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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레임덕 정치

‘두 마리 토끼 잡기’가 國難 부른다

‘위기의 한국호’ 구할 하나의 카드 뽑을 때 … ‘좋은 것 다 하려는’ 자세 버려야

‘두 마리 토끼 잡기’가 國難 부른다

‘두 마리 토끼 잡기’가 國難 부른다
국민 여러분이 바라는 국정개혁을 단행하겠다.” 12월8일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 수상을 위해 출국하면서 약속한 말이다. 그러나 진정 ‘국민이 바라는 국정개혁’은 단행되고 있는가. 물론 민주당 소장파들의 당정쇄신론에 따라 권노갑 전 최고위원이 정치 일선에서 후퇴했고, 민주당에는 새 지도부가 들어섰다. 그러나 민주당 당직개편이 ‘국정개혁’은 아니다. 한 부분은 될 수 있을지언정 국민 대다수의 바람과는 그 간극이 크다. 지금 국민들은 여당의 진용이 어떻게 짜이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만큼 한가롭지도 않고, 여유롭지도 못하다. 국민들은 지금 나라가 결딴나는지 마는지, 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는지 없는지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당직개편만 하더라도 “이번 인사로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이 체제가 얼마나 갈지 정말 걱정”(민주당 조순형 의원)이라는 내부 평가가 엄존한다. ‘인적 자원의 한계’를 절감할 김대통령의 고심을 짐작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일대 쇄신’이라고 보기에는 무엇인가 빠진 듯한 것도 사실이다. 물론 본격적인 국정쇄신책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구체적인 국정개혁 방안과 개혁은 2001년 1월 초로 미뤄졌다. 좀더 기다려야 할 사안이지만, “지금 이 수준이라면 기대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정치 개혁 의지 있는지 의문

김대통령이 말하는 ‘국정개혁’에 정치개혁이 들어 있는지도 미지수다. 집권 초기만 해도 김대통령은 정치개혁에 대단한 의욕을 보였다. 국민은 그야말로 ‘한국병’의 근원이자 모든 것이라 할 수 있는 정치 분야에 대단위 고강도 수술이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4·13 총선이 다가오면서 정치개혁에 대한 강력한 주문은 점차 공염불이 되었다. 김대통령 스스로도 지난해 8·15 경축사에서 국내 정치의 실상에 대해 “실로 민망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라고 자탄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김대통령이 정말 정치개혁을 추진할 의지를 가졌는지 그 자체를 의심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실 집권 중반을 지나치면서 김대통령의 말에서는 정치개혁에 대한 주문이 거의 사라졌다. 4대 부문 개혁이 우선이고 정치개혁은 그 다음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4대 부문 개혁마저 거의 좌초되고 있는 마당에 정치개혁을 쳐다볼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다. 집권 3년 차를 넘어가면 정치집단의 이기주의에 따라 정치개혁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 여의도 정치권의 중론이다.

여권이 제정 및 개정 의지를 거듭 밝혔던 국가보안법, 인권법, 부패방지법 등 핵심 개혁 법안들은 이미 2000년을 넘기게 되었다. 이 법안들은 마지막 국회에 제출조차 되지 않았거나 제출됐더라도 본격 심의도 시작되지 않았다.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 홍콩 말레이시아 등 한국과 비슷한 반열의 국가들도 이미 도입한 것이 부패방지법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부패방지법을 만들겠다고 ‘공수표’만 남발한 것이 벌써 몇년째다.



비록 여야간 이견이 있겠지만 김대통령이 이의 처리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면 국회에서 통과되고도 남았을 것이다. 부패방지법 하나 만들지 않는(못하는)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은 크다.

김대통령이 갑자기 ‘대처리즘’을 들고 나온 것도 의아하게 만든다. 김대통령은 12월19일 국무회의에서 “영국은 대처 총리의 지도 아래 철저하게 개혁을 해 경제를 되살렸다”며 “일시적으로 국민 고통만 줄이는데 급급해 개혁을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2001년 국정 지침의 일단을 엿보게 하는 언급이다.

김대통령이 ‘대처리즘’을 말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대처리즘 자체가 강력한 리더십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국민-주택은행 노조가 전면파업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12월22일 두 은행의 전격적인 합병 발표가 나왔다. 연내(2000년)에 금융개혁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힌 김대통령의 ‘의지’가 보인다. 그러나 이런 의지에 따라 대다수 서민들이 연말의 금융대란으로 커다란 불편을 겪는 것도 사실이다.

김대통령이 대처리즘을 말한 의도는 국정 개혁을 위한 것만으로 보기 힘들다. 국정 개혁은 물론이고 정국 주도력을 확실히 장악하겠다는 양수겸장의 카드로 읽힌다. 최근 여권 일각에서 ‘김종필 총리 재추대론’이 나오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국정 개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당 모두가 ‘힘’을 가져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판을 새로 짜지 않는 이상 김대중 정부가 ‘물리력’을 얻을 길은 거의 없다. 그렇다 해도 자민련과의 합당이 어렵다는 판단 아래 JP를 총리로 재추대, DJP 공조를 복원하겠다는 구상이 사실이라면 정말 ‘변하기로 작정한’ 대통령인지 의문을 품게 한다.

