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5

2001.03.15

우리들 ‘인생 배역’ 돌아보기

  • < 장은수/ 연극평론가 JAES@chollian.net >

    입력2005-02-17 11: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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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 ‘인생 배역’ 돌아보기
    세상은 무대”라고 했던 셰익스피어의 말대로 세상은 연극과 참 많이 닮아 있다. 배우에게 역할이 주어지듯 우리에게는 직장과 가정에서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고 그 배역을 얼마나 멋지게 해내는지에 우리 삶의 성패가 달려 있는 것이다.

    아룽구지 극장에서 공연중인 시미즈 쿠니오 작-오태석 연출의 ‘분장실’(3월25일까지)은 연극에서의 역할을 둘러싼 배우들의 이야기를 빌려 인생을 말한다. 분장실이 무대의 이면을 보여주듯 이들 배우의 모습은 우리 인생의 이면을 들여다보게끔 만들어 준다.

    화려한 조명을 받는 주역과 이름 없는 단역, 심지어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게 숨어서 주인공 역에게 대사나 쳐주는 프롬프터까지 배우들은 모두 분장실에서 만난다.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가 공연중인 무대 뒤에 자리잡은 조그만 분장실은 산 자와 죽은 자가 조우하고 삶과 죽음, 연극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이기도 하다. 주역 자리를 향한 배우들의 집착과 욕망 또한 이곳에서 쌓이고 이곳에서 폭로된다.

    가녀린 여주인공 니나 역을 맡은 통통한 배우 C(황정민 분)가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배역을 소화하느라 전전긍긍하는 동안, 배우 귀신 A와 B는 때로는 관객이 되고 때로는 프롬프터가 되어 웃지 못할 촌극을 만들어낸다. 이들의 촌극은 기코가 나타나면서 절정에 달하는데 1년 전 니나 역의 프롬프터로 일하다가 정신이상으로 병원에 입원했던 또다른 ‘니나광’이다. 무대 주역이 되고픈 기코의 꿈은 죽어서야 비로소 이루어진다. 분장실 무대에서 망령들이 벌이는 체호프의 ‘세자매’에 합세하게 된 것이다.



    ‘분장실’의 무대장치 역시 연극과 현실이 한 자리에서 만나고 있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했다. 무대 뒤 양쪽에 자리잡은 커다란 거울은 그 앞에서 분장하고 있는 배우들은 물론 객석 관객들의 모습도 그대로 비춰준다. ‘인생의 분장실에 선 내 모습은 과연 어떠한가?’라는 화두를 던지면서….

    ‘갈매기’의 대사 한 부분을 네명의 여배우가 각자의 버전으로 다양하게 연기한 것이나, 태평양전쟁 전의 신파극과 전후의 신극에서 완전히 딴판으로 표현되었던 일본식 맥베스 부인을 보는 것도 이 공연이 주는 또다른 재미다.

    연극 ‘분장실’이 지닌 인생무대의 복합적 층위는 연극의 대사를 비단 연극으로 그치지 않게 만드는 힘에 있다. 여배우란 것이 얼마나 혹독한 직업인지 알면서도 자신이 선택한 것이기에 부단한 날갯짓을 계속한다는 배우 C의 처절한 독백은 그 배우를 연기하는 극단 목화의 배우 자신의 얘기로 진솔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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