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8

2000.08.24

싱어송라이터 남성 전유물 “노”

  • 입력2005-09-26 12: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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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어송라이터 남성 전유물 “노”
    모든 분야가 그러하지만 대중음악의 영역에서도 여성이 자신의 독자성을 증명하는 데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20세기가 개막하고도 근 30년이 흐르도록 여성에게는 투표권조차 주지 않았던 비정한 서구의 근대정신은 여성 뮤지션들을 철저히 새장 속의 새로 갇혀 있게 만들었다. 60년대 말 재니스 조플린, 70년대의 패티 스미스, 80년대의 마돈나, 90년대의 앨러니스 모리세트 같은 여성 전사가 출현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페미니즘의 부상과 거의 같은 시대적 공감대를 구성하고 있는 록조차도 사실 남성들의 전유물이었으며 메탈의 일부 경향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뻔뻔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사정 역시 그리 다르지 않다. 한국 대중음악사의 시원(始原)인 1926년 윤심덕의 ‘사의 찬미’ 이래 60년대까지 여성 보컬리스트들이 무대의 중심을 이루어 왔지만 그들은 흥행 시장의 꽃 이상의 사회적 지위와 미학적인 지위를 누리지 못했다. 작곡가와 작사가, 연주자와 편곡자, 기획자와 제작자 등 대중음악의 메커니즘을 움직이는 것은 거의 남자들이었다.

    70년대 벽두부터 일기 시작한 청년문화의 폭풍 아래 스스로 곡을 만들고 노래부르는 싱어송라이터의 시대가 문을 열자 여성 뮤지션들의 위치는 더욱 낮아졌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전국 음악대학 학생 중 70% 이상이 여학생임에도 제대로 된 싱어송라이터 하나 배출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수용자들이 대중음악계의 여성을 단지 성적 쾌락의 차원에서 바라보는 편견 속에 갇혀 있었다면 이 땅의 여성 음악도들은 대중음악을 마치 타락한 소돔의 아수라장으로 간주하는 편견의 무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렇지 않다면 한국 음악 교육의 커리큘럼이 그저 남의 음악이나 흉내내는 차원 이상의 것이 되지 못하는 것을 폭로하는 꼴이 될 것이다.



    혼성 록밴드 자우림을 얘기하기 위해 꽤 많은 길을 돌아왔다. 세번째 정규앨범을 막 발표한 이들은 경쾌하고 자유분방한 모던 록의 대표 주자로 자리잡았다. 나머지 세명의 남성 멤버에겐 야속하게 들리겠지만, 이 밴드의 이미지 라인은 작곡과 보컬, 그리고 기타를 맡고 있는 프런트 우먼 김윤아의 ‘앙큼’하고 ‘새침’하며 ‘어딘지 모르게 우울한’ 음악의 빛깔을 통해 형성된다.

    김윤아는 밴드를 이끄는 한국 최초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다. 그와 그의 동료들은 록 밴드가 집단 사망선고를 받은 이 가혹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한 이중 전략을 현명하게 구사한다.

    간결하면서도 발랄한 가벼움의 이미지와 독설적이고 냉소적인 문제 제기 능력의 조화로운 결합을 통해 자우림은 ‘만들어진’ 댄스그룹들의 정글을 교묘하게 헤쳐나가는 것이다. 즉 헤비메탈의 어둡고 강력한 일렉트릭 기타를 깐 신작의 머릿곡 ‘미쓰코리아’와 그 뒤를 받치는 밝고 명랑한 ‘매직 카펫 라이드’ 사이의 문지방을 이들은 밟고 서 있는 셈이다.

    깊은 우물과 같이 둔중하고 화산처럼 격렬하며 새처럼 선동적이던 전통 록의 문법은 새로운 세기에 이르러 심문받는 자리에 앉았다. 나날이 분절해 가는 세계의 속도 앞에서 이 음악의 미학적 소임은 이제 종지부를 찍는 것일까. 자우림은 영광스러운 과거와 혼란스러운 현재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미로를 헤집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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