한나라당 의원들의 탈당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던 지난 98년 7월의 일이다. 당시 김대통령은 중앙 언론사 간부 등 오피니언 리더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햇볕정책이나 대기업 빅딜 등에 대한 시중의 여론을 탐색한 적이 있다. 당시 김대통령을 독대했던 한 언론사 간부는 정계재편의 위험성을 강조하면서 최우선 순위가 개혁이 되어야지 재집권을 염두에 두어서는 개혁마저 좌초할 수 있다는 뜻을 전했다.

그때 김대통령은 “여당의 과반 의석이 확보돼야 개혁을 위한 입법을 할 수 있다” “선거제도를 개혁해 다음 총선(99년 4·13 총선)에서 새로운 정치 세력이 자연히 합치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 ‘인위적인’ 재편 시도에는 야당의 전면적인 저항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 개혁도 사실상 난망이다. 따라서 국정 개혁과 정국 주도력 확보라는 두 개의 아젠다는 언뜻 보기에 동일선상에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서로 강경하게 상충될 수도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다. 단적으로 말해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다가 한 마리 토끼도 잡지 못할 수 있는 형국이라 할 수 있다.

김대통령은 경제 정책의 기조에 있어서도 대처리즘과 파퓰리즘(populism)을 동시에 추구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쉽게 얘기해서 일시적인 고통을 감수하면서 개혁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는 것이 대처리즘이라면, 선거철마다 대중에 영합하는 선심 정책을 펴는 것이 파퓰리즘이다.

파퓰리즘은 위기 직후에는 긴축과 개혁을 시도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정치 환경의 필요에 의해 각종 이익집단의 압력에 끌려다니며 표피적인 인기에 집착한다. 정책의 일관성을 잃는 것이다. 실제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에서는 80년대 이후 네 차례나 대통령 선거 이후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일본 또한 90년대에 집권 자민당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무려 여덟 차례의 경기 부양책을 통해 천문학적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재정적자와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뿐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중남미형 파퓰리즘에서 벗어나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한국통신 구조조정은 노조에 지나치게 많은 조항을 양보함으로써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높아졌고, 금융지주회사 방식의 금융 구조조정 역시 노조의 입장이 대폭 반영됨으로써 원칙과 효율성이 의심받게 됐다. 이 때문에 “이번 노-정 합의안대로라면 부실은행을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하지 않는 게 낫다”는 극단적 반발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공적자금 추가 조성만 해도 그렇다. 그 필요성은 이미 지난 4·13 총선 이전 이헌재 경제팀에 의해 제기됐다. 그러나 총선 정국의 와중에서 공적자금 추가 조성론은 실종됐다. 선거에 막대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결국 공적자금 추가 조성은 총선이 끝나고 진념 경제팀으로 그 총대가 넘어갔다.

개혁이냐 정권재창출이냐 선택의 기로

특히 상호 배타성이 강한 정책들을 ‘잡탕’으로 섞어 한꺼번에 묶고 추진하는 김대통령의 정책 혼선도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는 전형적 예에 속한다. 사실 생산적 복지와 시장경제는 어찌 보면 서로 대척점에 서있을 만큼 정책 기조의 간극이 크다. 그러나 김대통령은 ‘생산적 복지와 시장경제의 병행 발전’이란 애매한 개념에 아직 집착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도입 결과 부유층은 더욱 살찐 반면, 국민 대중은 경제발전과 성과분배로부터 배제되었다는 비판적 평가가 엄연히 존재한다(상자기사 참조). 한국신당 김용환 의원이 12월1일 국회 예결위 정책질의를 통해 “생산적 복지와 경제의 효율성을 같이 이룩하려는 이상은 좋지만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현 시점에선 한국경제의 체질적 개혁을 저해하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DJ노믹스’의 재검토를 주문한 것도 이런 까닭이다.

결국 김대통령은 ‘좋은 것은 다 하려는’ 기존의 태도에서 벗어나 어느 하나만 선택할 수밖에 없는 막다른 길에 당도한 것으로 보인다. 생산적 복지든, 신자유주의에 따른 시장경제의 번영이든 어느 하나만 택할 수밖에 없는 갈림길에 섰다고도 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강력한 개혁을 통해 정치-경제 발전의 발판을 이룩한 지도자로 남는 것과, 정권 재창출을 도모하기 위해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것 사이에서 어느 쪽을 택할지 무게 중심을 명확히 할 때가 되었다.

여권의 한 핵심 인사는 “김대통령이 ‘1%의 지지만 있어도 개혁을 계속하겠다’고 말한 것은 다분히 감정적으로 비칠 수 있다”며 “이미 때가 늦었다”고 말한다. 레임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만 선택하는 대승적 접근이 아쉽다는 지적도 많다. 민주당 김원기 최고위원이 지난 11월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쥐려면 재집권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사정이나 개혁도 (차기 대선의) 표와 연결돼 있다는 의심을 받기 때문에 안 된다”고 김대통령을 직접 겨냥해 쓴소리를 한 것은 아직도 대단히 유효한 것처럼 보인다.





주간동아 2001.01.04 266호 (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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