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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러다 큰일날라”… 흔들리는 현대건설

유동성 위기 여파 워크아웃 신청설 무성…자산-채권 매각 등 자구책 추진에도 반응은 별로

“저러다 큰일날라”… 흔들리는 현대건설

“저러다 큰일날라”… 흔들리는 현대건설
심각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현대건설에 대한 워크아웃 신청설이 불거져 나오면서 잠복했던 ‘현대위기설’이 다시 부상하고 있다. 지난 5월 정몽헌 회장이 직접 나서 가까스로 파문을 잠재웠던 현대건설의 유동성 위기는 7월11일 현대건설이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에 2차 자구책을 제출하자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되는 결과를 빚었다. 이와 비슷한 시기에 금융시장에는 ‘현대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할 것’이라는 소문을 ‘14일설’ 또는 ‘18일설’ 등으로 구체화한 문건들이 돌기 시작했다. 물론 현대측은 이를 ‘음해성 괴문서’라고 일축했다.

올 들어 창립 50주년 기념행사까지 성대하게 치른 현대건설은 왜 끝모를 벼랑으로 추락하고 있는 것일까. 70년대 중동 특수와 아파트 건설 붐을 타고 한국경제의 상징으로까지 칭송돼 왔던 현대건설의 위기는 단순한 유동성 경색인가, 아니면 수익구조 부재의 근본적 위기인가.

시장 관계자들은 일단 현대건설이 하반기 이후 영업 이익을 내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다는 데에 동의한다. 아파트 분양률도 전반적으로 좋아지고 있고 현대건설의 평균 낙찰률이 80%를 웃도는 등 예상 이익 분야에서만큼은 일단 청신호가 켜져 있다는 것이다. 영업이익을 기반으로 기업의 이자지급 능력을 나타내는 이자보상비율(경상이익+금융비용/금융비용)도 지난해는 0.7 수준에 불과했지만 내년에는 1.0 수준까지 호전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경상이익의 규모가 늘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현대건설측의 자구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그 내용에는 별로 새로울 것이 없다는 게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현대측의 자구 계획은 △보유 유가증권 처분 △서산 간척지 활용 △이라크 미수채권 매각 △미분양 상가 및 해외 공장 등 자산 매각 등으로 요약된다.

현대측의 이러한 구상대로 자산 매각이 속속 이뤄지고 부실 채권도 팔아치우게 되면 대손 상각 비율이 줄어들어 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이 되겠지만 현대의 뜻대로 상황이 전개돼 나갈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의문부호를 다는 사람들이 많다. LG투자증권 김웅수 연구원은 “현대건설측이 내놓은 자산 매각 등의 자구 계획은 그럴듯하지만 문제는 시기”라고 못박았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1조원이나 되는 이라크 공사 미수 대금. 현대건설은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외 금융기관을 통해 할인해서라도 매각하겠다는 방침이다. 할인 매각을 위해 해외 금융기관을 이미 여러 차례 접촉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접촉하고 있는 금융기관은 미국계가 아닌 다른 나라 기관”이라고 확인했다. 미국의 대이라크 제재가 풀리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계 금융기관이 이라크 채권 인수에 나설 경우 정치적으로 미묘한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10년 동안 못 받아낸 공사 대금을 유동성 위기에 몰려 6개월 만에 받아낼 수 있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따라붙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현대측이 밝힌 채권 매각 규모도 연말까지 1400억원 정도. 미수 채권 총액의 20%도 되지 않는 금액이다. 게다가 현재 5조원 규모의 현대건설 차입금 규모를 감안하면 어림없는 액수다. 현대측이 발표한 하반기 매각 기한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값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현대건설은 또 당초 서산 간척지 활용을 통한 자구 계획을 발표하면서 총 3000여만평의 대규모 간척지를 산업단지로 조성해 생명공학단지, 첨단산업단지, 위락단지 등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산 간척지를 매각한다는 방침이 정부측의 ‘용도변경 불허’ 방침에 막혀 좌절될 운명에 처하면서 자구 계획이 그야말로 ‘계획’으로 그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퍼지고 있는 형편이다. 서산 간척지는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만큼 현대측은 서산농장 처분 계획이 유동성 위기 해결에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분석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에 서산농장의 의미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저서인 ‘이 땅에 태어나서’(98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서산농장은 내게 농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곳은 내가 마음으로, 혼(魂)으로 아버님을 만나는 나 혼자만의 성지(聖地) 같은 곳이다.’

