 대한 의료보험 사기청구사건을 수사하면서 필자가 목도한 의료보험업계의 구조적 부조리는 의-약업계뿐만 아니라 보험공단이나 손해보험회사측에도 엄청나게 도사리고 있다. 급행료를 주지 않으면 갖가지 핑계를 대어 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마구잡이로 삭감하려 드는 공단이나 보험회사측 일부 직원들의 횡포 역시 20∼30%씩 의료보험 부당 과대청구를 일삼는 일부 의-약사들 못지않게 의료보험 재정부족사태 초래의 주범인 것이다.

또한 의약품 채택관련 금품수수, 이른바 랜딩비 부조리 사건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결국 이러한 모든 형태의 부조리 비용을 그대로 국민적 부담으로 전가하는 것이다. 어디 의-약분업 문제뿐인가. 과거 정권 이래로 교육정책이 그러했고 금융실명제의 전격실시를 비롯한 각종 금융정책의 대부분이 그러했으며, 공공기관에 대한 구조조정이나 공직자 사정(司正) 또한 그러했다.

조도상금(操刀傷錦: 무능한 사람에게 중요한 일을 맡기면 대사를 그르친다는 뜻)이라는 고사도 있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말 속담도 있다. 무능한 관료집단이나 선무당 같은 정치인들은 백성들의 삶을 괴롭히고 피폐하게 할 뿐이다. 청렴하고 유능한 관료나 정치인이 지선(至善)이지만, 그렇지 못할진대 차라리 조금 부정하더라도 유능한 편이 국익보다 보신(保身)만을 생각하거나 한건주의, 실적주의에 급급한 무능한 관료집단 및 정치인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부정한 공무원은 전과기록이라도 있지만 무능한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전과기록도 없다. 국민에게 엄청난 고통만을 주는 정책을 개혁정책이랍시고 만들어 추진하다가 사회적 물의가 일어나면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없이 그 자리를 떠난다. 그랬다가 세월이 흘러 그 무능함에 대한 기억이 잊힐 만하면 다시 전직 장-차관이니 전직 국회의원이니 하는 경력을 앞세워 또 소리 없이 고위 공직에 발탁된다.

국민과 언론들은 깜박 속고 그의 화려한 경력만을 믿고 뭔가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 무능함이 어디 가는가. 지난 번 감사원 업무보고 때 필자가 보신주의에 능한 무능한 공직자들을 공직사회에서 추방할 것과 그들이 다시 공직사회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자료를 존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과 원칙에 중심을 둔 강한 정부의 구현은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에 대한 법원과 검찰의 엄정한 법 집행 의지의 실천을 확립하고, 개혁 정책들에 대한 완급의 조절능력과 부작용에 대한 사전적 대응력을 갖춘 유능한 관료집단 및 정치인들을 확보할 때 비로소 실현할 수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바로 그런 정부, 그런 정치인을 원하는 것이다.



주간동아 2001.05.03 282호 (p18~19)

< 함승희/민주당 의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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