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50

2000.09.07

‘의리의 사나이’ 이봉주

  • 입력2005-06-15 13:23: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의리의 사나이’ 이봉주
    “엄니, 나 이쁘죠?” 한 대기업의 인형극 CF에서 ‘봉달이’ 이봉주(30)가 올림픽 남자마라톤에서 극적인 역전 우승을 차지한 뒤 하는 말이다. 이봉주는 이 광고를 통해 자신이 직접 출연하지 않고도 억대의 광고료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2000시드니올림픽(9월15일∼10월1일)이 다가옴에 따라 요즘 ‘국민마라토너’ 이봉주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많은 메달 후보가 있지만 남자마라톤은 ‘올림픽의 꽃’이라는 표현답게 전세계적 시선을 끌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봉주 한 명만 금메달을 따면 한국대표팀의 전체 성적이 저조하더라도 이번 올림픽은 무조건 성공”이라는 대한체육회 한 관계자의 우스개 말이 마라톤의 파괴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봉주를 둘러싸고 몇 가지 일화가 있다. 이 일화들은 다시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는 그의 외모와 성격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봉주는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턱수염을 기른다. 그러다 보니 턱수염은 머리띠와 함께 ‘봉달이’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이는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은메달) 때부터 시작된 습관이다. 처음에는 귀찮아서 깎지 않은 것이 강한 이미지를 주는 것 같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나름대로 이봉주는 깔끔한 편이고 의외로 외모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그의 턱수염은 대회가 끝나면 말끔히 사라진다. 그는 대회가 끝나는 날 저녁 깨끗이 면도를 한 다음 언론에 모습을 드러낸다. 경기 때 그의 모습과 평상시 인터뷰 사진이 다른 것은 이 때문이다.



    이봉주는 짝수 해에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96년에는 올림픽 은메달과 12월 후쿠오카마라톤에서 우승, 세계 랭킹 1위에 올랐다. 97년은 국내대회서도 우승 한번 못할 정도의 극심한 슬럼프를 겪어 ‘이젠 끝났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지만 98년 그는 로테르담대회서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44초)을 세우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해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도 그의 차지. 99년 런던마라톤에선 힘만 빼다 왔고 이후 소속팀 코오롱에 사표를 내는 등 극심한 갈등을 겪었다. 그러나 2000년 소속팀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한국최고기록(2시간7분20초·2월 도쿄마라톤)을 세웠다. 그도 짝수 해를 의식하는 편이다. 이봉주는 그래서 이번 올림픽에 큰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이봉주는 의리파다. 그는 지난 6월 초 새로 창단된 삼성의 유니폼을 천신만고 끝에 입게 됐다. 이때 스카우트 비용과 연봉이 관심사였다. 이봉주는 사실 삼성의 창단이 늦어지자 1월 말 모 기업으로부터 연봉 3억원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말이 3억원이지 이봉주를 만난 그 기업의 회장은 백지수표나 다름없을 정도의 거액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사인 삼성의 움직임을 기다렸다. 돈보다 명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삼성과의 연봉협상에서도 부장급의 연봉(5000만원 추정)을 받기로 한 이봉주는 자신보다 후배들의 연봉을 올려달라고 요구했다. 인형광고도 삼성이 ‘의리파’인 이봉주에게 일종의 계약금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