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45

2000.08.03

북과 손잡은 러 “한국, 무기 좀 사라”

푸틴, 방북 통한 ‘대북관계 개선’ 카드로 구매 압력…美 독점 시장 파고들기 안간힘

  • 입력2005-08-08 10: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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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과 손잡은 러 “한국, 무기 좀 사라”
    북한과 러시아는 군사 분야에서 과거의 협력관계를 복원할 수 있을까. 러시아 정상으로서는 최초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방북(7월19∼20일)을 계기로 새삼스레 제기되는 의문이다.

    푸틴의 방북은 90년 한-러 수교 이후 한국과의 관계가 가까워질수록 상대적으로 찬바람이 불었던 조-러 관계를 복원시켜 남한에 ‘자극’을 주고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회복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그러나 푸틴의 방북은 단순히 북-러 관계의 개선 차원만이 아니라 러시아의 신외교 전략, 즉 아시아지역 국가들과의 협력 확대를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경제통상 이익을 증대하려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크다.

    러시아와 남북한 관계로 범위를 좁히면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얻으려고 하는 ‘경제통상 이익’은 그 한계가 분명해진다. 푸틴도 “소련 시절 양국간 교역액은 연간 수십억 달러였지만 지난해에는 1억 달러를 넘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북한에는 채권국이지만 남한에는 채무국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고 있다. 그런데 북한은 현재 러시아에 진 빚을 갚을 능력이 없고 러시아 또한 남한에 대한 채무 변제의 여력이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이번 양국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11개항으로 된 ‘조-러 공동선언’에서 ‘쌍무적인 무역 경제 및 과학-기술적 연계를 적극 발전시킨다’(제10항)는 조항은 다분히 선언적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보다는 푸틴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 연결사업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 대목에서 러시아의 속내를 읽을 수 있다. TSR에 대해서는 이미 김대중 대통령도 깊은 관심을 표명한 바 있다. 푸틴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에서 경의선-시베리아 철도 연결 문제 등과 관련해 남한의 자본, 러시아의 기술설비, 북한의 노동력을 합친 3각 경협방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푸틴의 방북 이면에는 북한과의 관계 개선 및 군사협력 강화라는 ‘압박 카드’로 한국을 ‘자극’해 자국산 무기를 한국에 판매하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강한 러시아’의 영화를 재현하기 위한 군사력 강화와 군사과학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추진해온 푸틴은 이미 한국에 여러 차례 러시아제 무기를 사달라는 ‘사인’을 보내왔다. 푸틴은 지난 5월7일 대통령 취임을 축하하는 김대중 대통령과의 전화통화때 이례적으로 이고리 세르게예프 국방장관을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5월16일 모스크바에서 열린 한-러 국방장관 회담 때도 러시아측이 자국 무기 구입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 한국군이 추진하고 있는 무기체계 획득사업은 크게 네 가지다. △차세대 전투기(FX) △차기 중형잠수함(KSSU) △지대공 방공미사일(SAM-X) △공격헬기(AH-X) 사업이 그것. 그런데 러시아는 이 네 가지 사업의 전분야에 자국산 무기를 매물로 내놓고 있다. 한-미 동맹체제 하에서의 이른바 상호 운용성을 내세워 한국 무기시장에서 배타적 독점권을 행사해온 미국으로서는 신경이 거슬리는 대목이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그 가운데 덩치가 가장 큰 FX사업(4조2000억원 규모)에서는 ‘게임’이 안 될 것으로 예측한다. 러시아가 수호이 전투기(Su-35)를 도전품목으로 내놓은 FX사업에는 미국 보잉사의 F15E 전투기 말고도 프랑스 닷소사의 라팔 전투기, 유럽연합(EU)의 야심작 유로파이터 등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어 힘든 싸움이 예상된다.

    러시아가 미국과 치열하게 경합하고 있는 분야는 SAM-X와 AH-X다. 2조2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 SAM-X의 경우 미국 레이티온사의 패트리어트(PACⅢ)와 러시아의 S300V 미사일이 경합하고 있다. 걸프전에서 이른바 ‘미사일 잡는 미사일’이라는 유명세와 ‘낮은 격추율’의 오명을 동시에 얻은 패트리어트는 현재 한국뿐만 아니라 자국의 방공체계망 구매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세계 각국에서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다. 한반도의 주변국만 하더라도 일본은 패트리어트를 배치한 반면 중국은 S300 계열을 도입해 배치하고 있다.

    레이티온사가 내세우는 패트리어트의 강점은 ‘유일하게 성능이 검증된 방공미사일체계’라는 점이다. 이 밖에도 레이티온사는 기존의 방공체계(호크 및 주한미군 방공망)와 통합 운용될 수 있는 연합 군사작전 가능성과 정비 지원의 용이성 등을 장점으로 꼽고 있다. 이에 견주어 S300 계열은 패트리어트에 비해 저가이면서도 성능이 뒤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요 고객은 중국과 인도다. 그러나 S300V는 기술적인 자료가 전혀 공개된 적이 없어 실제로 사용해보지 않고서는 그 성능을 알 수 없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푸틴은 7월20일 북한 방문길에 그동안 한국에서 7개국이 경합을 벌여온 ‘공중전’에서 러시아가 ‘결승전’에 올랐다는 낭보를 접했다. 한국군이 2004년 전력화를 목표로 추진하고 있는 AH-X 사업(2조원 규모)에서 러시아가 미국과 함께 유력한 도입대상 국가로 압축된 것이다. 이 사업에는 최초 7개 업체가 참여를 신청했으나 남아공의 Denel사와 프랑스-독일의 유로콥터사가 포기함으로써 보잉사의 롱보(AH-64D), 시코르스키사의 AUH-60, 벨사의 AH-1Z(이상 미국) 대 카모프의 블랙샤크(KA-50), 밀 모스코의 MI-28(이상 러시아)의 미-러 양파전으로 압축되었다. 업계는 롱보와 블랙 샤크의 치열한 2파전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러시아가 한반도에서 확실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분야는 ‘공중전’보다 ‘수중전’이다. 막강한 경쟁상대인 미국이 중형 잠수함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무기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한국에서 러시아가 파고들 수 있는 일종의 틈새시장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잠수함사업에서 선점권을 가진 독일과 미국을 제치고 육해공 전군에 미스트랄 미사일을 배치토록 해 기염을 토한 프랑스와 경쟁해야 한다.

    러시아는 이미 99년 3월 한국이 러시아에 제공한 경협차관의 상환과 연계하여 자국산 킬로급 잠수함 구매를 공식 요청한 바 있다. 구매조건은 경협차관 상환과의 연계(30%) 및 현금 지급(70%)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 정부 또한 지난 5월 러시아제 킬로급 잠수함의 작전성능 및 군수조달 체계를 평가하기 위한 잠수함 실사단을 러시아에 파견해 현지에서 성능평가 작업을 진행했다.

    국방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전략적 차원에서라도 일단 러시아의 킬로급 잠수함 3척을 구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호환성 및 운용 유지보수 등에 문제가 있지만 러시아의 제안은 상당히 매력적인 조건이다. 특히 구매협상에서 러시아의 잠수함 운용에 따른 한반도 주변 해역에 대한 해도(海圖)와 주변국 잠수함의 시그널 분석자료 등 각종 소프트웨어까지 가져올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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