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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 점령한 프라다 베르사체…

‘명품 열풍’ 타고 ‘묻지 마 쇼핑’ 확산 …소비심리 위축 불구, 올 1조원대 시장

서울 거리 점령한 프라다 베르사체…

서울 거리 점령한 프라다 베르사체…
드라마 ‘줄리엣의 남자’에서 차태현이 메고 나온 루이비통 가방은 어디서 살 수 있나요?” “장혁이 뮤직비디오 촬영할 때 썼던 선글라스가 무척 멋져 보여서 사고 싶어요.”

요즘 백화점 명품매장이나 인터넷 쇼핑몰에는 이런 문의를 해오는 사람들이 많다. 김희선의 카르티에 시계나 고소영의 샤넬 핸드백이 삽시간에 유명해져 매장마다 품절 사태를 이루곤 했던 것이 이젠 그리 신기한 일도 아니다. 일부 부유층 여성들의 전유물이던 ‘명품’이 이제는 누구나 갖고 싶어하고,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물건이 된 것이다.

명품을 좋아하지만 비싼 가격 때문에 벼르고 별러서 하나씩 장만한다는 김은정씨(25)는 올해 대기업에 들어간 새내기 직장인. 그는 올 여름 휴가 때 싱가포르를 여행하면서 평소 갖고 싶었던 셀린느 핸드백을 하나 사왔다. “한껏 차려입고 난 다음, 그 백을 메고 집을 나설 때는 정말 기분이 상쾌해요. 뭔가 평소와는 다른 기분이죠. 학생 때는 이태원에서 ‘짜가’(명품을 카피한 가짜)도 많이 샀는데, 이제 그런 건 안 사게 돼요. 제 월급에 비하면 엄청 비싼 물건들이지만 아까운 마음 전혀 없어요.” 김씨가 말하는 명품의 좋은 점은 ‘유행을 타지 않고 견고하다’는 것. 그러나 사실 명품도 유행을 탄다.

“디자인이 맘에 들어 구입하는데, 그렇다고 몇 년씩 그것만 쓰지는 않는다. 유행이 바뀌면 또 새 상품을 구입하고 싶어진다.”(회사원 박영미씨) “명품일수록 더 유행에 민감한 제품들이 많다. 결혼할 때 산 구치의 하이힐은 1~2회 신고 나서 지금껏 신발장 속에 처박혀 있다”(주부 이명원씨)고 말하는 사람들도 적잖다.

유행 안 타고 견고하고 실용적?



비싼 물건이라고 매일 그것만 쓰는 것도 아니고, 대를 물려가며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왜 거금을 아끼지 않고 이런 명품을 사는 것일까. 이에 대해 정신과 전문의 김대진씨는 “사람들은 값비싼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남보다 우위에 있다는 만족감을 얻는다”고 설명한다. 사람들은 물건 소비를 통해 정체성을 새로이 규정짓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한다는 김씨는 “일류가 되고 싶은 욕망을 가장 손쉽게 채워주는 것이 바로 무언가를 사는 행위이다. 명품을 하나 가지면 마치 자신의 전부가 변할 수 있으리란 착각을 하게 된다”고 말한다.

직장인이나 학생들까지 용돈을 아껴 명품을 구입하고 있는 현상,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의 매출이 지난 10년 동안(IMF 때조차) 한번도 줄어든 적이 없고 백화점뿐 아니라 재래시장 쇼핑몰에까지 명품관이 들어서고 있는 지금의 현상은 가히 ‘명품 열풍’이라 부를 만하다. 업계에서 추산하는 명품 브랜드 제품의 시장 규모는 1조원, 명품을 그대로 카피한 복제품 시장도 5000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대문 종합쇼핑몰 밀리오레 지하 2층의 수입 전문매장에서 만난 한 상인은 “요즘엔 고등학생 손님들도 많다. 최근 위층 매장들은 매출이 많이 줄었는데 수입매장들은 꾸준히 장사가 잘 되는 편이다”고 말한다. 주로 구두, 가방 등의 잡화를 파는 이곳에 여성용 에트로 니트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눈에 띄어 가격을 물어보니 65만원. 어느 주부가 특별히 주문해 갖다놓은 것이라고.

두산타워의 지하 수입매장은 동대문 쇼핑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생긴 곳. 전체 200여개 매장 중 30여 군데서 수입 명품을 취급한다. 30~40대 주부들과 직장여성들, 일본 여행객, 유흥업소 종사자들이 주고객이었으나 최근엔 20대 직장인들과 학생들까지 즐겨 찾는다. 두산타워 마케팅본부의 채근식 차장은 “경기침체로 소비심리가 위축되었지만 명품에 대한 구매 욕구는 오히려 더 높아졌다. 올 봄 이후 매출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여서 내년 재임대 계약 때 명품 매장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이곳에서는 백화점에서 130만원 정도 하는 프라다 볼링백이 90만원, 80만원짜리 구치 핸드백이 55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었다. 점주들이 바이어를 통하지 않고 직접 외국에 나가 구입해오기 때문에 백화점보다 싼 가격에 팔 수 있다고 한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순화 연구원은 우리 사회의 ‘명품 선호’에 대해 “상류층의 ‘구분짓기’와 중산층의 ‘따라하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고 분석한다. “부유층 젊은이들에게 명품은 자신들을 다른 계층과 구분짓는 수단인데 반해, 중산층과 어린 학생들은 그 브랜드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매혹된다. 특정 상표가 가진 이미지를 가져와 자신을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에, 분에 넘치는 과소비를 하거나 모조품을 찾는 현상이 벌어진다.”

‘오렌지족’ ‘갤러리아족’을 탄생시킨 우리나라 패션의 중심가 청담동 명품거리와 2차로를 사이에 두고 맞닿은 곳에는 ‘갤러리아족’을 꿈꾸는 사람들을 위한 ‘명품 틈새시장’이 들어서 있다. 명품을 본떠 만들어 파는 ‘명품 카피 패션숍’, 여러 브랜드의 해외 명품을 한곳에 모아 할인 판매하는 ‘명품 멀티숍’, 중고명품을 사고 파는 ‘중고 명품숍’까지…. 이 거리는 ‘명품족’과 비슷한 그룹에 속하고 싶어하는 중산층, 실용주의 노선을 견지한 20, 30대 실속파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분위기는 명품이면서 가격은 국산 브랜드 수준의 명품 카피 패션숍에는 막스마라의 핸드메이드 코트와 아르마니 남성 정장을 똑같이 만들어달라는 고객들의 주문이 들어온다. 맞춤정장을 주로 취급하는 ‘모니크 앤 마일’은 최근 신문에 소개된 뒤 매출이 30% 이상 늘었다. 강선희 디자인실장에 의하면 고객들은 외국 잡지나 백화점 매장에서 디자인을 보고 와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한다. “고급 수입원단을 써서 똑같이 만들기 때문에 진품과 거의 차이가 없다. 맞춤옷이라 몸에도 잘 맞아 고객들의 만족도가 높다”고.

주머니가 가벼운 사람들과 학생들은 이대 앞, 이태원을 돌며 보다 값싼 ‘명품’을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판다. 이대 앞에서 만난 여고생 이지연씨(17)는 “어차피 폼만 낼 건데, 최대한 비슷하고 싸면 그만이죠, 뭐”라고 말한다. 이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건 오랜 전통과 뛰어난 품질의 샤넬이나 프라다 제품이 아니라, 그것이 갖고 있는 ‘이미지’와 ‘파워’인 것이다.





주간동아 2000.11.02 257호 (p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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