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6

2001.01.04

러시아 중산층은 다 죽었다?

5%의 신흥 부유층 ‘노브이루스키’ 초호화 생활… ‘빈부격차’ 갈수록 심각

  • 남혜현/ 연세대 유럽문화정보센터 전문연구원 russ3023@unitel.co.kr

    입력2005-03-04 14: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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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 중산층은 다 죽었다?
    지난해 러시아 남성의 평균수명은 58.83세, 알코올 소비량은 1인당 4.6ℓ로 세계 1위(미국은 2ℓ), 1인당 GDP는 3500달러 수준으로 미국의 10분의 1이고 중국의 5분의 1이다. 러시아는 병들어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의 가난 뒤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소수의 부(富)가 있다. 러시아 통계청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상위 10%의 총소득이 최하위 10%의 총소득보다 32배나 많다고 한다. 이렇게 빈부 격차가 심각한 나라는 전 지구상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사회의 양극화는 현재 러시아가 당면한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러시아 시민들은 “1%의 슈퍼 백만장자, 5%의 부유층, 15%의 중산층, 그리고 나머지 대부분의 빈민들이 러시아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국민들의 경제상황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 정상적인 개념의 ‘중산층’이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상위 10% 소득 하위 10% 32배

    물론 어디에서나 부유층과 빈곤층을 가르는 정확한 기준을 말하기란 쉽지 않지만 러시아에서 한달에 약 1만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면 부유층에 속한다. 사실 서울에서도 연봉 1억원을 넘는 사람들이 소수인 상황인데 뜻밖에도 모스크바에는 그 정도 부자가 흔하다. 모스크바에 있는 금융기관이나 대기업 매니저들은 실제 매달 1만달러를 훨씬 웃도는 월급을 받고 있다.

    전체 국민 가운데 부유층이 차지하는 비율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 없지만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산하 사회경제문제연구소가 조사한 바를 보면 전체 러시아 국민의 5%가 부유층이고 35% 가량이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부자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부자의 사회적 기원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구 소련시대에 당과 정부에서 권력을 쥐고 있던 사람들, 둘째 역시 구 소련시대에 외환거래나 불법적으로 생산된 제품의 판매에 종사하던 사람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련 해체 이후 등장한 기업가들로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부를 쌓아 존경과 부러움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러한 신흥 러시아 부유층을 일컫는 말로 노브이루스키(新러시아인)라는 새로운 용어가 생겨나기도 했다.

    노브이루스키들은 고급아파트와 도시 근교의 성 같은 전원주택에 살며 메르세데스나 렉서스 등 부의 상징인 외제 자동차를 몰고, 값비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사냥과 호화 해외여행이 이들의 취미다.

    반면 전통적으로 러시아에서 ‘가난한 사람’이라 하면 실업자나 연금생활자를 일컬었다. 그러나 현재는 빈곤층이 훨씬 확산돼 일자리가 있어도 가난한 사람이 다수를 차지한다. 많은 사람들이 몇 푼 안 되는 부수입을 얻기 위해 추운 거리에 나와 담배를 팔거나 낡고 보잘것없는 전화기, 수도꼭지, 램프, 접시 같은 생필품을 팔아 생활한다.

    더 슬픈 현실은 심각한 빈부격차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 없다는 것이다. 계층 상승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교육인데, 현재 부유층 자녀만이 사립유치원에서부터 각종 과외교육, 해외유학 등의 교육기회를 누리고 있다. 가난한 가정의 아이들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아 발육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대부분 작은 돈벌이라도 하러 거리로 나가기 때문에 책이라도 한 권 읽을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는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난은 대물림될 수밖에 없다.

    물론 최근 들어 국민 총소득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정부 발표를 보면 매년 9%씩 소득이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증가된 소득이 어떻게 배분되는지다. 불균등한 소득분배는 대다수 국민에게 상대적 박탈감만 부추기며 사회불안과 범죄율 증가의 원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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