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2

2000.09.21

담백한 흰 살결 ‘혀의 감동’

  • 입력2005-06-22 09: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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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백한 흰 살결 ‘혀의 감동’
    절기상 백로(白露)에는 하얀 이슬이 비치고, 고추잠자리 떼 날개에 투명한 하늘이 비치는 시기다. 가을 손님이 먼 데서 오면 무엇으로 대접할까. 단연코 나는 쏘가리(所加里)회와 쏘가리탕을 내올 것이다. 선암사와 송광사, 섬진강 중심점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오후의 햇살을 받고 주암호나 상사호 또는 섬진강을 따라 돌다 보면, 물 위로 몇 자씩 솟아 먹이를 사냥하는 이놈을 만나곤 한다.

    산노을에 젖어 가까이 튀어오를 때는 등판의 섬세한 무늬가 신라 금관을 보듯 거의 환상적일 때가 있다. 중국의 3대 산천어는 그 첫째가 쏘가리(퀘이유이·궐어)요, 둘째가 백어(파이유이)요, 셋째가 금잉어인데 중국을 여행하면서 흔히 만나는 것은 잉어 식탁이다. 그만큼 쏘가리는 귀하고, 암반이 깔린 사질양토의 맑은 물이 휘돌아나가는 강이 아니면 자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국토 산수 생김새의 멋을 온통 쳐바르고 태어난 것이 쏘가리다. 성깔 또한 괴팍해서 금방 자지러진다. 이런 강폭을 만나면 물밑 자라가 암반 위에 올라와 새까맣게 달라붙어 햇빛에 몸을 말리고, 쏘가리는 참물구덩이에서 튀어오르는 게 우리 산수의 생동하는 멋이다.

    이런 선-불-유(仙佛儒)로 착색된 강길을 따라 돌다 보면 그래도 안심하고 쏘가리회와 쏘가리탕을 들 수 있는 몇 집이 추암호와 상사호의 숲속에 감춰져 있다. 섬진강변은 번번이 허탕치기 일쑤다. 담수호에 비해 참물구덩이가 그만큼 적고 오염되어 간다는 증거다. 쏘가리맛은 성깔 그대로 톡 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회일 경우는 5~6년산 50cm급, 그 눈빛처럼 흰 살결에서 씹히는 담백한 맛에 있다. 얇게 바르면 바를수록 좋다. 또 탕일 경우는 보통 살을 발라낸 ‘뼛꼬시’로 끓인다. 그렇지만 제대로 한번쯤 즐기려면 회 따로 국 따로가 좋다.

    1kg(8만원)쯤 되는 놈으로 두 마리(4인분)를 떠서 한 마리는 횟감으로 한 마리는 탕감으로 쓰는 게 좋다. 회는 누구나 칼을 놀릴 줄 알지만 탕만은 특별한 노하우가 필요하다. 이 노하우(지금은 맥이 끊겼지만)만 터득한다면 옛날 궁중에서 임금이 들었던 승가기탕(勝歌妓蕩·노래보다 기생보다 낫다는 음식, 승가기악탕이라고도 함)보다 나은 게 쏘가리탕이다.



    바다에서 갯바위 낚시질을 하다 보면, 낚싯대를 휘고 기타 소리를 내며 기생춤을 추는 손맛의 물고기인 도미(감성돔)가 주재료인 것이 승가기탕이다. 또 강물에서 흘림낚시(공갈낚시)를 하다보면 물 위로 1m쯤 휘솟아서 낚시를 채는 것이 쏘가리다. 이 두 물고기는 맛도 성깔 그대로다. 그러나 그 깨끗한 맛이나 몸빛깔의 문양에 있어서 도미는 쏘가리를 따라올 수 없다.

    보통 쏘가리 중 1000마리에 한 마리꼴로 보일까말까 하는 황쏘가리란 게 있다. 옛날에는 한강이 주산지였지만 지금은 소양강으로 옮겨져 있다. 천연보호수종(190호)인데도 스쿠버들에 의해 이따금 박제로 혹은 산 채로 일본에 나가고 있는 사실을 안다면 아연실색할 것이다. 쏘가리회 중에서도 ‘황쏘가리 맛’이 일품이다. 중국의 쏘가리도 ‘궐어’라 해서 우리의 황쏘가리보다는 한 등급 아래의 수종일 뿐이다. 동시에 일본도자기 문양에 쏘가리가 새겨진 것은 한국에서 넘어간 도자기로 보면 거의 맞는 말일 것이다. 쏘가리 맛은 복사꽃이 필 때가 제대로다. 장지화(張志和)의 시에도 ‘도화유수궐어비’(桃花流水食厥魚肥)라고 그 맛을 찬탄하고 있다. 이때가 호박빛 알을 뿜기 직전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상사호 주변에선 그런 대로 맛을 내는 개미나 노하우는 없지만 생식할 수 있는 집이 선암사 건너편 강가에 있는 쌍암(雙岩·상사호)의 신흥가든(김경선·순천시 승주읍 유평리 27-2, 061-751-91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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