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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취재|고속철 로비 의혹

최만석씨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얼떨결에 알스톰사 에이전트 맡아…“로비 별로 안하고 뜻밖의 횡재?”

최만석씨는 ‘현대판 봉이 김선달’

린다김 사건에 이어 다시 여성이 개입된 고속전철 로비사건이 터져나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고 있다. 도대체 경부고속철 로비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대중대통령을 향해 심한 말을 퍼붓던 김영삼 전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통령과 만난 것은 5월9일이었다. 그런데 그 직후 정치권에서는 “DJ-YS회담에서 YS가 저자세를 보였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이같은 풍문은 경부고속철 수사를 염두에 두고 떠돈 것들이었다. 대검은 호기춘씨(51·여)를 구속하기 전에 몇 차례 호씨를 소환했다. 호씨 소환 시기는 DJ-YS회담보다 빨랐다. 그래서 약점이 노출된 YS가 DJ에게 저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계와 검찰 사정에 밝은 소식통들은 “경부고속철 로비 수사는 검찰이 애초 생각한 방향대로 가지 못할 것 같다”고 예측한다. 대검도 이 수사가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높아 상당히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경부고속철 로비 첩보를 최초로 입수한 사람은 현재 경찰청 지능2계장인 이상식경정이다. 이경정은 1994년 2월부터 우리 교민과 여행자들을 보호하고 홍콩 경찰과 접촉해 한국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홍콩 총영사관 치안관으로 파견되었다. 당시는 중국계 폭력조직 ‘삼합회’가 한국으로 마약을 밀수출해 문제가 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이경정은 삼합회를 추적하는 홍콩 경찰의 형사수사국과 마약 유통을 단속하는 마약수사국 관계자들을 자주 만났다.

95년 11월 어느날 홍콩 경찰 마약수사국 자금조사과 요원이 “한국과 관련된 아주 이상한 첩보가 있다”며 금융 거래 자료 한가지를 건네주었다. 홍콩의 은행들은 관련 법에 따라 200만 달러 이상 입`-`출금된 계좌가 있으면 그 계좌 정보를 홍콩 경찰에 통보하고 동시에 예금주에게도 ‘당신의 거래 명세를 사정 기관에 알려줬다’고 통보한다. 이경정이 입수한 자료에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BOA) 홍콩지점에 개설된 한국인 ‘만석최’씨 계좌로 파리에서 94년 11월24일과 95년 5월12일 두차례에 걸쳐 모두 1100만 달러를 보내준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그런데 최씨 계좌에서는 다시 홍콩의 ‘스탠더드 차터드 은행’에 개설된 ‘기춘호’씨 계좌로 94년 12월9일과 95년 6월 모두 386만 달러가 송금돼 있었다. 홍콩 경찰은 이 돈이 마약 자금일 수도 있다고 의심하고, 예금주가 한국인이어서 이경정에게 “어떤 사람인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었다. 그 즉시 이경정은 예금주의 계좌 번호와 여권번호-거래명세 등을 아주 상세히 적은 3쪽짜리 첩보 보고서를 만들어 서울의 경찰청으로 보냈다.

이때 이경정은 ‘만석최’는 성(姓)을 뒤로 보낸 영어식 표기이니 한국 이름은 ‘최만석’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기춘호는 ‘호기춘’일텐데 ‘기춘호’란 어감이 너무 자연스러워 ‘기춘호’를 그대로 보고서로 옮기는 실수를 범했다. 경찰청은 이 첩보를 박윤기총경이 이끄는 외사3과에 넘겨주고 ‘최만석과 기춘호에 대해 내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대해 박총경(현재 철원경찰서장)은 “그때 우리는 마약 혐의에 중점을 두고 내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윗분들도 그랬지만 우리도 그 돈이 경부고속전철과 관련돼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경찰청 외사3과는 두 사람의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에 중점을 두고 내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최씨와 호씨는 그때 이미 외국환관리법을 피해가는 방법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외국환관리법은 영주권을 획득해 외국에 거주하는 한국민과 외국에서 2년 이상 지낼 목적으로 출국해 6개월 이상 체류한 한국민을 ‘비거주자’로 규정하고, 비거주자 사이의 외환거래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최씨는 70년대 초 미국 영주권을 얻은 비거주자다. 호씨는 알스톰 한국지사장인 프랑스인과 결혼(재혼)해 프랑스 국적을 취득한데다, 그때는 중국으로 장기 출국해 비거주자 신분을 확보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인데도 외사3과의 내사가 시작되자 호씨는 겁을 먹고 김모씨를 통해 소개받은 전윤기 김포공항경찰대장(64·당시 계급 총경)에게 “외사3과의 내사를 무마시켜 달라”며 8000만원을 건네주었다. 전총경은 외사 분야에 오래 근무한 경찰관이다. 그렇다면 경찰청 외사3과가 수사를 중단한 것은 전총경의 로비를 받았기 때문인가. 그러나 당시 외사3과장이었던 박총경의 답변은 다르다.

“김포공항 경찰대는 서울경찰청 산하고 우리는 경찰청 소속이다. 같은 외사 경찰이지만 전씨는 분실 형태로 운영되는 경찰청 외사3과에 근무한 적이 없다. 그의 이름은 알지만 그로부터 어떤 부탁을 받은 적은 없다. 우리가 전씨의 청탁을 받고 내사를 중단했다면 검찰이 전씨를 구속한 마당에 우리를 가만 뒀겠는가. 우리는 외환관리법 위반 혐의에 중점을 두고 수사하다가 기소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96년 3월 내사를 중단했다.”

