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5

2000.08.03

아내들도 포르노그라피 주인공이고 싶다?

성기능 장애 등 성인여성 54%가 성생활 불만…‘비아그라’ 출현 후 사회적 관심사로 등장

  • 입력2005-08-08 11: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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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내들도 포르노그라피 주인공이고 싶다?
    “어땠어?” “좋았어” “남편 말이야?” “농협 말이야, 농협….”

    세 여자가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하는 얘기를 ‘엿듣는’ 광고의 한 장면이다. 은밀한 남편과의 ‘밤일’에 대해 주부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이제는 광고 소재로까지 등장하게 됐다.

    서갑숙씨가 지난해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를 출간했을 때만 해도 여성이 자신의 성경험을 공개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난 4월부터 SBS TV에서 부부의 성문화를 다룬 ‘아름다운 성’을 방송하면서 주부들이 공개적으로 성에 대한 발언을 쏟아놓고 있다. 다른 심야토크쇼에서도 부부의 성에 대해 어느 때보다 수위 높게 다룬다. 여러 남성과의 ‘부적절한 관계’를 이유로 단죄당했던 조선시대의 감동이나 어우동이 다시 태어나도 깜짝 놀랄 일이고 공자가 다시 태어난다면 땅을 칠 일이다.

    여성들이 성 문제에 솔직하게 접근하면서 덩달아 조명받게 된 것이 ‘여성의 성기능장애’다. 여성이 성욕을 갖는다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하던 단계에서 벗어나자마자 이제 원만한 성생활을 방해하는 성기능장애가 화두로 떠오른 것이다.

    미국에서는 최근 들어 유행처럼 시사주간지나 방송이 집중적으로 여성 성기능장애를 다루고 있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여성의 성기능장애를 커버스토리로 다뤘고, ‘USA투데이’는 1면을 할애했다. ‘US뉴스앤드월드리포트’지도 비슷한 기사를 실었고,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이처럼 여성의 성기능 장애를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르게 만든 것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비아그라의 출현이었다. 비아그라는 성기능장애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일종의 질병이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한편 “남성 성기능장애에 그처럼 효과가 있다는 비아그라가 왜 여성에게는 남성만큼 효과가 없는가”도 새로운 관심사로 떠올랐다. 비아그라 열풍의 후속타인 셈이다.

    비아그라가 당초 남성 성기능장애 치료제로 개발된 만큼 효과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게 미국 의사들의 얘기다. 미국 스탠퍼드대 약학대학의 산부인과장 메리 레이크 폴란은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와의 인터뷰에서 “비아그라가 여성을 위해 한 일이 있다면 여성이 갖고 있는 문제(성기능장애)에 대해 입을 열게 만든 것”이라면서, 실제 여성에게서 비아그라의 효과는 낮은 편이라고 말했다.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인용한 미국 시카고대학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미국 여성의 40% 이상이 성기능장애를 갖고 있으며 성기능장애 여성의 30% 이상이 성욕장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욕장애가 여성 성기능장애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 여성의 성기능장애 실태도 미국과 비슷하다. 이대 목동병원 성기능장애클리닉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인 20∼60대의 건강한 여성 가운데 54%가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고 응답했고, 36%는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이 병원에서 94년 남녀 34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는 남자의 경우 6명 중 1명이 성욕장애를 겪는 반면 여성은 3명 중 1명이 성욕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여성 성기능장애는 스트레스, 분노, 우울증, 배우자와의 관계 악화 등 심리적인 요인과 함께 당뇨병 갑상선질환 생식기질환 등 신체적인 이상이 있을 때 나타난다. 이밖에 항우울제나 심장병약 등을 복용할 때도 성욕이 저하되며 폐경기여성은 테스토스테론 호르몬의 급격한 감소로 성욕감퇴가 나타나고 에스트로겐 호르몬 역시 감소하면서 질이 건조해져 성교통이 생기기도 한다.

    성기능장애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지금까지 남성 중심으로만 이루어졌다는 지적에 따라 최근에는 ‘여성전용 비아그라’ 개발과 같이 여성의 성기능장애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보다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프록터 앤드 갬블사는 비아그라와 유사하게 여성의 혈액순환을 돕는 연고와 알약 패치 등을 개발 중이며 솔베이, 오가논사 등은 호르몬제 시판을 준비 중이다. 특히 프록터 앤드 갬블사에서 개발 중인 테스토스테론 패치는 피하주사 방식의 문제점을 보완해 난소절제수술을 받았거나 다른 이유로 성욕이 저하된 여성들에게 지속적으로 호르몬을 공급하는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지난 5월 발표된 임상실험 결과 밝혀졌다.

    미국 의사들은 성기능장애 여성들에게 혈액순환을 촉진시키고 성욕증진에 도움이 되는 비타민과 단백질을 섭취하는 식이요법을 처방하거나 비아그라 또는 테스토스테론 호르몬 크림, 패치 등을 쓴다. 비아그라는 여성에게 효과가 적은 대신 부작용도 거의 없다. 그러나 테스토스테론의 경우 호르몬계통 이상 여성에게 효과가 큰 반면 여드름, 발모촉진, 목소리의 남성화 등 부작용이 뒤따르며 특이 태아에게 해로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성 성기능장애의 심각함은 약물만으로 치료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는 데 있다. 서울 한사랑비뇨기과 문무성원장(52)은 “남성의 경우도 심리적인 요인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성들에게는 심리적인 요인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며 “특히 한국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성을 부끄럽게 여기는 교육을 받아 성에 대해 억압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를 가진 경우가 많고 남편과의 불화, 남편의 잦은 외도 등으로 인한 성욕장애가 흔하다”고 말했다.

    흥미로운 것은 여성들의 활발한 사회진출도 성욕장애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와 인터뷰를 한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대 재활학과 셰릴 킹스버그 조교수는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과 집안일을 병행해야 하는 현대여성들은 할 일이 너무 많다보니 ‘엄마 모드’에서 ‘연인 모드’로의 전환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무성원장도 우리나라에서는 부부의 생활리듬이 달라지는 데서 생기는 성욕장애가 많다고 말한다. 교육열이 높은 우리나라 주부들은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자녀의 생활리듬에 맞추다보니 남편과 함께 자리에 들었다가 일어나는 일이 거의 없어지면서 부부관계를 가질 기회를 잃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프라이버시 보장이 안 되는 아파트생활이 늘면서 성욕이 자연 감퇴하는 40대 이상 여성들은 성적 자극을 받을 기회가 없으면 성욕장애가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여성이 성기능장애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선 성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한다. 아울러 배우자와 솔직한 대화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밝히고 부부가 함께 성테크닉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런 단계를 거쳐도 해결되지 않으면 그때는 주저 말고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이대 목동병원 성기능장애클리닉의 비뇨기과 전문의 윤하나씨(30)는 “여성 성기능장애에 대한 관심은 전보다 높아졌지만 아직 클리닉을 찾는 여성은 극히 소수이며 그나마 폐경기 여성에 국한돼 있다”고 말한다.

    여성 성기능장애는 더 이상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질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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