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5

2001.03.15

내세울 만한 '원천기술'이 없다

전자통신연구원 내부자료 지적… 정보 통신분야 국산화율 50~60%대

  •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5-02-16 14: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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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세울 만한 '원천기술'이 없다
    사례1

    국내 소프트웨어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H 사. 지난해 한국 매스컴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중국에 진출했다. 그러나 2001년 3월 중국인들은 이 회사 제품과 서비스에 거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 회사의 야심찬 도전은 ‘세계의 높은 벽‘을 확인한 채 실패로 끝나가고 있다.

    사례2

    국민-외환-주택은행의 인터넷뱅킹 이용자들이 절대 피해 가지 못하는 것이 있다. 바로 외국회사 소프트포럼의 암호체계 상 품이다. 50개 금융기관, 삼성물산, 하이텔뿐 아니라 국가정보원, 정보통신부 등 한국의 대표적 기업과 국가기관이 이 회사의 고객이 다. 소프트포럼은 ‘디지털호된 도둑‘으로부터 고객의 신용카드와 재산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보안체게‘를 사실상 장악하고 있다. ”답은 간단합니다. 한국보다 10배 이상 복잡한 암호를 만드는 기 술을 갖고 있기 때문이죠.”(한국 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

    한국 IT업계는 지금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업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위기의 ‘진원‘으로 지목되 는 게 보로 ‘기술력 부족‘이다. 이들은 ‘IT부국론‘의 기치 아래 동 원된 정부와 기업의 자원이 과연 고부가가치 핵심상품(또는 부품)을 만드는 원천기술을 갖는 데 집중댔느냐고 반문한다.



    정보통신 신기술개발의 메카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은 최근 내부조 사자료를 ‘주간동아‘에 단독으로 공개했다. 2000년 12월까지 수개 월에 걸쳐 국내 저오통신산업을 5개 부문으로 나눠 ‘제조원가‘ 기준 으로 ‘부품국산화율‘을 조사한 내용이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 다. ‘IMT2000-CDMA단말기 등 무선통신기기 분야 국산화율 56.$%, 유 선통신기기분야 60%, PC 등 정보기기분야 55%, 방송기기분야 57%, 부품소자분야 63%.‘ (반도체는 조사대상에서 제외)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관계자 A씨는 ”조사 결과는 한마디로 충격적이 었다”고 말했다. ”국산화율이 예상했던 것보다 낮게 나왔다. 기업 의 비밀보호를 위해 구체적 내용이 열거되어선 안 되지만 특히 핵심 부품의 국산화율은 우리도 놀랄 정도로 낮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매우 우려되는 결과다.” (A씨) 그에 따르면 일부 핵심품목 국산화 율은 30%대에 불과한 ‘최악의 성적‘이었다고 한다. 이 연구원은 ‘의식적‘으로 이 조사 결과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았다. 사전에 내 용을 알게 된 정부와 관련 업게에서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을 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는 입장을 보였다고 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이번 조사는 국내 정보통신산업이 허약한 기 술기반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결과로 받 아들여진다.

