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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눈엣가시 후세인 어떻게 할까”

10년 경제제재 ‘약발’ 떨어지고 정권 쓰러뜨릴 묘책 없어… ‘파월 구상’ 조만간 윤곽

  •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부시 “눈엣가시 후세인 어떻게 할까”

부시 “눈엣가시 후세인 어떻게 할까”
반미감정이 강한 아랍세계에서 이라크의 독재자 사담 후세인이 누리는 인기는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에 뒤지지 않는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당시 필자가 만났던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은 후세인에게 큰 호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 눈에 비친 후세인의 모습은 전통적으로 이스라엘과 유착관계를 맺어온 초강대국 미국에 맞서 싸우는 ‘아랍의 전사’ 그 자체다.

날마다 이스라엘 병사들과 소규모 충돌이 벌어지는 서안지구 라말라의 한 장례 행렬에 참가한 한 무리의 젊은이들은 후세인의 초상화를 들고 나왔다. 실제로 후세인 정권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돕고 있다. 이스라엘 병사들의 총탄에 부상당한 사람들을 치료하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사망자 가족들을 직접 찾아가 1인당 1만달러의 부의금을 전하고 있다.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1만달러는 무척 큰 돈이다. 지금껏 이라크 쪽에서 부의금으로 지불한 돈만도 300만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그렇다면, 이라크가 경제적으로 그만한 여유가 있다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우리가 이겼다” 흰 말 탄 아랍기사

부시 “눈엣가시 후세인 어떻게 할까”
이라크 사람들의 사는 형편은 말이 아니다. 거리에는 구걸하는 아이들이 흔하다. 공장 문이 닫혀 실직한 기술자들은 겨우 하루 1, 2달러를 벌려고 행상에 나서는 실정이다. 병원에서는 약품과 산소 호흡기가 부족해 노약자들이 죽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후세인 정권은 “경제제재와 미국의 압력을 견뎌내고 우린 이겼다”는 선전을 되풀이한다. 수도 바그다드의 관제언론들은 후세인을 “미국이라는 초강국과 겨룬 제3세계의 영웅”으로 선전한다. 지난 1월에는 쿠웨이트 침공 10주년을 맞아 성대한 군사 퍼레이드를 갖고 새로운 탱크와 로켓포를 선보이기도 했다. 바그다드에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7m 높이의 거대한 후세인 동상이 서있다. 허리에 권총을 차고 베레를 쓴 후세인의 모습은 오늘의 이라크에서 그가 지닌 절대자로서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후세인은 지난 91년 43일에 걸친 공중-지상전 끝에 5만명에 이르는 이라크 젊은이들을 전장에서 희생시켰지만 “우리가 이겼다”고 국민에게 선전하면서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해왔다. 이라크 관영언론이 선전하는 그의 이미지는 ‘흰 말을 탄 중세의 아랍기사’다. 영-미의 침략에 맞서 아랍세계를 지키는 기사다. 올해 63세인 후세인은 정치적 반대자들을 ‘미국 스파이’ 또는 ‘배반자’로 몰아 총살이나 교수형에 처하면서 2300만 이라크 국민들을 철권 통치해 왔다. 이라크 북부와 남부의 넓은 지역이 비행금지구역으로 통제받고 있고, 잊을 만하면 미-영 공군의 폭격을 받고 있는 후세인 정권이다. 그러나 후세인은 이를 “미-영 침략주의자들의 만행”으로 선전하면서 대중조작에 이용해 왔다. 이라크는 지난 10년에 걸친 경제제재 때문에 지금까지 50만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50만명이 희생됐다는 주장을 펴왔다. 이라크 관영언론의 시각에선 경제제재로 인한 궁핍과 질병으로 사망한 모든 이라크인들이 ‘순교자’다.



후세인 체제는 이른바 소수의 친위그룹(inner circle)의 열성적인 충성으로 지탱되고 있다. 그 친위그룹의 맨 앞에는 집권 바트당의 강경파들이 있다. 후세인의 맏아들 우다이 후세인(36)이 강경파를 대변한다. 우다이는 지난해 11월 이라크 의회에서 “의회 깃발에 그려진 이라크 지도에 쿠웨이트를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우다이의 그같은 주장에 타리크 아지즈 부총리가 지지하고 나섰다. 아지즈 부총리는 걸프전 당시 이라크 대외협상창구를 도맡았다. 이라크에 쿠웨이트는 미국 침략자들과 공모해 이라크의 주권과 이익을 훼손해온 적성국이다. 1990년 이라크의 침공을 받아 마땅했다는 논리다. 그들에게 쿠웨이트 왕조는 한 관영언론의 표현을 빌리자면 “알라신의 적과 내통하는 저열한 집단”일 뿐이다.

