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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삶

버림받은 설움 주먹으로 날렸다

세계 킥복싱 챔피언 된 입양소녀 킴 메서…‘역경 극복한 34년의 삶’ 美 언론도 극찬

버림받은 설움 주먹으로 날렸다

버림받은 설움 주먹으로 날렸다
●3살때 서울역 앞에 버려져 5살때 미국으로 입양.

●85년 미국 오리건주 세일럼의 한 칼리지에 다니다 태권도 사범이었던 현재의 남편 마크 메서를 만남.

●92년 부터 킥복싱 세계 타이틀전에 도전해 세차례 챔피언에 오름.

●96년 복싱으로 전향.

…이 스토리는 이 세상 먼 곳에서 한 어린아이가 부모의 버림을 받으며 시작된다.



미국의 한 시골동네에 사는 부부가 찾아내 정성들여 키운 이 아이는 자라나 화려한 복장으로 세상을 누비며 전세계의 적들과 싸우고 또 싸운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조용히,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이중인생’을 살아간다. 마치 슈퍼맨 영화 같다.

그러나 이는 세 차례 세계 킥복싱 챔피언인 킴 메서(34)의 인생 스토리이기도 하다. 링에서 ‘파이어볼’(Fireball·불덩어리)로 불리는 그녀의 스토리는 소설도 영화도 아니다. 실제로 존재하는 일이다….’



인간의 운명에 대한 잔인한 실험이란 말 이외에는 갖다 붙일 수식어가 궁한 한인 입양소녀 킴 메서의 삶. 그 험난한 34년을 증명하듯 킥복싱 세계 챔피언으로 사각의 링을 호령하다 프로복싱으로 전향해 다시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한국에 찾아온다. 주먹여왕 등극을 위해. 킴 메서(8승1무2패, 3KO)는 오는 8월5일 서울 강남 코엑스 특설 링에서 공석 중인 세계여자프로복싱(IFBA)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 타이틀을 놓고 일본의 다카노 유미(28·9승3패, 1KO)와 물러설 수 없는 펀치 대결을 벌인다.

현재 워싱턴주 시애틀에 살고 있는 킴 메서는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의 나라 팬들 앞에 선다는 설렘을 안고 매일 새벽부터 일어나 하루 세 번, 모두 다섯 시간씩의 맹훈련을 하고 있다. 7월 말쯤 한국에 도착, 반드시 챔피언 벨트를 차지하겠다는 야심을 불태우며 더 뛰고 더 치며 두 주먹을 갈고닦고 있다.

여자로서 차마 감당하기도 힘들고 언뜻 이해하기도 어려운 그녀의 주먹인생. 그것은 엄마 아빠 앞에서 한창 재롱을 피우고 응석을 부려도 모자랄 세 살 나이에 서울역 앞에 버려져 울부짖느 순간 이미 예고됐는지도 모른다.

서울 인근 고아원에서 2년을 보내며 그녀의 기억에 남은 것은 “흙마당과 높은 벽, 그리고 모든 아이들이 한방에서 잤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녀의 운명은 곧 한국아이를 한 명 입양하길 원했던 오리건주의 한 부부의 선택으로 배경을 바꿨다. 미국으로. 킴 메서에게는 한국이름이 있다. 백기순. 미국인 어머니인 말리스 샌포드씨는 ‘기순’의 약자인 ‘K’와 ‘S’를 따 킴벌리 수(Kimberly Sue)라는 미국이름을 지어줬고, 킴 메서는 결국 슈퍼맨이 자라난 ‘스몰빌’을 연상케 하는 인구 1200명의 시골 동네인 오리건주의 실버튼시에서 공장 매니저인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난다.

그녀는 양부모의 사랑을 받으며 미국생활에 잘 적응했다. 특히 어머니는 한국 요리책과 항아리를 구입, 손수 김치까지 담가주는 지극한 정성으로 그녀를 키웠다. 하이스쿨 때 소프트볼 기계체조 테니스 등 온갖 운동에 재능을 보인 킴 메서는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했다. 그러나 딸이 다칠 것을 걱정한 어머니는 승낙하ㅈ 않았다. 보통의 여자로 자라기를 바라는 모정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발레 피아노, 또는 치어리더 연습에는 기꺼이 데려다줘도 20마일쯤 떨어진 곳에 있는 태권도장으로는 차를 태워줄 수 없다며 딸의 뜻을 끝까지 받아주지 않았다. 킴 메서는 그 덕분(?)에 8년간 발레, 5년간 피아노를 배우며 지성미 넘치는 숙녀로 자라났다.

