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5

2000.08.03

낙원 아닌 과천, 다방 천국 영양

재정자립도와 삶의 질은 무관?…고물가에 허리 휘기는 마찬가지

  • 입력2005-08-08 10: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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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원 아닌 과천, 다방 천국 영양
    한국에서 가장 화려한 조명을 받는 도시는 경기 과천시다. 그리고 그 반대 극점에 놓인 곳은 경북 영양군.

    자치단체의 경영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인 ‘재정자립도’(2000년도 기준)에서 과천시는 95.2%로 235개 전국 자치단체 중 수위를 차지했다. 반면 영양군은 최하위인 9.2%. 99년 정부의 지자체 재정력지수(재정수입을 수요로 나눈 값) 조사에서도 과천은 2.68로 1등, 영양은 꼴찌인 0.07이었다. 전국 아파트촌 주거환경 1위(대한주택공사 선정), 수도권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1위(국토연구원)…. 지방자치제도 시행 5년이 지난 지금 과천은 ‘모범생’으로, 영양은 ‘무늬만 지방자치’의 표본이 됐다.

    과천과 영양은 정말 이런 조사 결과처럼 지방자치의 극단적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두 지역사회에서 ‘공식 성적표’와는 다른 한국 지방자치의 ‘현주소’를 찾을 수 있었다.

    지난 7월19일 오후 과천시청 시장실 앞 복도. 격분한 30여명의 시민과 전경이 2시간 동안 팽팽히 대치했다. 시민들은 경찰만 없으면 당장 시장실 문을 박차고 들어갈 태세였다. 최소한 이 장면에서 과천은 매스컴에 묘사된 ‘낙원’이 아니었다.

    이날 소동은 시 산하 과천시민회관이 7월 들어 수영장 회원료 등 사용료를 최고 43.8% 기습 인상한 데서 비롯됐다. 주민 이영숙씨는 “과천은 세금을 많이 거둬들여 재정이 풍부하다. 그런데 주민들을 위한 복지사업에서조차 돈벌이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 괘씸했다”고 말했다.



    과천의 여러 시민단체는 “외부에선 가장 살기 좋은 도시 과천에서 ‘지방자치’가 활짝 꽃피고 있는 줄 아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주민 김연희씨는 “행정과 주민이 따로 논다”고 말했다. 과천 1단지에 거주했던 이진아씨는 최근 과천시를 떠났다. 시 당국에 크게 실망했기 때문. 과천시는 ‘도심 내 녹음’을 유지하기 위해 가로수에 많은 살충제를 뿌리고 있다. 지난해 고3 수험생이던 이씨의 딸은 이 살충제 때문에 피부병에다 호흡기질환까지 앓게 됐다. 이씨는 살충제 살포를 줄여달라고 시에 여러 번 요청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

    서울 사당동에서 과천으로 넘어오는 관문네거리. 370억원을 들여 길이 920m에 이르는 지하 2층 차도를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계획단계에서 이미 ‘교통개선 효과가 거의 없다’는 반대여론이 나왔다. “경사가 급해 악천후시 사고 가능성이 있을 뿐 아니라 침수도 우려된다. 지하차도 내에서 정체를 만나면 운전자들은 훨씬 농축된 배기가스를 오랫동안 들이마실 수밖에 없다.”(과천환경운동연합 관계자) 그러나 과천시는 ‘우리가 낸 세금을 백해무익한 일에 쓰고 있다’는 시민들의 비판을 눈 딱 감고 무시하고 있다.

