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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 정치 중립이 경제 성장 원동력

13년째 FRB 의장 지킨 美 경제 버팀목… 클린턴, 정치적 압력 뿌리치고 신임

  • 김정렬/ 미 조지 워싱턴대 객원연구원

그린스펀 정치 중립이 경제 성장 원동력

그린스펀 정치 중립이 경제 성장 원동력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가 미국의 제43대 대통령으로 확정되었다. 그동안 개표 혼란이 지속되면서 미국 민주주의 위기에 우려의 목소리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마치 장거리 슬레드(눈썰매) 레이스 결과를 기다리듯 공방전을 차분하게 지켜보았다.

냉정함을 잃지 않는 미국인들의 느긋한 여유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자세히 살펴보면 최근 미국인들에게는 시끄러운 정치에 경제가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통념이 굳어져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통념은 미국인들의 기업인에 대한 믿음과 함께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도 13년째 주어진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연방준비위원회(FRB) 의장 앨런 그린스펀에 대한 확고한 신뢰 때문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 구축

그린스펀 정치 중립이 경제 성장 원동력
미국의 ‘경제 대통령’으로 불리는 그린스펀에 대한 신뢰를 확인이라도 하듯 최근 미국 서점가에는 그에 대한 책들이 베스트 셀러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워싱턴 포스트’의 대기자 보브 우드워드가 쓴 것 등 종류도 다양하다. 각종 잡지들도 그린스펀에 대한 찬사를 아끼지 않고 있다. ‘포천’은 미국 동전에 새겨진 ‘In God We Trust’를 원용한 ‘In Greenspan We Trust’라는 제목의 커버 스토리로, ‘비즈니스 위크’는 ‘그린스펀의 용감한 새로운 세계’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루고 있다. ‘타임’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74세인 그린스펀은 1926년 뉴욕의 증권 거래인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비교적 엄한 가정 분위기 속에서 보냈다. 음악에 뛰어난 소질을 보인 그의 첫 직업은 재즈악단의 색소폰과 클라리넷 연주가였으나 그후 경제학 공부를 하여 진로를 바꿔 월가에서 증권거래 상담소를 설립했다. 68년 닉슨 대통령 선거대책본부에서 경제 참모로 활동하면서 중앙 정계에 데뷔한 그는 74년부터 포드 대통령의 백악관 경제자문협의회(CEA)의 의장을 지냈다. 87년 레이건 대통령 시절 FRB의장으로 임명되었는데 그를 추천한 사람은 당시 재무장관이며 이번 플로리다 재검표 과정에서 민주당과의 법적 논쟁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제임스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다.



그린스펀은 레이건, 조지 부시, 빌 클린턴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FRB의장을 맡아왔다. 이번에 부시가 취임하면 4명의 대통령을 거치게 된다. 2004년 6월20일 네번째 임기를 마치면 윌리엄 멕체스니 마틴(19년간 재임) 다음으로 장수하는 FRB 의장이 된다. 그는 고희를 넘긴 97년 4월 미국 NBC 방송의 유명한 여기자 미첼(54)과 결혼했다.

그린스펀이 오랫동안 FRB 의장직을 유지하게 된 원인은 FRB의 효과적인 운영과 함께 정치에 중립적인 그의 태도 때문이다. 그 예로 그는 종신 공화당원이면서도 같은 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금리인하 종용을 거절했다. 그후 부시는 그린스펀의 고금리 정책 때문에 자신이 재선에 실패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을 재임명한 민주당 정부로부터 이번 대통령 선거 중에 금리를 인하하여 경기를 더욱 활성화하자는 압력을 받았으나 주식시장이 ‘비이성적 과잉’의 과열 기미를 보인다며 오히려 금리를 인상했다.

