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70

2001.02.08

메이저리그보다 한국 프로야구 수준이 높다?

  • 입력2005-03-17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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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리그보다 한국 프로야구 수준이 높다?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켜보던 프로야구 스카우트들의 눈빛이 영 마뜩지 않았기 때문이다.

    30여개의 공을 던지고 난 뒤 주위가 술렁거리자 그를 데려온 에이전트 전영재씨는 그물망 앞에서 애써 설명했다. “로베주가 시드니올림픽에서 공을 던진 뒤 약 두달간 공을 만지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약 130km대이지만 평소 최고구속은 140km까지도 나옵니다. 이 점을 양해해서 피칭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줄리안 로베주. 23세의 네덜란드 왼손 투수. 시드니올림픽의 한국 경기를 꼼꼼히 지켜본 이들은 어렴풋이 기억날지도 모르겠다. 한국-네덜란드전서 호투하던 광경을 지켜본 김병현(애리조나)의 에이전트 전영재씨는 그가 한국에서도 충분히 활약할 수 있다고 보고 지난해 11월 야심만만한 트라이아웃을 열었다.

    국내 프로팀이 외국인 선수 수급을 위해 해외 트라이아웃은 더러 열었지만 트라이아웃이 국내에서 벌어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장소는 잠실 강변의 잠신중학교. 8개구단 스카우트들은 상당한 기대를 품고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한화에서는 스카우트는 물론 최동원, 윤동균 신임 코치가 참석했고 LG에서는 이광은 감독이 직접 나섰다. 잘만 하면 ‘물건’을 건질 수 있다는 기대를 품고….

    하지만 직구에 이어 변화구 십여 개를 던지고 난 뒤에도 스카우트들의 표정은 처음과 똑같았다. “저 정도 투수는 국내에도 많다”는 게 대부분의 의견인 듯했다. 여러 가지 주문을 해봤지만 별로 신통치 않았는지 중반부터는 스피드건을 아예 가방에 집어넣고 팔짱을 낀 채 지켜보는 이들도 있었다. 전영재씨를 더욱 당황스럽게 한 것은 그 다음이었다.



    트라이아웃 장소인 잠신중학교 2학년짜리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더니 135km대의 공을 씽씽 뿌려댔다. 2학년 나이에 그 정도 스피드면 참으로 대단한 것이다. 게다가 하체도 길게 쭉 뻗어 신체적으로나 기량적으로나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였다. 그 학생은 바로 전 한화 수석코치 유승안씨의 큰아들 유원상군.

    중학생이 트라이아웃에 나선 외국인 투수와 비슷한 스피드의 공을 뿌려댔으니 트라이아웃의 결과는 기대하나마나였다. 프로 구단은 그 뒤 줄리안 로베주를 더 이상 찾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국내 프로야구 관계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은 로베주가 메이저리그 미네소타 트윈스와 입단 계약을 마쳤다는 것. 국내 스카우트들의 눈과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의 눈은 전혀 다른 걸까. 아마도 메이저리그에서는 3년 가량 마이너리그서 단련시키면 충분히 써먹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듯싶다. 그러나 우리 사정이야 어디 그런가. 용병이란 1년 내에 승부를 봐야 하는데….

    네덜란드서 올해의 최고 투수상을 두 차례나 수상했다는 로베주로서는 오히려 잘된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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