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5

2000.08.03

마늘전쟁, WTO 협정문만 제대로 읽었더라도…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5-08-08 10: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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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중 마늘전쟁의 후유증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한`-`중간에 30%의 저율관세로 2만t의 중국산 마늘을 수입한다는 합의가 이뤄지자 전국의 마늘 농가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머리띠를 두른 마늘 농민들은 과천으로 몰려갔고 통상 책임자의 해임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농촌안정기금 1500억원을 도입해 마늘 농가가 희망하는 물량을 전부 수매하고 유통구조를 개선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아무런 약효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판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뒤늦게 구조조정에 나서 농민들을 달래보려고 하는 정부의 입장은 자초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중국산 마늘에 대한 세이프가드 조치 발동의 근거 규정이 된 WTO 세이프가드 협정을 살펴보자. 이 협정 제5조에는 국내산업에 대한 심각한 피해를 방지하고 ‘구조조정을 촉진하기 위해’(facilitate adjustment)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세이프가드 조치를 발동해야 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다. 비슷한 내용은 이 협정 제7조에도 분명히 언급되어 있다. 세이프가드는 국내산업 보호라는 목적뿐 아니라 구조조정 촉진의 목적을 동시에 갖고 있으며 이 조치 발동과 동시에 구조조정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WTO에 패널위원으로 참여했던 한 통상전문가는 “세이프가드 발동과 동시에 별도의 구조조정 작업이 병행되지 않았다면 이는 분명히 WTO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처럼 농민들의 희망 물량을 정부가 사주는 것이 아니라 마늘이 아닌 다른 작물로 마늘 농가의 수익을 보전해 주거나 재배 기술을 전수해 주는 등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었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의 대응을 예상하지 못한 채 구조조정은 무시하고 세이프가드 발동에만 급급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아니 한만 못한’ 사태를 초래하고 말았다.



    정부의 세이프가드 발동 조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이는 WTO 규정상 적법한 것이고 중국이 예상을 벗어나 ‘상식 밖의 일’을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세이프가드 협정 문안을 좀더 꼼꼼히 읽어보았더라면 뒤늦은 구조조정 작업에 이렇게 북새통을 떨지는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관세 부과와 동시에 구조조정 작업에 착수했더라면 지금처럼 농민들의 반발에 부닥치지 않고도 얼마든지 구조 개선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은 쓸데없는 결과론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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