정치보다 시장을 중시하는 그의 원칙은 최근까지 그대로 지켜지고 있다. 이번 대선이 끝난 뒤 미국 경제의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일자 지난 12월5일 비로소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했는데 이로 인해 나스닥 지수가 하루 10.5% 상승한 274.05 포인트나 폭등했다. 그의 영향력은 국내에도 널리 알려져 최근 모 증권회사의 여론조사에서 올해 국내 증시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 주식 및 소비관련 지수가 하락하여 향후 미국 경제가 위축되고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지금까지 미국 경제가 10년 호황을 유지해온 요인이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신경제 현상과 함께 그린스펀이라는 든든한 버팀목 때문이라는 데에는 이설이 있을 수 없다. 또한 다른 정당 소속의 낯선 인물이지만 그에게 주어진 임기를 보장하고 그를 FRB 의장에 두 번이나 연속적으로 재임명한 클린턴 대통령의 선택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보브 우드워드 기자는 이런 점에 착안,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 주간 매거진에서 이들의 협력을 ‘동맹’이라고 표현하며 그 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1992년 12월3일 그린스펀은 이제 막 선거를 마친 클린턴 대통령 당선자의 초청을 받아 애틀랜타주의 리틀 록으로 날아갔다. 당시 부시 대통령과 껄끄러운 관계에 있었던 그는 새로운 당선자에 대한 기대가 남달랐다. 시간 제한 없이 당시의 경제 현안에 대해 설명하면서 그는 지난 대통령과는 다른 클린턴의 진지하고 전념하는 자세에 큰 감명을 받았다. 당시 경제 상황은 90, 91년의 불황에서 약간 벗어나고 있었지만 향후 전망은 그리 밝지 않았다. 무엇보다 대규모의 재정적자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있었고 단기금리(3%)보다 지나치게 높은 장기금리(7%)는 경제 성장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는 대통령 당선자에게 재정적자의 과감한 축소와 금리 격차를 줄일 것을 촉구했다. 대통령에 취임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사업에 필요한 지출수요가 많은 데다 경기 활성화라는 당면 과제 앞에서 그러한 결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그 시점에서 재정적자를 줄이지 않으면 곧 금융 대혼란이 올 것이라고 솔직하게 설명했다. 당시 대선에서 미국 경제의 회복을 주요 이슈로 들고 나온 클린턴은 결국 그린스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1997년까지 1400억달러 규모의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안을 채택하여 1993년 8월 재정적자 축소법안이 마침내 의회를 통과했다.

다음은 장-단기 금리간 격차를 줄이는 일이었다. 이 차이를 줄여야 돈이 소비와 투자로 흘러들어 경제가 활성화할 것이라고 그린스펀은 확신했다. 1994년 1월 그는 대통령을 찾아가 당시 장기금리가 낮아지는 추세에서 3%짜리 단기금리인 연방준비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금리는 낮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상에 반대했다. 그것이 경기를 위축시킬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해 2월 FRB는 단기금리를 0.15% 포인트 인상했다. 그 결정으로 당일 주식시장은 2년 만에 최고 낙폭으로 하락했다. 그래도 연방은행은 그후 4개월 동안 금리를 추가로 1% 포인트 더 인상했다.

금리인상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자 클린턴의 입장이 난처해지게 되었다. 시장에서 장기금리가 올라가자 재정적자 축소에 대한 정책도 그 효과를 잃고 있었다. 백악관 참모들도 그린스펀의 결정을 불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소신대로 단기금리를 1994년과 1995년 여름까지 6%로 인상했다.

1995년 연말 각종 경제지표가 호전되면서 이른바 ‘그린스펀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인플레는 3%대 이하에서 머물고 성장 기조가 완연해졌다. 실업률은 5.3%로 떨어졌으며 새로운 일자리는 계속 늘어났다. 그린스펀은 1996년 2월 FRB 의장에 재임명되었다. 클린턴은 쉽게 재선됐고 미국경제는 본격적인 호황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저물가 속의 지속적인 성장, 그리고 낮은 실업률이라는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를 수정할 수밖에 없는 경이적인 실적을 기록한 두 사람은 2000년 1월 만나 서로 최고의 찬사를 주고 받았다. 실로 오랜 기간의 두 사람의 의미 있는 ‘동맹’이 성공을 거두는 순간이었다. 그린스펀이 다시 FRB 의장으로 임명된 것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경제학자인 그에게는 최고의 영광이었다. 클린턴도 경제 부문의 성공이 없었다면 모진 르윈스키 스캔들의 시련을 쉽게 통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클린턴은 새해 1월로 임기를 끝내지만 ‘동맹’의 한 축인 그린스펀 의장은 남은 임기까지 계속 업무를 수행한다. 새로 대통령이 되는 조지 W. 부시와 그린스펀과는 앞으로 어떤 관계를 이루게 될지 궁금하다. 시장을 중시하는 새 당선자와의 관계는 껄끄러웠던 아버지와는 다를 것으로 전망된다.



주간동아 2001.01.04 266호 (p58~59)

김정렬/ 미 조지 워싱턴대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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