부시 “눈엣가시 후세인 어떻게 할까”
이라크의 주 수입원은 석유다. 걸프전 이후 ‘유엔안보리 결의안 986’에 따라 이라크는 석유수출을 전면 금지당했다. 그러다 지난 96년 이른바 석유-식량 프로그램(oil-for-food program)에 따라 유엔의 통제 아래 제한적인 수출이 가능하게 됐다. 이라크가 유엔으로부터 식량기금조로 허용된 석유 수출 한도액은 연 96억달러다. 당시 유엔은 식량, 의약품, 그리고 기타 인권 관련 목적에 한해 쓰인다는 조건을 달아 이라크의 석유수출을 허용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실제로는 20% 정도만이 그런 용도로 쓰일 뿐”이라고 추정한다. 그렇다면 경제제재의 효과는 거의 없다는 얘기가 된다. 시리아는 이라크로부터 유엔이 규정한 것보다 더 많은 석유를 들여와 판매대금을 나누어 가져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시리아 송유관을 통해 이라크는 적어도 연 20억달러의 비자금을 만들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인권단체들을 비롯한 국제적인 여론은 “이라크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쪽이다. 10년 경제제재로 고통받는 것은 어린이, 노약자를 비롯한 일반 이라크 국민뿐이란 시각에서다. 이를테면 이라크의 가난한 시골마을에서 먹을 물을 구하러 우물을 파려 해도 대(對)이라크 수출금지 품목 안에 양수기가 들어 있어 제대로 우물을 파지 못하는 실정이다. 사실 걸프전으로 인한 이라크의 손해는 막대하다. 쿠웨이트 복구비, 그리고 연합국의 전쟁비용 배상으로 나간 돈만 해도 130억달러에 이른다.

그러나 미국은 “경제제재로 지금껏 50만명의 어린이를 포함한 150만명이 희생됐다”는 이라크의 주장에 대해 과장된 것이라며 이를 믿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 관리들이 수입된 식량을 후세인 일족에게 먼저 몰아주느라 이라크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시각이다. 이라크에 약품이 부족한 이유도 경제제재에 있는 게 아니라, 후세인 정권이 석유판매대금을 체제 유지비용으로 남용하기 때문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다.

미국이 이끌어왔던 국제사회의 대 이라크 경제제재는 그러나 이즈음 들어 물 건너간 분위기다. 걸프전 당시 미국과 함께 싸웠던 프랑스, 터키,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은 “경제제재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내비쳐 왔다. 유엔이 결의한 대 이라크 제재의 하나인 항공기 취항금지를 어기고 이라크로 의료진 또는 구호물자를 싣고 간 나라만도 이미 10여 개국이다. 시리아, 이집트, 요르단도 곧 바그다드로 비행기를 띄울 채비다.

특히 아랍국들은 이라크 제재에 부정적이다. 아랍 형제국이란 일반론을 말하지만, 배경에는 이라크 제재에 따른 자국의 경제적 이해관계가 깔려 있다. 그동안 미 공군, 영국 공군의 이라크 출격기지를 제공해 왔던 터키조차도 지난 2월 부시정권 출범 직후 감행된 두 차례의 이라크 공습에 비판적이었다. 최근 중동지역 순방에 나섰던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제재완화 카드를 꺼낸 것은 현지에서의 분위기를 되비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미국이 이라크를 그냥 풀어놓지는 않을 게 분명하다. 후세인은 여전히 생화학-핵무기 개발 의혹을 받고 있다. 지난 98년 이래 유엔의 무기사찰 압력을 버텨오는 참이다. 강성 부시정권이 그런 후세인을 고분고분 풀어줄 입장은 분명 아니다. 후세인 정권은 91년 당시 걸프전에서 맞섰던 부시 전 대통령을 ‘악마’로 부른다. 따라서 부시 신임 대통령은 ‘악마의 아들’ 또는 ‘작은 부시’로 통한다. 미국의 시각에서 보면, 지난 10년 동안 후세인 정권의 이라크는 한마디로 ‘불량국가’(rouge nation)다. 미 국무부는 이란 이라크 북한 쿠바 리비아 등 7개 국가를 이른바 ‘테러지원국가’로 규정해 ‘불량국가’로 불러왔다. 그러나 지난해 클린턴 전 대통령은 이 국가들을 가리켜 ‘우려국가’(states of concern)로 호칭을 바꾸었다. 부시 행정부는 그들을 ‘불량국가’로 되돌려 부를 참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2월 상하원 합동연설에서 이미 불량국가란 호칭을 사용한 바 있다. 물론 여기에는 현재 논란중인 국가미사일방어(NMD) 체제 구축을 위한 정치적 공세 측면이 강한 게 사실이다. 부시의 연설대로 “폭탄 위협을 일삼는 테러리스트와 대량 파괴무기 개발 의사를 갖고 있는 독재자와 불량국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NMD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 다시 말해 대이라크 정책의 큰 그림을 그릴 만한 자리에 있는 두 사람을 꼽으라면 딕 체니 부통령과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다. 이 둘은 지난 91년 걸프전에서 각각 국방장관(체니)과 합참의장(파월)으로서 후세인과 한판 겨루었다. 콜린 파월은 중동 방문을 계기로 10년 동안 이라크에 취해진 경제제재 조치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있다. 이라크가 더 많은 소비재를 수입할 수 있도록 제재를 느슨하게 풀어주는 한편, 후세인이 군비를 강화하는 길은 더욱 옥죄는 그런 형태의 변화다. 한마디로 후세인이 유엔의 무기사찰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그래서 대량학살 무기에 대한 의혹을 말끔히 씻어내지 않는 한 강경한 대이라크 봉쇄는 이어나갈 뜻이 분명히 드러난다.

