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4

2000.12.21

편견 뚫고 세상 밖으로…

에이즈 감염자 ‘첫 송년회’… 자원봉사자 등 초청 감사의 자리 마련

  • 입력2005-06-09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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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견 뚫고 세상 밖으로…
    서울에 거주하는 에이즈 감염자들이 한데 모여 ‘송년회’를 가졌다. 이런 모임이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 이들은 자신을 위해 자원봉사하고 도움을 준 사람들을 초청해 간단한 다과를 대접하며 굴곡 많았던 한 해를 정리했다. 모임을 주최한 에이즈 감염자들은 언론매체로는 유일하게 ‘주간동아’에 초청장을 보내 취재에 응했다. 주최측은 “에이즈 감염자들의 안타까운 실상을 전한 주간동아 기사(금년 8월10일자, 246호)에 대한 소박한 답례”라고 말했다.

    80여명의 에이즈 감염자들 모임인 K-Plus 정보쉼터는 12월8일 오후 6시부터 3시간 동안 서울 대학로 한 음식업소에서 ‘정보쉼터 회원 및 자원봉사자 송년의 밤’ 행사를 열었다. 이날 기자가 행사장에서 만난 정보쉼터 회원 이모씨(32). 결혼을 준비하는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그는 지난 7월 에이즈 감염사실을 통보받고 눈앞이 캄캄해졌다. “누구에게 얘기할 수도 없었다. 하루도 안 빠지고 술 마시고 하늘을 쳐다보며 눈물 흘리고… 딱 한 달을 그렇게 보냈다.”(이씨) 그러나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달라졌다. 지금은 약도 열심히 먹고 회사 일도 예전처럼 한다. 이날은 회사에서 일찍 퇴근해 에이즈 송년모임에 참석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는 “올해, 내 운명이 바뀌었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기 위해 이 모임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45세의 최모씨. 부인과 자녀를 둔 그는 다른 질병으로 병원치료를 받던 중 에이즈감염사실을 알게 됐다. 감염된 뒤 상당 기간 방치돼 있어서 그는 발병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다. 정보쉼터의 다른 감염자들이 그를 물심양면으로 간병했다. 정보쉼터에선 감염자들이 서로를 위로하고 상황이 더 나쁜 사람을 무료로 간병해주는 전통이 세워지고 있다. 이는 감염 후 새 삶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최씨는 “이곳까지 올 정도로 기력을 되찾게 돼 기쁘다. 오늘의 송년모임이 흐뭇하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장엔 에이즈발병환자들을 돌봐온 주부, 매달 감염자들을 후원해 온 외국계 제약업체 MSD 관계자, 감염자들의 비밀보장과 치료에 앞장서온 국립보건원과 서울시 의약과 관계자 등 일반인 20여명이 초청됐다. 이중엔 외국의 최신 에이즈치료 자료를 알려주는 일을 해온 20대 번역가, 그의 부탁을 받고 감염자들을 위해 인터넷 홈페이지를 무료로 제작해 주고 있는 컴퓨터 전문가도 있었다.

    서울대학병원 간호사 황은영씨는 에이즈환자 전용 병동에서 거리낌없이 친절하게 간호를 해와 감염자들 사이에선 ‘천사’라고 불린다. 그녀는 입구에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에이즈 예방 및 퇴치활동과 관련된 사회단체에서 일하다 퇴직한 한 여직원은 행사장에 들어서자마자 두 손으로 감염자들과 손뼉을 마주치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에이즈 감염 공포를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차분하게 전화상담을 해주고 있는 20대의 한 여성도 이날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행사에선 처음 인사를 나누는 감염자들과 일반인들도 있었다.



    정보쉼터 운영을 맡고 있는 김모씨는 “초청받은 이들은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극복한 사람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나빠질까 염려해주는 것을 빼면 우리를 똑같은 사회구성원으로 대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회원들은 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염자들과 초청받은 사람들은 함께 식사를 한 뒤 주최측이 준비한 간단한 공연을 보며 송년행사를 보냈다. 이 행사에 자리를 빌려준 업소 관계자는 “송년모임인데 술을 시키지 않아 이상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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