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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고 왕따사건, 학교도 가해자였다

조사 보고서 단독 입수 … 피해학생 개인정보 알려주고 전교생에 집단항의 서명도 지시

  •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대덕고 왕따사건, 학교도 가해자였다

대덕고 왕따사건, 학교도 가해자였다
지난 98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으며 큰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킨 일명 ‘대전 대덕고 왕따(집단 괴롭힘) 사건’과 관련, 해당학교 교장과 교사들이 사건 수습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주고 있다. 또 일부 교사는 이 과정에서 피해학생의 일기장과 ‘개인생활지도누가기록카드’ 등 개인정보를 의도적으로 외부 유출해 피해자측의 주장에 대한 반박자료로 활용하는 비교육적 행위를 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국무총리 소속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김성이·이하 청보위)의 ‘대전 대덕고 집단 괴롭힘 사건보고서’에 따른 것이다.

간부회의 소집 조직적 가담

대덕고 왕따사건, 학교도 가해자였다
대덕고 사건은 98년 8월 당시 이 학교 1학년 3반에 재학중이던 이모군(18)이 일부 교사와 학생 등 63명에게 ‘조직적’인 왕따를 당했다고 이군의 아버지(53)가 각계에 폭로하면서 불거진 사건. 지난해 초 대전지법에 의해 사건에 연루된 가해혐의 학생 13명이 ‘불처분’ 결정을 받아 풀려나고 같은 학교 H교사(사건 당시 학생부장)에겐 지난해 11월 300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지는 등 사건이 사법적으론 일단락됐지만, H교사가 항소를 한 데다 피해자측과 관련자들간 민사소송은 여전히 진행중으로 사건 발생 2년 반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청보위는 지난해 11월 말 피해 학부모측이 제기한 민원을 받아들여 청보위 중앙점검단 소속 경찰관 2명을 현지에 파견, 대덕고와 관할 대전시교육청을 상대로 사건을 자체 조사했으나 그 결과에 대해서는 지금껏 일절 함구해 왔었다.

이번 조사보고서는 지난 2월1일 피해자 측이 청보위에 행정정보 공개를 요청해 받아낸 것으로 지난해 12월16일 청보위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에 ‘적절한 행정조치를 바란다’며 협조공문으로 띄운 내용과 동일한 것이다.



조사보고서에 구체적으로 명기된 내용들은 사뭇 충격적이다. 보고서는 그동안 피해자측과 가해학생의 학부모, 학교측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해온 ‘개인정보 유출행위’(이 정보들은 ‘왕따 피해’를 주장하는 피해자측에 대한 반박자료로 활용됐다)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98년 9월 사건이 교내외로 표면화하자 대덕고측은 교장(당시 G교장), 교감, 이군의 담임 P교사, 학생부장 H교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부회의를 소집해 이군의 개인정보(피해사례가 기록된 일기장, 중학교 시절의 개인생활지도누가기록카드, 교사-학생 결연지도카드, 부적응학생지도카드)를 유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또 유출한 개인정보를 ‘가해학생 학부모 모임’ 대표 B씨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2000년 11월23일 대덕고 교장실에서 교장, 교감, 대전시교육청 K중등교육과장 입회 하에 중앙점검단에게 한 H교사의 진술).

보고서에는 또 피해자 이군이 왕따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 입원중이던 99년 9월경 교장, 교감, H교사, 학년부장 교사 등이 간부회의를 열어 전교생과 전 교사들을 대상으로(전적으로 이군에게 ‘정신적 문제’가 있을 뿐, 왕따 행위는 없었다는 취지의) 집단항의서명을 받기로 결정했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담겨 있다(H교사 진술). 이 과정에서 학교측은 총학생회장까지 동원, 각 반별 반장 중심으로 서명을 받도록 지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고서는 또 가해 학부모 대표 B씨가 H교사로부터 넘겨받은 이군의 개인정보 자료들과 집단서명자료를 인쇄소에 맡겨 가해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는 피해자측을 반박하는 내용의 자료집을 제작한 뒤 가해 학부모 및 시민단체 등에 배포한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 사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H교사의 진술을 토대로 한 이런 청보위 조사 결과는 그동안 “가해 사실이 없었다”고 일관해온 대덕고측과 가해 학부모들의 주장을 뒤엎는, 중앙행정기관의 공식적인 조사라는데 의미가 있다. 또 현재로서는 “조직적인 개인정보 유출이 있었다”는 피해자측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유일한 가시적 자료이기도 하다.