이러한 성지(聖地)를 팔아치우겠다고 나섰지만 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온 데다 생산자 단체인 수협도 ‘농업 용도 사용을 전제로 어민들이 보상 협의에 응했던 것’이라는 점을 내세워 반대를 선언하고 나오자 이 계획은 벽에 부닥친 꼴이 되고 말았다. 설령 서산농장을 처분한다 해도 현대건설의 재무구조 개선에 기여하는 바는 크지 않다는 것이 시장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LG증권 김웅수 연구원은 “서산농장을 매각한다 해도 부채비율을 3∼5% 떨어뜨리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현대측은 표면적으로는 서산농장 처분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몇몇 기자들이 서산농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현장 관계자가 구상 차원에서 밝힌 것이 와전됐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여전히 현대건설이 시장에서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는 최근 주가 추이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나고 있다. 현대건설 주가는 지난해 9월 10000원에서 하락세를 거듭해 현재 3400원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이 현대건설에 등을 돌리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번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헌재 재경부 장관은 현대건설 자금 위기에 대한 악소문이 시장에 번지자 급기야 7월22일 “워크아웃설은 사실이 아니며 자금난도 심각한 수준은 아니다”며 진화에 나섰다. 이장관은 “지난해 현대건설이 이라크 건설 부실 채권 10억달러를 회계처리하는 과정에 감사보고서 처리가 늦어지면서 시중에 자금난 소문이 나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말의 진실은 이렇다. 현대건설은 지난해 결산작업을 벌이는 과정에서 1조원 규모나 되는 이라크 부실 채권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회계법인과 논란을 빚었다. 충당금을 얼마나 잡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뒤따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감사보고서 제출이 늦어지고 ‘자금위기설’이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영 석연치 않다. 감사보고서 제출을 둘러싼 문제라면 현대건설이 12월 결산법인임을 감안할 때 기껏해야 보고서 제출 기한인 3월에 벌어졌을 논란이고 이는 지난 5월 자구대책 발표 시점보다도 훨씬 전의 일이다. 최근 시장에 나돌고 있는 워크아웃설과는 시간적으로도 별 관련이 없다는 말이다.

이헌재 장관이 현대건설의 워크아웃설을 부인하고 나선 같은 날,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 관계자도 “시장의 루머를 부인하면 부인할수록 더욱 소문이 증폭되는 마당에 무슨 말을 하겠느냐”고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외환은행을 통해 현대건설의 자금 상황에 대한 부정적 언급이 보도된 뒤 현대측으로부터 엄청난 항의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알려진 것과 달리 현대측도 무언가 믿는 구석이 있지 않느냐는 추측을 자아내는 대목이다.

한편 현대건설측은 “자구 계획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연말에는 2000억∼3000억원 규모의 잉여자금이 발생할 것”이라고 낙관하고 있다.

그러나 현대건설에 대한 회사채 등급을 매기는 신용평가기관의 한 관계자는 “현대건설에 대한 워크아웃설은 과거에도 꾸준히 나돌았다. 5조원이나 되는 차입금 규모상 수많은 금융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금융기관들 사이에서도 일치된 견해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라는 비관적 분석을 숨기지 않았다. 현대건설의 최근 유동성 위기에서, 워크아웃에 대한 부인으로 일관하다가 더 큰 화를 자초한 대우의 경우를 떠올리는 사람들도 있다.



주간동아 2000.08.03 245호 (p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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