그러나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파이터(Fighter)의 운명’은 끝내 피할수 없었다. 85년 오리건주 세일럼에 있는 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입학하며 곧 커리어와 배우자를 동시에 만나게 되는 운명의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클라스 스케줄을 짜며 항상 뜻을 두고 있던 태권도 클라스에 가입했는데 곧 태권도뿐만 아니라 태권도 사범과도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남편이 된 마크 메서와는 이렇게 만났다.

얼마 후 킥복서 지망생 마크 메서와 결혼한 킴 메서는 스승 겸 남편의 킥복싱 ‘입신’을 위해 ‘큰물’인 시애틀에 정착했다.

남편을 따라다니며 남자들 사이에서 킥복싱을 배운 킴 메서는 92년 여름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는 데일 베이키라는 선수와 스파링할 기회를 우연히 잡으며 킥복서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다. 스파링에서 베이키를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은 킴 메서는 프로모터의 뜻에 따라 그 선수 대신 일본행 비행기를 타게 된 것.

킴 메서는 세계 챔피언과 맞붙어야 하는 프로 데뷔전을 망설였다. 당연히 좀더 쉬운 데뷔전을 원했다. 그러나 같이 트레이닝을 해온 남자선수들이 “이름도 없는 선수가 어떻게 이런 기회를 마다하느냐”며 “우리 남자들과 계속 훈련해 왔는데 아무리 챔피언이라고 하지만 여자가 우리 남자들보다 더 세게 때리겠느냐”며 킴을 설득했다.

킴 메서는 결국 92년 7월18일 도쿄돔에서 데뷔전 겸 타이틀전을 치렀고 세계 챔피언의 손에 패하고 말았다. 그러나 데뷔전서 챔피언의 머리에 킥을 적중시킨 것은 “신인 농구선수가 마이클 조던과의 맞대결서 덩크슛을 터뜨린 것과 같다”는 전문가들의 칭찬이 자자했다.

이같은 호평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킴 메서는 그후 WKA(세계 킥복싱 협회), ISKA(국제스포츠 가라데-킥복싱 연맹) 등 세 차례 챔피언에 오르며 세계 최정상급 여성 파이터의 실력을 입증했기 때문이다.

여자 킥복싱에서는 세 차례 챔피언에 올라도 큰돈을 만질 수 없었다. 킴 메서는 스포츠 전문방송인 ESPN2와 폭스채널 이벤트에 자주 등장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지만 정작 피땀을 흘린 그녀 몫의 파이는 프로모터, 매니저 등 ‘양복 입은 신사들’의 몫에 비해 보잘것없었다.

킴 메서가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시애틀 인근 레스토랑에서 파트타임 웨이트리스로 일을 해야 했던 것도, 지난 96년 킥복싱 챔피언 벨트를 미련없이 벗어던지고 ‘오직 복싱’의 길로 돌아선 것도 결국 돈 때문이었다.

그전에 쌓아놓은 명성 덕분에 킴 메서의 ‘새생활’의 첫걸음은 어찌 보면 행운이었다. 바로 그해 6월 WBIF(여자복싱국제연맹)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인 독일의 레지나 할믹을 상대로 데뷔전 겸 세계 타이틀전을 치르게 된 것이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가시가 돋친 행운이었다. 할믹을 신나게 두들기다 끝을 알리는 공 소리를 들은 킴 메서는 득의양양하게 두 팔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링도 독일땅, 관중도 독일사람.

체육관이 떠나갈 듯 할믹을 연호하는 함성소리에 평정을 잃었는지 심판들은 할믹의 손을 들어줬다. 다음날 독일신문들조차 혀를 찬 1 대 2 판정패. 킴 메서는 그때 “나도 언젠가는 내 민족의 성원 속에 싸우고 싶다”는 뼈저린 소망을 간직하게 됐다고 술회한다.

한국에서 할믹을 보기 좋게 혼내주마.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는 울분 섞인 아쉬움을 안고서 주먹이 부서져라 샌드백을 두드리던 킴 메서에게 한국에서의 빅매치 희소식이 전해진 것은 지난해 크리스마스 무렵. 어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한국 프로모터들이 연락을 해온 것이다.

그로부터 6개월. 그녀는 꿈에 그리던 한국에서의 타이틀전을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준 선물”이라며 “통쾌한 승리로 보답하겠다”고 결전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0.07.13 242호 (p86~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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