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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북한 ‘내외 격리식 개방’으로 간다

국정원 북한 개혁 - 개방 전망… 중국식 정경분리 방식 적용, 수출지향형 공업 우선 추구

  • < 김당 기자 dangk@donga.com>

북한 ‘내외 격리식 개방’으로 간다

북한 ‘내외 격리식 개방’으로 간다
‘북한이 지난 1992년 외국인 투자법을 제정한 이래 ‘개혁-개방’은 지난 10년 동안 북한의 본질적 변화를 가늠하는 핵심 키워드였다. 지난 10년 동안 수많은 대북 전문가들과 북한 연구자들 그리고 북한 담당 기자들이 개혁-개방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전망했지만 아직 ‘똑 떨어지는 정답’이 나오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사정이 이럴진대 북한의 변화를 판단하는 한국과 미국의 시각이 꼭 같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3월7일 부시 공화당 행정부 출범 이후 처음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은 북한의 변화를 바라보는 한-미간의 ‘눈높이’를 맞추기 위한 탐색전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현재 부시 행정부는 향후 한반도 정책이 입안될 때까지 약 6개월 동안은 신중한 자세로 북한의 변화를 주시하겠다는 것이다. 파월 미 국무장관은 최근 “경기장 입장권”(ticket to the stadium)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한의 태도가 관계개선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공식 언급한 바 있다. 또 지난 2월에 열린 한-미 외무장관회담에서 미국측은 북미수교의 3대 조건으로 △북한의 재래식무기 감축 △북미 미사일협상의 완전 타결 △이들 문제에 대한 합의이행 여부의 철저한 검증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국은 본질적으로는 변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북한에 ‘본질적인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제도, 환경 미비 추진 속도에는 한계

북한 ‘내외 격리식 개방’으로 간다
따라서 김대중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 진전 및 북한의 변화를 주지시키고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를 기대하려면 북한에 시간을 줘야 한다고 설득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즉 남북정상회담 이전에 나온 아미티지-럼스펠드 보고서에 기초해 대북정책을 수립하지 말고 적어도 향후 6개월 동안은 시간을 갖고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라는 주문인 셈이다. 북한의 변화를 가장 꼼꼼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국가정보원장이 지난 2월11∼17일 미국을 방문한 목적도 그러한 설득을 위한 사전 조율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2월20일 임동원 국정원장이 국회 정보위에 보고한 ‘북한의 개혁-개방 전망’은 북한의 변화에 대한 국정원의 시각과 평가를 담고 있어 관심을 끈다.

북한의 본질적인 변화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잣대는 개혁-개방 전망이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국정원은 북한의 개혁-개방에 대한 직접적인 전망보다는 북한이 현재 ‘정책전환을 모색하는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듯하다. 올해 들어 북한이 ‘신사고’를 주창한 데 이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상하이(上海)를 전격 방문한 것 같은 발언과 행보가 그러한 ‘징후’의 판단 근거들인 셈이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중국 방문 후 귀로에 신의주 경공업공장을 현지지도(1월21∼23일) 하면서 “최신 과학기술의 적극 수용과 낡은 관념 탈피”를 촉구하였으며 평양으로 귀환한 직후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김용순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경제대표단을 베이징-상하이에 파견(2월2∼11일)하여 “중국의 경험을 연구-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것”을 지시한 바 있다. 이와 함께 북한이 무역과 외자유치 실무를 주관하는 내각의 관료들을 실무지식과 전문성을 겸비한 40∼50대로 점차 교체하고 있다. 국정원에 따르면, 북한은 최근 △무역상에 전 종합설비 수출입회사 사장 이광근(46) △재정상에 재정-금융 전문가인 문일봉(50대 초반) △중앙은행 총재에 국제 합영업무 전문가 김완수(50대 초반)를 기용했다.