    지난 5월 과천시가 용량이 남아도는 자체 쓰레기 소각장에서 이웃 의왕시의 쓰레기를 대신 처리해주기로 하자, 매스컴은 과천시를 또 한번 칭찬했다. 그러나 한 시민이 말하는 자초지종은 칭찬과는 거리가 멀었다. “시청은 애초 소각장을 하루 150t 처리 규모로 지으려고 했다. 그러자 많은 시민이 말려 시가 80t 규모로 물러섰다. 그러나 이것도 욕심이 과한 것이었다. 지금 과천에선 하루 48t의 쓰레기밖에 나오지 않는다. 소각장을 원활히 가동하는 데 필요한 처리용량의 80%밖에 채울 수 없게 됐다. 그래서 지금 쓰레기량을 늘리기 위해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도 안하며 쓰레기를 ‘수입’까지 하는 기막힌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과천시가 재정자립 1위를 기록한 것은 순전히 매년 경마장에서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600억원에 이르는 ‘어부지리 수입’ 때문이다. 시는 이 돈을 번듯하게 결과물이 남는 사업에 통 크게 쓰고 싶어하는 눈치다. 과천시에선 요즘 4960억원이 들어가는 ‘과천테크노밸리’ 구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주민들의 생각은 다르다. 과천의 아파트 가격은 보통 평당 1000만원에 이른다. 28평 아파트 전셋값이 1억5000만원. 그렇다고 시민들이 모두 상류층은 아니다. 과천시청의 한 50대 6급 공무원은 직장 때문에 과천시내에 산다. 네 식구가 18평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데도 집값이 벅차다. 과천시청에 따르면 시민 대다수는 중산층과 서민들이다.

    점심시간이면 정부종합청사에서 공무원들이 과천의 가장 번화가인 중심 상업지구로 물밀듯 나온다. 이들은 한결같이 “과천에선 밥값도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린다. 주민들은 시청을 향해 “이제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일에 돈을 좀 쓰라”고 말한다. 교육 문화 레저 복지 환경 청소년 노인 분야 등 먹고 사는 문제에서 ‘삶의 질을 높여달라’는 주문이다. 과천환경21 추진협의회측은 “과천시는 시장의 판공비 명세을 공개하라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거부했다. 자치행정에 대한 주민들의 알 권리는 물론, 참정권이 잘 실현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과천시는 “시의 장기적 발전과 재정력 확충을 위해선 산업구조 개편에 역량이 모아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수영장 시위에서 보듯 과천시와 과천시민들은 지금 동상이몽을 꾸고 있다. 문제는 의사소통의 부재에 있었다. 그리고 항상 결과는 모든 것을 독점하고 있는 자치단체의 뜻대로 된다. 과천에선 자치단체만 부자였다.

    같은 날 밤 11시 경북 영양군 영양읍. 이곳은 중심지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의 반경이 모두 ‘원시림’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이 오지 중의 오지는 ‘휴게실’이라 불리는 다방과 룸살롱의 별천지였다. 고작 9000명이 사는 읍내에 무려 45개의 다방과 23개의 룸살롱, 12개의 여관이 영업하고 있었다(영양군청 조사).

    이날 밤부터 다음날 새벽 늦게까지 경승용차와 오토바이들이 부지런히 커피와 아가씨들을 실어날랐다. M휴게실의 업주는 “시간당 1만5000원짜리 티켓을 끊어주면 아가씨와 함께 지낼 수 있는데 밤 11시부터 새벽 2시까진 원하는 손님이 많아 아가씨 구하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A휴게실 최모양(20)으로부터 이 읍내 유흥가의 독특한 ‘3각 공생관계’를 들었다. “여기 룸살롱들은 대도시처럼 아가씨들을 ‘전속’으로 데리고 있지 못한다. 그래서 다방을 여자접대부의 공동 공급원으로 활용하고 있다. 외부 관광객이 거의 찾지 않는 이 마을에 왜 이렇게 여관이 많겠는가. 다방-룸살롱-여관이 서로 밀접하게 연관돼 현지 주민들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 D휴게실 업주는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룸살롱 위치를 대주면 바로 아가씨를 보내겠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군청과 경찰의 단속이 심하니 2차(매매춘)는 아가씨와 직접 얘기하라”며 아가씨를 바꿔줬다. 아가씨는 “2차 비용은 20만원”이라고 말했다.

