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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ic|신해철 & 서태지

완숙미로 무장한 90년대 동반자

완숙미로 무장한 90년대 동반자

완숙미로 무장한 90년대 동반자
수컷들이란 절반의 허세, 그리고 절반의 콤플렉스로 이루어져 있다. 배를 잔뜩 부풀린 복어의 낯짝이 사실은 새파랗게 겁에 질려 있는 것처럼… 웃기는 건 섹스할 때도 무능력해 보일까 초조해 하는 의외의 소심함이지만, 웃기지도 않는 건 그러고 난 뒤에 허탈해 하고 고독해 하는 의외의 예민함이다….”(수컷의 몰락)

서태지와 더불어 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최전방을 형성했던 신해철이 20세기의 마지막 시즌에 조용히 돌아왔다. 넥스트, 모노크롬에 이어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젊은 밴드와 함께 뉴욕에서 실험한 앨범 ‘A Man’s life’(남자의 인생)를 안고. 이 앨범은 뮤지컬적으로 구성돼 있는 게 특징이다.

서태지와 신해철. 한국 대중음악의 마지막 90년대를 수놓은 이 두 음악감독은 시장에서의 영향력 차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팽팽한 평행선을 그려왔다. 신해철이 대학가요제 그랑프리 스타로서, 그리고 스스로 밝힌 대로 ‘고뇌하는 비겁자’로서 엘리트적 카리스마를 뿜어냈다면 서태지는 ‘거침없는 낙오자’로서의 반영웅적인 카리스마로 한국 대중문화의 구도를 뒤흔들었다.

서태지가 4년7개월 만에 발표한 컴백앨범이 랩과 메탈의 잡종교배인 하드코어의 지독한 질주로 이루어졌다면, 신해철의 2000년대 버전 ‘남자의 인생’은 서두에서 인용한 ‘수컷의 몰락’에 나온 독백처럼 신해철 특유의 아포리즘이 더욱 짙은 향기를 발한다. 여기에 장르의 순례자로서 그의 음악혼이 화려하게, 때론 우울하게, 그리고 열정적으로 전개된다.

하나의 테마를 극적으로 구성한 이른바 ‘컨셉트 앨범’에 관한 한 이 땅에서 신해철과 나란히 설 자가 없다. 그것은 이제 30대에 접어든 신해철이 뜨거운 가슴과 냉철한 지적 통찰력을 동시에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 4개의 단락으로 구성된 이 신작 앨범은 자신의 내면에 비친 한국 남성(성)에 대해 음악으로 기술한 인류학적 보고서다.



노래들은 넘치는 해학과 가슴 저미는 아픔, 그리고 진지함과 냉소가 록과 랩, 그리고 일렉트로닉한 사운드 메커니즘으로 팔색조처럼 하나씩 날개를 펼친다. 미묘하게도 이 앨범에는 복고적인 울림이 있다. 어쩌면 이 음악감독과 젊은 동료들은 20세기의 막다른 골목에서 이 세기의 정점이었던 비틀스의 1967년 걸작 앨범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가 획득했던 너비와 깊이에 대해 도전의 장갑을 던지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완숙미로 무장한 90년대 동반자
이 앨범의 백미는 전편에 걸쳐 잘 조율된 응집과 여백의 조화다. 달콤한 통속성의 유혹을 거세한 이 말과 음악의 향연은 노래마다 묵직한 여운을 길게 남긴다. 특히 열번째 트랙 ‘The Pressure’는 10대부터 60대까지 한국 남자들이 안고 있는 ‘압박’에 대해 극한적인 랩과 깊은 일렉트릭 기타의 리프, 그리고 초조한 음향심리학을 빚어내는 테크노 사운드가 거대한 융합을 이루는, 그야말로 ‘올해의 노래’로 추천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역작이다.

신해철과 서태지. 그것은 70년대의 신중현과 김민기, 80년대의 조용필과 들국화라는 명예의 전당의 뒤를 잇는 이름이다. 묘하게도 이 두 아티스트는 2000년에 각각 ‘울트라맨’과 ‘오버액션맨’이라는 대립항을 설정했다. 비트겐슈타인의 ‘남자의 일생’과 더불어 우리는 한국 대중음악의 20세기를 마감한다.



주간동아 2001.01.04 266호 (p87~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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