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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스그룹, “우리가 소모품인가요”

대중 입맛에 맞춘 기획사의 ‘상품’… 가치 떨어지면 ‘해체’ 냉엄한 시장논리 적용

  •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댄스그룹, “우리가 소모품인가요”

댄스그룹, “우리가 소모품인가요”
“여러분, 우리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죠? 그러나 여러분이 있는 한 우린 결코 헤어지지 않을 거예요.”

HOT의 멤버 문희준이 말을 끝내자 잠실 올림픽 주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5000여명의 팬들은 일제히 광란에 가까운 환호성을 질러댔다. 그동안 무성한 소문 속에 공공연히 해체설이 나돌던 HOT의 멤버가 처음으로 입을 열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것. 이로써 HOT 해체 논란은 다소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으나, 사실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멤버들의 재계약 문제 및 그룹 해체와 관련해서 현재 결정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지금은 어떠한 입장도 밝힐 수 없다.” 콘서트가 끝난 뒤, HOT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에 연락을 취해 자세한 사정을 알아보려 했으나 기획사는 ‘노 코멘트’로 일관했다. 아직 불씨가 꺼지지 않고 남아 있다는 증거일 듯하다.

‘돈’ 문제로 HOT 해체설 나돌아

댄스그룹, “우리가 소모품인가요”
이에 앞서 이수만 대표는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단연코 해체는 생각해본 적이 없으며 약간의 견해차 때문에 협상이 지연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HOT 멤버들이 기획사와 원만히 합의를 이루고 예전처럼 활발하게 활동할 수 있을지 의문을 표시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미 일부 언론은 ‘해체 초읽기’ ‘해체 발표 택일 고민’ 등의 표현을 써 이들의 해체를 기정사실화했고, 이에 대해 SM측은 ‘법적 대응을 고려하겠다’며 강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댄스그룹의 최강자로 군림하며 변함없는 인기를 누려온 HOT. ‘죽어도 함께 죽고, 살아도 함께 살 것’ 같았던 이들이 왜 때 이른(그들의 인기도를 고려할 때) 해체설에 휩싸이게 된 걸까. 가장 우선적인 이유는 ‘돈’ 문제.

멤버 중 문희준과 강타는 내년까지 음악활동을 하기로 계약을 맺었지만 나머지 세 명은 아직 재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멤버간의 차등 대우로 서로간의 관계가 서먹해졌고, 멤버 1인당 음반 1장에 겨우 20원의 인세를 받는다는 소문도 있다. 물론 멤버들의 수입을 인세만 가지고 따질 수는 없다. 보너스, CF 개런티, 캐릭터 수입 등이 따르지만 ‘인기에 비해 푸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멤버들은 기획사측에 만족할 만한 수준의 계약금과 대우를 요구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회사측과 의견 차이가 빚어진 것.

SM측은 이에 대해 자세한 속사정을 밝히지 않고 있지만, 이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는 개인 기업이 아니다. 멤버들과 팬, 그리고 투자자들을 모두 만족시켜야 한다. 이윤이 남아야 하는 기업의 특성상 과도한 요구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요구한 모 기획사의 매니저는 “기업에는 나름의 사칙과 규칙이 있게 마련이다. 계약 관계에 있는 가수는 그 회사의 직원이나 다름없는데 ‘내가 이만큼 떴는데 왜 대우를 안해주냐’는 식의 주장은 부당하다. 사실 가수를 만드는 데 있어 80∼90%는 회사의 기획과 전략의 힘이다. 흙 속의 진주를 캐내어 보석을 만드는 작업이 모두 기획사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음부터 보석이고, 스타였던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댄스그룹, “우리가 소모품인가요”
작년에 공식 해체를 선언한 6인조 인기 댄스그룹 ‘젝스키스’의 경우도 해체 이유가 멤버들이 소속사를 상대로 대우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촉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데뷔 후 계약서도 없이 활동했던 것으로 알려져 수익 분배에서 피해를 보았을 수도 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대성기획은 젝스키스 해체에 즈음해 핑클, 클릭B 등의 그룹을 시장에 내놓으면서 새로운 스타 만들기에 발빠르게 나섰고, 그 와중에 젝스키스라는 그룹은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HOT의 팬들이 같은 기획사 소속인 가수 보아에 대해 사이버 테러를 벌이고 ‘안티 보아’ 운동을 벌였던 것도, SM의 ‘보아 키우기’를 ‘HOT 해체 수순 밟기’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일들은 지금의 가수들이 철저히 기획사가 만들어낸 ‘상품’에 불과하기 때문에 벌어진다. ‘돈이 될 수 있도록 키우고, 상품성이 다하면 버려지는 것’. 냉엄한 시장의 원칙은 음악세계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어느 가수와 그룹을 계속 유지시킬 것인지의 판단 근거는 철저히 ‘상품성’에 있다. 음반사나 기획사는 가수의 예술성보다는 10대 팬들이 기꺼이 돈을 주고 상품을 살 것인가 하는 상업적 가치를 중시한다. 기획사들은 철저하게 대중의 입맛을 예측해 스타를 만들어내고, 대중의 입맛이 변하면 기존의 가수를 내몰고 새로운 가수를 대상으로 다시 마케팅 전략과 이미지 전술을 짠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할 수 없는 수많은 가수들과 댄스그룹들이 그렇게 대중 속으로 왔다가 사라져갔다. 그 과정에서 인기는 얻었지만 정작 자신은 돈을 벌지 못해 생활보호대상자로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도 있었고, 활동 중단 후 정신적인 상처로 방황하면서 황폐한 삶을 살아가는 미성년자 가수들도 있다.

HOT를 바라보는 일부의 시각도 ‘하이틴 그룹으로서의 생명이 다했다’고 보는 것. 95년 ‘보이 그룹’으로 출발했지만 이제는 ‘청년 그룹’이 된 이들이 언제까지 아이들 스타로 군림할 수 있을지에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기획사측에서도 이런 점을 고려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이렇게 ‘만들어진’ 그룹에는 어차피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가수가 산업적 결과물인 음반산업의 속성상 이런 현상은 계속될 것이다. 그 자체를 탓할 순 없지만, 우리 가요 시장의 문제는 상업적인 10대 그룹의 독점으로 예술성과 상업성의 균형이 심하게 깨져버린 데 있다”고 말한다.

‘기획’의 힘은 스타와 돈을 만든다. 여기에 각 방송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들도 철저한 ‘이너 서클’로서의 공생 기능을 가진다. 음악도 가수도 ‘상품’으로 만들어지고 팔려나가는 지금의 세상에서 스타를 꿈꾸고, 스타가 되었으며, 또 금방 잊혀 가는 어린 가수들의 인생을 누가 책임질 수 있을까.





주간동아 2001.03.15 275호 (p58~59)

< 신을진 기자 happyend@donga.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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