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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살아 있는 중국 현대문학史

70여년간 ‘안개’‘집’ 등 숱한 명작 발표… 세대 뛰어넘어 강력한 영향력 발휘

빠진, 살아 있는 중국 현대문학史

빠진, 살아 있는 중국 현대문학史
11월25일 중국 상하이 시내에 위치한 화동병원의 한 병실에서 오색 종이학 1025개가 뿌려졌다. 종이학은 이 병실에 입원한 97세 노인의 쾌차를 기원하며 직원들이 밤낮으로 일주일을 꼬박 접은 것. 오색 찬란한 종이학은 거리를 울긋불긋 물들이며 날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그 노인이 중국 문학계에 남겨놓은 거대한 족적을 음미하고 있었다. 이날은 바로 중국 당대의 대문호 빠진(파금)의 97회 생일이었다.

중국에서 5·4 운동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문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빠진. 그는 1920년대 초기에 처녀작을 쓴 이후 지난 1996년 최후의 작품 ‘차오위를 그리며’를 집필할 때까지 무려 70여년 동안 열정적인 저술활동을 계속해왔다. 그의 작품은 현재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를 비롯해 30여개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덕분에 그는 미국 과학원아카데미의 외국인 회원이 될 수 있었고 국제펜클럽 제47회 회의에서 세계 10대 문화 명인에 뽑히는 영광을 안았다. 이런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중국 정부는 1995년 중국이 발견한 소행성에 ‘빠진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국제사회에 공식 보고하기도 했다.

병실서 97세 생일… 쾌유기원 물결

빠진의 작품 세계는 시종 ‘진실된 마음’으로 일관되어 있다. 애정 3부작 ‘안개’ ‘비’ ‘전기’와 격류 3부작 ‘집’ ‘봄’ ‘가을’은 그의 이러한 작품 경향이 또렷이 드러난 대표작이다. 그는 중국 청년들의 이상과 신앙에 대한 험난한 추구의 과정을 생동감 있게 묘사함으로써 당대 젊은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왔다. 이들 작품에서 그는 봉건적 가족제도의 잔혹성을 리얼하게 고발했다. 이 때문에 그의 글은 구사회, 구제도, 부조리 세력에 대한 ‘폭로’ 그 자체로 인정받고 있다.

두 해 전부터 이 병원에 입원한 그는 틈만 나면 자기 생애의 마지막 소원이 중국 현대문학관의 완공을 보는 것이라고 말해왔다. 빠진은 지난 81년 중국 현대문학관의 건립을 정부에 제안한 뒤 꾸준히 이를 추진해 결국 병석에서 소원을 이뤘다. 그는 문학관 건립을 위해 82년 원고료 15만위엔과 8000여권의 소장 책을 기증함으로써 문단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전국 각계각층으로부터 모두 300만위엔의 성금이 답지했고, 문학관은 지난 5월23일 마침내 문을 열었다. 이날 빠진은 병석에서 TV를 지켜보면서 뛸 듯이 기뻐했다고 한다. 개관 5개월이 지난 문학관에는 벌써 30여만권의 장서가 모였다.



최근 며칠째 빠진이 입원한 병실은 사람들이 가져온 생화와 선물로 가득 찼다. 그 중 눈에 띄는 선물은 수정으로 받침판을 만든 금 용(龍)으로 상해작가협회에서 보내온 것이다. 2000년 용띠 해를 맞아 ‘용이 세상에 나타나니 안개가 만리에 자욱하다’라는 의미를 담아 제작된 작품. 이런 선물에서 보이듯 실로 중국문단은 수십 년 동안 빠진의 존재로 인해 빛을 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현대문학관의 정문에 있는 손도장도 바로 빠진의 것이다. 한번은 외국 여행객이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것을 건드렸는데 그것이 빠진의 손이라는 말을 듣고 경건한 마음으로 다시 만졌다고 한다. 천만 자에 달하는 그의 작품은 이제 세대를 뛰어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그는 독자들을 위해 새로운 작품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방식으로 끊임없이 사회와 독자들에게 다가섰다. 평생 자신의 도장을 찍어 책을 도서관에 보내온 빠진은 몸이 불편해진 최근에는 딸을 시켜 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상해도서관에 있는 ‘톨스토이 전집’도 그가 기증한 것으로, 중국 내에 단 한 부밖에 없는 판본이다. 그가 이 서적을 기증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번역작가 초우잉은 곧장 병원으로 달려와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다. 책뿐만 아니라 청소년 사업과 재취업 사업, 자선사업 등 각종 사회사업에 자신이 평생토록 모아둔 돈도 최근 모두 기증했다.

빠진의 생일을 맞아 상하이 시민들은 날아다니는 종이학을 바라보며 그에게 축복을 보내고 있다.



주간동아 2000.12.21 264호 (p6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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