보고서는 이 밖에도 사건 발생 후 이뤄진 대전지검의 수사기록과 가해 학생들의 최초 진술서에 나타난 왕따 행위 사례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기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 보고서를 이미 지난해 12월에 전달받았음에도, 이런 대덕고측의 비교육적 행위에 대한 교육부의 교육행정적 후속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사재판이 진행중인 민감한 사안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하란 말인가. 왕따 행위 여부는 법원이 가려줄 것이다.” 교육부 감사담당관실 관계자는 “교육부 차원에서의 진상조사는 이미 대전시교육청의 자체 조사로 종결됐다. 청보위 조사결과는 단지 참고자료일 뿐 우리는 그 결과를 신뢰해야 할 아무런 이유나 의무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조직적 대응을 해온 대덕고측도 청보위 조사 결과에 대해 부인 또는 함구하고 있다. 3월2일, 집단서명 건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현 대덕고 J교장(99년 9월 대덕고 부임)은 청보위 조사 결과에 수긍하느냐고 묻자 “사건 당시 나는 교장이 아니었다. 더 이상 해줄 말이 없다”고 단답형으로 답변했고, 문제의 H교사도 “아무 것도 말해줄 수 없다. 더 이상 묻지 말라”며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었다.

이번 조사 결과에 대해 대전시교육청도 내놓고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대전시교육청 중등교육과 관계자는 “사건 발생 직후의 초동 진상조사에 미흡했다는 이유로 이미 지난해 교육부 위탁감사시 대전시교육청 직원 3명이 주의촉구조치를 받았다”며 “청보위 조사 당시 현장(대덕고 교장실)에 있긴 했지만 H교사가 그런 진술을 했었는지에 대해선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말꼬리를 흐렸다. 사법적 판단의 문제가 걸린 ‘뜨거운 감자’를 앞다퉈 피하려는 교육부와 학교, 관할 교육청의 무사안일한 행태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물론 가해자측과 피해자측이 첨예히 대치한 상황에서 왕따 행위의 유무를 밝혀내기란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문제는 거듭된 왕따 논란 공방에서 특정 피해자 가족을 겨냥해 해당학교 교사들과 가해 학부모가 상호 협의하에 피해학생의 개인정보를 스스럼없이 ‘공유’한 비도덕적 행위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왕따 행위의 유무를 떠나 마땅히 보호돼야 하고 공적이고 교육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돼야 할 피해 학생의 개인정보를 적극적으로 외부에 빼돌려 이용한, ‘매끄럽지 못한 과잉대응’은 실제 있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학부모대표 B씨는 “H교사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피해자측이 제기한 소송에 학교측과 공동대응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번 조사의 주체인 청보위는 이런 조직적인 행위 자체가 또 하나의 ‘왕따 행위’라고 단언한다.

청보위 김성이 위원장(54)은 “조직적인 비교육적 행위가 있었다는 엄연한 조사 결과마저 부인하고 은폐하려는 학교 및 교육행정기관들에 과연 왕따를 척결하려는 의지가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며 “청보위 조사는 마지막으로 이뤄진 중앙행정기관의 조사인 만큼 그 결과를 100% 자신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청보위는 조사결과를 피해자측에 공개한 뒤 한때 업무가 마비될 정도의 항의전화와 스팸메일 세례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왕따 사건의 후유증은 이렇듯 크다. 그러나 그 후유증은 새롭게 드러난 진실을 또다시 파헤쳐 입증하는 아픔을 거쳐야 비로소 치유될 수 있다. “재판 결과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교육부의 군색한 변명이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 건 당연하다.



주간동아 2001.03.15 275호 (p40~41)

< 김진수 기자 jo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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