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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경제대국 ‘꿈’ 이룰까

폭스 당선자, “NAFTA 통한 강력한 자유무역”…빈부격차 심화 등 우려 목소리도 높아

멕시코, 경제대국 ‘꿈’ 이룰까

멕시코, 경제대국 ‘꿈’ 이룰까
71년 만에 처음으로 야당후보인 국민행동당(PAN)의 비센테 폭스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 전세계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멕시코. 오는 12월1일 취임을 앞두고 각료 인선 등 차기 정부 구성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는 폭스 행정부가 펼쳐보일 경제 정책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멕시코는 중남미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통령 선거 등 정치적 사건이 있을 때마다 페소화가 폭락하는 등 경제 위기의 징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임 세디요 행정부가 꾸준히 펼쳐온 금융구조조정 등 경제 개혁 작업이 어느 정도 결실을 보고 있는 데다 폭스의 경제 노선이 ‘경제 개혁 지속, 개방 정책 가속화’ 등으로 평가받으면서 대통령 선거 이후 환율과 증시 모두 안정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정권교체 이후 멕시코를 방문해본 사람들은 ‘71년 만의 정권교체’라는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실감나지 않는다고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역사적인 여야간 정권교체라고는 하지만 기존 여당인 제도혁명당(PRI)과 국민행동당(PAN) 사이에 진보-보수 등 노선상 확연한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남미 등 제3세계에서 ‘정권교체=진보세력 집권’이라는 등식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폭스가 이끄는 국민행동당(PAN)의 경제정책이 기존 여당인 제도혁명당(PRI)보다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는 데다 대미지향적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고 다소 의외라는 반응을 나타내기도 한다.

아니나다를까, 폭스는 당선 직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통해 추진해온 미국과의 전면적 자유무역에 이어 인력 이동까지도 자유화하겠다는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폭스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향후 20년 안에 미국과의 국경을 허물자는 파격적 구상의 일단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에 화답하듯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폭스가 당선되자마자 미국 초청 의사를 밝혔다. 멕시코 정가 주변에서도 그가 미국과의 긴밀한 관계를 통해 경제 개혁을 가속화해나갈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멕시코 정가 주변에는 대선 과정에서 이미 미국이 음양으로 폭스 후보를 지원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있다. 그런 만큼 폭스의 경제 정책 역시 재정 긴축과 공기업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노선을 걷게 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멕시코 주재 주진엽 한국대사는 “야당이 당선되면 단기적으로 혼선을 겪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 경제가 안정되리라는 대선 이전의 예상과 달리, 오히려 야당 후보 당선 이후 단기적으로도 빠른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폭스 당선자의 경제감각은 멕시코 정치권 내에서도 어느 정도 공인받은 바 있다. 잘 알려진 대로 경영학을 전공한 폭스 당선자는 멕시코 코카콜라 사장을 역임했고, 당시 경영자로서의 경험을 살려 과나화토 주지사 시절에는 낙후한 지역인 과나화토주를 31개주 가운데 5위에 올려놓기도 했다.

폭스 당선자가 펼쳐보일 대외 개방 정책의 핵심은 지역 무역협정을 통한 수출 촉진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멕시코는 현재 전세계적으로 모두 28개국과 자유무역협정을 맺고 있다. 지난 94년 세계적 사건으로 기록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이미 발효 6년째를 맞았고 95년부터는 콜롬비아 베네수엘라 코스타리카 등으로 자유무역협정 대상국을 넓혀왔다. 지난해 11월 체결한 유럽연합과의 자유무역협정도 이미 7월1일자로 발효되어 유럽 15개 국가와 무관세 교역의 길을 열어놓았다. 자유무역협정은 멕시코 경제를 지탱하는 날줄이요 씨줄인 셈이다.



대외경제정책을 주관하는 에르미니요 블랑코 통상산업개발부 장관은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멕시코의 대외 개방 정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폭스 행정부에서도 유임이 유력하게 점쳐지는 경제 각료 중 한 명이다.

“지난 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될 때만 해도 대량의 미국 상품이 밀려들어와 멕시코의 국내 생산 기반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NAFTA 6년을 한마디로 평가해보면 대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대미 수출은 180%나 증가했고, 이미 멕시코는 세계인들에게 투자 최적격지로 평가받고 있다. 고용 측면에서도 NAFTA 발효 이후 100만명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져 애당초의 우려를 모두 씻어주었다.”