아이러니컬한 현상이지만, 10년 경제제재가 오히려 후세인 정권의 기반을 더욱 튼튼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국내 비판세력은 사라진 지 오래다. 미국의 고민은 후세인 정권을 쓰러뜨릴 묘책이 없다는 데 있다. 후세인을 대신할 만한 이렇다할 정치세력이 있는 것도 아닌 상황에서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고민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며 이라크 국내의 반후세인 세력은 ‘씨가 말랐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런던에 본부를 둔 이라크국민회의(IAC), 회교혁명최고평의회(SCIRI) 등 이름은 거창해 보이는 반후세인 조직들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름뿐이라고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후세인 정권을 전복하겠다는 막연한 희망 아래, 클린턴 행정부는 지난 1996년까지 반후세인 조직들에 재정 지원을 해왔다. 그러나 이름만 그럴듯하고 힘은 없는 반후세인 조직들이 지원금을 서로 다투는 바람에 그나마 96년 이후로는 지원을 중단해왔다. 돈만 나가고 실익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다 다시 98년 9800만달러 상당의 군사원조를 하기로 결정하긴 했지만, 클린턴 임기 말까지 반후세인 조직에 대한 무기 공급은커녕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부시 행정부는 이들 반후세인 조직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다시 시작할 채비다. IAC는 최근 부시 행정부로부터 수백만달러의 공작금을 지원받기로 약속받았다고 밝혔다. 이 경우는 군사지원이 아닌, 이라크 내 인권상황 등 정보수집에 한정될 것으로 알려진다. 이라크 북부 에르빌, 두호크, 술라이마니아 3개주에서는 이라크 내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이 후세인 정권에 맞서고 있다. 지난 91년 후세인이 걸프전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타 봉기한 이래, 쿠르드민주당(KDP)과 쿠르드애국연합(PUK)이 이 3개주를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이 쿠르드족도 서로 분열돼 있어 후세인 정권 전복을 바라는 미국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래저래 “후세인 목에 방울 달기가 어렵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의 고민이다.

이라크 제재를 어떤 형태로 바꿀 것인지, 어느 수준으로 완화할 것인지는 3월 말 요르단 암만에서 열리기로 돼 있는 아랍국가 정상회담 이전에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부시 행정부가 대이라크 정책을 파월의 구상대로 제재를 완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을 것인지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대이라크 강경파들이 파월의 구상에 순순히 따라줄지가 관심의 초점이다. 딕 체니 부통령, 도널드 럼스펠드 미 국방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은 파월과 견해를 얼마간 달리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들은 반후세인 세력들을 무장시켜 봉기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룬다는 고전적인(?) 구상에 미련을 갖는 것 같다. 따라서 부시 대통령이 파월의 중동구상을 얼마만큼 받아들일지도 관심의 초점이다. 이라크에 대해 “풀 것은 풀되 옥죌 것은 더 옥죄는” 쪽으로 제재를 탄력적으로 적용하자는 파월의 구상이 일정한 공감대가 형성되면, 유엔 안보리에서 이라크 제재를 푸는 결의가 나올 참이다.



주간동아 2001.03.15 275호 (p44~46)

<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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