    내세울 만한 '원천기술'이 없다
    정부출연기관인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세 명의 연구원들로부터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을 들어봤다. 이들은 ‘자유로운 발언‘을 위해 익 명을 요청했다. ”예를 들어 휴대폰의 핵심 칩인 MSM3000은 외국기 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한국의 수출주력품목인 데스크톱 PC 도 CPU는 인텔에서 사다 쓰는 등 절대 다수의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 서 조립하는 방식이다. CPU 한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단가의 20% 이상이다. LCD의 경우에도 빛을 반사하거나 자체 발광해 색깔 을 표현해내는 핵심물질은 외국산이 국산을 압도하는 형편이다. 국 내의 초고속인터넷 통신망 보급이 세게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지만 필수부품인 ‘모뎀‘은 외국에서 들여온 것이 남ㅎ다.” (연구원B씨) 모든 기술을 국산화하는 것은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러나 국내 정 보통신산업은 특정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높은 대다 수 핵심부품군들을 수입으로 대체하고 있는 점에서 문제라고 B씨는 지적한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은 지난해 꾸준한 성장세 를 보였다. 정보통신기기분야에서 지난해 한국은 507억달러를 수출 했고 350억달러를 수입해 157억달러의 흑자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 고 있다.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1%로 높아졌다. 이는 99년 수출 398억달러, 흑자 137억달러보다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외형은 커졌지만 산업구조는 더 치약 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반도체, 휴대폰, PC, 액정 모니터 등 10개 품목이 정보통신관련 수출액의 81%를 차지할 정도로 편중된 점이 가 장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또한 전문연구기관에서 밝히고 있듯 이들 수출주력품목에서 조차 핵심부품의 국산화율이 매우 낮다.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에서 제대로 경쟁력을 갖춘 품목을 더 좁히면 메모리반도체와 그오 관련된 몇 개 분야가 거의 유일하다. 지난해 세계시장의 메모리반도체 경기가 좋아진 것이 정보통신관련 수출이 늘어난 가장 큰 이유가 됐다. 그러나 메모리 반도체는 경기를 많이 타며 CPU등 비메리분야에 비해 시장규모가 협소하다. 그런 행운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C 씨)

    국내에서 폭발적 인터넷 붐을 일으킨 테헤란밸리의 컴퓨터-인터넷 관련 기업들. 이들은 ‘굴뚝 없는 산업‘을 이끌 IT부국론의 주역이 다. 그러나 C씨에 따르면 한국의 인터넷업계는 한경변화에 취약한 ‘맹아‘적 단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컴퓨터-인터넷 분야에서 MS, IBM, 인텔, 선 마이크로 시스템스 오라 클, 시스코 L&H등 많은 외국 기업들은 자체 개발한 기술로 한국의 관련 시장에서 경쟁자가 거의 없는 독보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반면 MP3는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져 해외에 소개된 품목이다. 그 러나 아직 수출 초기단계에 불과하긴 하지만 세계시장에 미치는 파 급력은 미미했다. 전문가들도 ‘MP2 플레이어‘에 큰 기대를 하지 않 는 분위기다. ‘기술적 진입장벽‘이 높지 않아 ‘대박‘이 되기는 힘 들 것이라는 게 이유다. 다이엘패드의 유료화 움직임에 대해서도 ‘결국 그렇데 되는군. 특별한 기술은 아니었어‘ 라는 이야기가 나 오고 있다.

    미국 뉴욕 나스닥에 상장된 한 한국 인터넷기업의 주가는 최근 많이 떨어졌다. ”미국의 투자자들에게 미래가치가 될 만한 기술력을 제 시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e-칼럼니스트 김상현씨의 견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연구원 D씨는 한국의 벤처기업들은 국내시장 에만 안주하려 하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1000 만명이 넘으면 웬만한 벤처기업들은 호황을 맞을 것이라고여겼다. 대다수 벤처기업들은 내수시장에서만 통할 수 있는 콘텐츠, 서비스 만 내놓았다. 그러나 그 시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 다.” (D씨)

    이런 성향은 자연이 ‘기술개발의 안이함‘을 불렀다. 지난2년여 간 웹에선 간단한 아이디어와 기술이 결합된 상품-서비스들이 많이 등 장했다. 그러나 만들기 쉬운 만큼 ‘라이프사이클‘ 역시 짧았다.

    대다수 인터넷기업들은 지속적인 기술개발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점에 공감하고 있다. 서울 여의도 벤처기업 D사의 박모 대표이사는 ”선발 외국기업들의 기술을 따라잡는 것은 수지 면에서도 불가능한 일이 됐다. 그러나 ‘새로운 패러다임‘의 첨단기술을 독자 개발하거 나 원천기술을 능하가하는 응용 기술을 만들면 된다”고 말했다. 문 제는 실천력. 그 결과는 특허출원으로 나타난다. 지난해 특허청에 접수된 인터넷비즈니스모델 관련 특허신청은 300여 건으로 추산된 다. 정보통신 정책연구원 관계지는 ”국제출원까지 할 수 있는 원천 기술이 얼마나 되는지가 중요하다. 그런 특허가 많이 나오는 것이 IT 부국으로 가는 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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