    영양읍에서 활동하는 다방 여종업원 수는 100∼200명 선. 한국에서 가장 소득이 낮고 재정이 어렵다는 곳에서 수십만원짜리 고급 술집과 매매춘이 번성하여 나타나는 결과는 자명할 수밖에 없다. 손님 업주 여종업원 모두의 ‘불행’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 고장 특산물인 고추를 재배하는 이모씨(50)는 “여종업원들은 ‘메뚜기 떼’와 똑같다”고 말했다. 고추 수확기가 되면 떼를 지어 영양에 몰려와 농부들의 돈을 뜯고 난 뒤 다른 작물의 수확기를 맞은 이웃 지방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이여형 영양군수는 ‘다방과의 전쟁’을 선포해 놓고 있다. 다음은 이군수가 말하는 ‘다방의 경제학’이다.

    “아가씨 한 명을 고용하는 데 업주는 월 150만원이 든다. 그러나 소비시장은 한정돼 있으므로 결국 많은 다방 업주들이 빚더미에 올랐다. 아가씨들은 연간 20억원에 이르는 돈을 대도시로 갖고 가버린다. 이 때문에 지역경제가 더 피폐해지고 있다. 그러나 그녀들도 불안정한 객지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돈을 모으지 못한다. 결국 농촌의 성산업은 모두가 지는 게임이다.”

    대도시에서 이사온 이경희씨는 영양군의 물가에 놀랐다. “대도시에서 600g에 4500원 하는 돼지고기 값이 여기선 5500원이다. 2000원이면 할 수 있던 재킷 드라이클리닝 값은 무려 5000원, 비디오 테이프 대여료도 두 배나 비싼 2000원이다.” 영양읍내 25평 아파트 가격은 지방 대도시와 비슷한 수준. 건축자재 수급이 어렵기 때문에 가격이 뛴 것이다.

    그러나 영양군의 가장 큰 고민은 주력계층인 ‘농가’의 몰락에 있다. 대다수 농민은 자녀들을 대도시의 대학에 진학시키고 있다. 학비 등 자녀의 유학비용 부담이 근근이 살아가는 농가에 부채를 지우는 가장 큰 요인이 됐다. 영양군청에 따르면 4688개의 농업가구 중 70%가 빚을 지고 있고 그중 절반은 원금상환이 불가능한 상태에 빠져 있다. 5000만원의 빚을 안고 있는 영양읍의 한 농민(45)은 “고랭지 채소 값이 급등하는 ‘요행수’만 보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군에선 총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888명이 올 들어 ‘공공근로사업’에 참여했다. 이들은 농한기 땐 공공근로를 하고 농번기가 되면 ‘밭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고정직업이 없는 실업상태인 셈이다.

    이군수는 개인적으로 영양군에 있는 모든 주민(8300여 가구)의 집안사정을 다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있을 법한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자체수입으론 공무원의 월급도 못 주는 영양군청으로선 ‘민생행정’을 펴기가 불가능하다. 중앙정부나 광역단체의 국비나 도비는 건설사업 위주로 지원된다. 영양군은 어떻게 하든 외부의 자금을 역내로 끌어들여야 할 형편이므로 일월산정기, 선바위서석, 조선시대의 남이장군, 문인 이문열씨 등 영양과 ‘인연’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연이나 인물은 모두 관광상품화하겠다며 상급기관에 건설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영양군청은 실제로는 규모가 큰 ‘건설회사’인 셈이다.

    지역사회를 갉아먹는 유흥가, 경쟁력을 찾지 못하는 농업, 도시로 빠져나가는 젊은이들…. 영양은 한국 농촌의 상징이었다. 지방자치를 해보려 해도 받쳐줄 인적 물적 기반이 없었다. 군청이나 농민들의 ‘몸부림’이 힘들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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