그러나 정부측의 이런 평가와 달리 NAFTA가 가져온 빈부 격차 심화 등 경제 구조의 왜곡 현상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멕시코 국립대학인 우남(UNAM)대 빅토르 고디네즈 교수의 지적은 매우 신랄하다.

“멕시코 경제는 수치상으로만 화려할 뿐 80년대와 비교해볼 때 실질적인 국민소득은 감소했다. 고용 창출이 이뤄졌다고 하지만 급격한 인구 증가를 따라잡지 못해 실질적 효과는 별로 없는 편이다. 가장 큰 문제는 빈부 격차가 심화되었다는 것이다. 지역적으로도 미국과 인접한 북부 지역에서 조립 가공공장을 운영하는 외국 기업들만 돈을 벌었다.”

조립 가공공장이란 ‘마킬라도라’라고 불리는 일종의 수출 자유지역이다. 수출용으로 수입되는 원부자재 수입에는 관세를 면제해 일종의 특혜를 주는 것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정공 등 한국업체들도 ‘마킬라도라’ 방식으로 멕시코에 진출해 있다. 이러한 특혜는 내년이면 철폐되지만 NAFTA 발효 이후 6년간 이 방식을 통해 수많은 외국기업이 특혜를 누려왔다. 그러나 ‘마킬라도라’ 방식이 갖는 이러한 이점에도 불구하고 이 분야 산업에 종사하는 현지 근로자들의 평균 임금은 제조업 평균 임금의 40%에 불과하다. NAFTA로 인해 고용 창출 효과는 누렸지만 근로자의 삶의 질은 별로 개선되지 않았거나 오히려 악화했다는 결론이다.

고디네즈 교수가 지적하는 멕시코의 빈부 격차는 이미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수준이다. 전국민의 2, 3%에 불과한 부유층은 공해가 심한 멕시코시티 중심부를 벗어나 쾌적한 시 외곽 지역에 호화 저택을 지어놓고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으로 치자면 성북동이나 평창동 정도로 볼 수 있는 시내의 호화주택촌에는 세계 10대 부자 중 3명이 살고 있다고도 한다. 이곳을 안내한 한국인은 “문 밖에서 벨을 누르면 집사가 말을 타고 나와 문을 열어준다”고 귀띔했다.

올해 임기를 마치는 세디요 행정부에서도 지난 6년간 외국인 투자 유치 정책과 수출 진흥 정책을 지속적으로 전개한 결과 수입은 80% 증가한 데 비해 수출은 무려 124%나 증가한 바 있다. 멕시코 경제는 개방 정책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것이다. 물론 NAFTA 대상국인 미국이 장기 호황을 거듭하면서 가져온 대미 수출 증가가 수출 증가분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뒤집어 말하면 이는 멕시코 경제가 지나친 대미 의존도로 인해 미국 경제의 거품이 빠지는 순간 나락으로 빠져들 수도 있다는 불안한 경고로 들리기도 한다.

폭스는 그동안 멕시코 정부가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 정책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선 기간 중 멕시코 사람들이 자국 경제의 상징으로까지 여겨온 멕시코 석유(PEMEX)마저 민영화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비난을 받고 물러선 적도 있다.

멕시코 정부는 이미 지난해 외국인투자법 시행령을 전면 개정해 외국인들의 투자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도 했다. 멕시코 정부는 국내에서 경제 활동을 펼치는 모든 산업 분야에 대해 외국인 투자를 개방하되 국가 전략산업은 제외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으나 지난해부터는 전력 산업이나 2차 석유화학 분야에도 외국인 투자가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멕시코의 향후 6년을 이끌어갈 폭스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운동 기간 중 외국인 투자 촉진뿐만 아니라 고용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만큼 늘어나는 극빈층과 실업문제가 골칫거리로 등장하고 있다는 말이다. 현지 신문인 ‘레포르마’(개혁)지가 지적한 대로 ‘90%의 농민이 하루 6달러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야 하는’ 멕시코의 현실은 바로 폭스가 뛰어넘어야 할 장애물인 것이다.





주간동아 2000.08.03 245호 (p5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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