그러나 국정원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김정일의 의지와는 달리 북한의 내외 정책환경은 미비한 것으로 평가된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대목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려는 김정일의 의지’다. 즉 최고 지도자인 김정일은 개혁-개방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제도와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를테면 장기간 폐쇄노선을 유지한 가운데 자본주의 상거래 경험이 절대 부족함에 따라 개혁-개방 추진 속도에 한계가 있을 것이며 낮은 국제신용도, 협소한 내수시장, 노후한 산업시설, 에너지난 등에 따라 국제사회로부터의 투자재원 조달이 어려운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내수시장 규모는 중국의 1.6%, 한국의 4.2%, 베트남의 11.3%에 불과한 반면 북한 외채총액(1999년)은 123억달러로 GNP(국민총생)의 78% 수준이다.

긍정적인 전망도 있다. 우선 지정학적으로 중-러-일을 연결하는 물류거점으로서의 발전 가능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일부 광물자원은 국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지적된다. 이를테면 마그네사이트 매장량은 36억t으로 세계 1위이며, 텅스텐은 66만t으로 세계 2위이다. 또 외국인 투자법(92년10월) 등 58개의 관련 법규를 제정해 이미 제도적 장치를 어느 정도 구비했고, 다른 나라들의 개혁-개방을 벤치마킹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국 개방 초기보다는 다소 유리한 측면도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은 이와 같은 분석을 근거로 향후 북한의 개혁-개방 정책방향에 대해 “사회주의 이념과 정치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한 중국식 정경분리 방식을 주로 원용할 것이며, 수출지향형 공업발전을 우선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은 “서해안의 신의주-남포-개성과 동해안의 금강산-원산-청진 등을 축으로 경제특구를 설치해 ‘내외 격리식 개방’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면서 ‘선군(先軍) 정치’ 아래 군을 경제건설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해 눈길을 끈다. ‘단계적 추진’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국정원이 북한의 ‘내외 격리식 개방’을 공개 전망한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이와 더불어 ‘군을 경제건설에 적극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도 관심을 끈다. 이는 개혁`-`개방에 가장 보수적인 군부를 ‘공범’으로 끌어들이려는 김정일의 의도로 읽히기 때문이다. 김정일 위원장이 상하이 방문에 군부 인사들을 대동한 것에 그러한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의 상하이 방문은 북한 간부들이 개방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현실에 적용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다. 김정일 위원장을 수행했던 당과 군의 선전담당 간부들(정하철 선전선동부장, 박재경-현철해 대장)은 그들 지도자의 상하이 시찰을 다양한 관련 ‘말씀’과 더불어 인민과 군인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이를 통해서 중국식으로 표현하면 경제분야에서 부분적이나마 ‘사상해방’이 이루어질 것으로 기대된다.”(이종석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북한이 2001년을 맞이해 새로 주장하고 있는 ‘신사고’는 지난 10년 동안 고수해온 체제유지 전략이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정책 변화’는 구소련이나 중국에서처럼 사회주의 체제의 근본을 뒤흔드는 방식은 아니다. 북한의 사회주의 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킨 채 과학기술 육성과 정보기술산업으로 ‘단번 도약’해보겠다는 것이 북한 경제정책 방향 변화의 핵심이다.”(서재진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국정원의 ‘북한의 개혁-개방 전망’ 보고는 ‘대외용’이 아니라 국회에 보고하기 위한 ‘대내용’이다. 또 국정원은 남북대화 및 대북전략뿐만 아니라 방첩-대공수사 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북한의 변화에 대한 판단 또한 신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정보 및 대북전략 분야에서 일하는 국정원 직원들은 요즘 “북한이 많이 변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 근거는 “정상회담 이후 시작된 각종 남북 회담 가운데 국방장관 회담을 빼고는 다 우리측 ‘일정표’대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와는 달리 무리한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고분고분해졌다’는 것이다. 바로 이런 전망이 북한의 변화를 지켜보는, ‘시간 벌기’를 목표로 삼은 한-미 정상회담의 성공을 낙관하는 근거인 것이다.



주간동아 2001.03.15 275호 (p8~9)

< 김당 기자 da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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