이렇게 해서 최씨와 호씨는 경찰 수사를 벗어났는데, 이 자료가 97년 서울지검 외사부 박성득부부장에게로 넘어갔다. 박부부장은 최씨와 호씨가 알스톰사와 손잡고 일했다는 사실에 착안해 이 돈이 경부고속철도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심증을 갖게 됐다. 그러나 그때는 알스톰사가 고속철도 차량 제작을 끝내고 한국에 인도하려던 시기로 철도 건설이 늦어진 한국이 차량 인도 시기를 늦춰달라고 제안하고 있었다. 그러자 알스톰사는 계약 위반이라며 위약금 지불을 요구해 매우 어수선했다. 이런 사정 때문에 박부부장은 이 사건을 입건하지 못하고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 인사명령이 나 그는 수원지검 형사3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수원지검으로 내려가기 전인 98년 3월 박부부장은 내사 자료를 대검 중수부로 넘겼다. 대검 중수부는 외환관리법이 아니라 형법의 알선수재죄 혐의가 있는지 검토했다. 알선수재죄는 외국인까지도 처벌하는 죄목이므로 비거주자도 처벌할 수 있다. 그런데 알선수재죄를 적용하려면 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한국인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는데, 호씨와 최씨 계좌가 홍콩에 있어 수사에 진전을 보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알선수재죄로 두 사람을 기소할 수 있는 시효(5년) 만료일(5월15일)이 다가오자 5월9일 대검은 호씨와 최씨를 공범으로 보고 일단 신병이 확보된 호씨를 구속함으로써 최씨에 대한 공소시효를 정지시켜 놓았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호씨는 “나는 최씨를 알스톰사에 소개만 했고, 로비는 전적으로 최씨가 알아서 한 것”이라며 공범 관계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대검이 호씨와 최씨가 공범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채 호씨만 재판정에 세우면 재판에서 질 수도 있다.

두번째로 살펴볼 것은 최씨와 김영삼 전대통령과의 관계다. 70년대 초반 미국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토렌스시로 이민한 최씨는 가발 사업과 부동산 소개업으로 기반을 닦은 뒤 국내 정치권에 진출하려는 야망을 불태웠다. 전두환 정권 때인 80년대 초반 야당인사들이 ‘민추협’을 결성하자 최씨는 적극적으로 민추협을 지원했다. 특히 그는 YS계 인사들과 가까워 YS가 미국에 오면 호텔을 예약해주고 연설회를 준비하는 등 앞장서서 뛰어다녔다고 한다.

85년 12대 총선(2·12총선)을 앞두고 신한민주당이 창당되자 그는 신한민주당을 적극 후원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YS는 최씨에게 전국구 12∼14번 사이를 제안했다. 당시 언론은 신한민주당의 전국구 당선 안정권을 대략 10번까지로 보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최씨는 매우 섭섭해 하며 이 제의를 거절했다. YS는 “이번 선거는 우리가 크게 이긴다”고 설득했으나 최씨는 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고 한다. 12대 총선은 YS가 예상한 대로 신한민주당이 큰 돌풍을 일으켜 전국구 후보는 17번까지 당선되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최씨는 다시 YS가 이끄는 통일민주당의 전국구 후보로 거론되었다. 그때는 대략 10억원 정도를 헌금해야 안정적인 전국구 후보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최씨는 거금이 없어 전국구 출마를 포기했다고 한다. 이런 일이 있은 뒤 최씨는 YS는 물론이고 최형우-김덕룡 등 상도동 실세들과도 차츰 소원해졌다고 한다. 최씨와 가까웠던 한 인사는 “92년 말 14대 대선에서 YS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 최씨는 YS를 만나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끈 떨어진 최씨를 YS와 가까운 사람인 줄 알고 알스톰사와 연결시켜 준 사람이 바로 호기춘씨였다.

호씨는 무속인 한모씨를 통해 ‘상도동 실세와 가깝다’는 최씨를 소개받아 알스톰사에 연결해 주었다. 이렇게 해서 최씨는 알스톰사의 에이전트가 됐지만, 최씨가 누구를 만나 로비했는지는 불분명하다. 최씨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때 최씨는 YS를 만나지도 못할 때인데 누구를 상대로 로비를 했는지 궁금하다. 그는 나름대로 로비한다고 다녔겠지만 모든 것이 여의치 않았을 것이다.”

상도동 정보에 밝은 한 소식통은 “고 김동영의원은 85년 신한민주당 원내총무를 할 때 이미 최씨와 멀어졌다. 며칠 전 상도동의 실세였던 김덕룡의원을 만났는데 김의원도 ‘최만석이 아직 살아 있데. 스타됐더구만’이라고 하더라. 김의원의 말투로 봐서는 그도 최씨를 본 지 꽤 오래 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최씨는 최형우의원을 “형님”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문민정부 출범 후에는 최의원과도 그리 가깝게 지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정황 때문에 소식통들은 “최씨가 ‘봉사 팔매 새 잡기’ 식으로 얼떨결에 알스톰사의 에이전트가 됐으며, 일이 되려고 그랬는지 로비를 거의 하지도 못했는데 알스톰사가 경부고속철 차량 공급업체로 선정된 것 같다”는 의견을 개진한다. 봉이 김선달은 ‘입품’이라도 팔아서 대동강 물을 팔아 먹었고, 린다김은 연서(戀書)라도 주고받으며 백두사업을 성사시켰지만, ‘끈 떨어진’ 최씨는 거의 아무런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호박을 넝쿨째 받아 먹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최씨의 로비 대상을 찾고 있는 대검의 수사는 벽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대검은 과연 문민정부 실세를 상대로 한 최씨의 로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검찰 주변에서는 “린다김을 피하고 최만석씨를 택한 검찰 앞에 ‘경고’를 뜻하는 황색 신호가 점멸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주간동아 2000.05.25 235호 (p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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