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커버스토리|채팅이 삶을 바꾼다

“너 보고 시퍼… 렇게 질렸어”

화상-아이콘-게임채팅 등 151만명 이용…일 놀이에서 中毒까지

“너 보고 시퍼… 렇게 질렸어”

“너 보고 시퍼… 렇게 질렸어”
“어릴 때부터 친구도 없고… 학교 다닐 땐 결석해도 담임 선생님이 모를 정도였어요. 그러다 친구 덕분에 채팅이란 세계를 접할 수 있었죠. 소극적인 성격이라 모르는 사람과 얘기하는 것이 편했나 봐요. 이젠 성격이 180도 바뀌어서 ‘나 내성적이다’고 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장난하냐’고… ^^ 저는 딴 사람이 됐어요…*^^*”

“채팅 많이 하면… 사이코 되지요… 아주 평범한… 진짜 아주 평범했던 제가… 채팅을 하면서 점점 이상하게 변해 가는 것 같네요. 특히 저는 화상채팅을 할 때 ‘강퇴’당하는데 익숙해졌고… 요즘 저를 보면 완전 편집증환자에다 히스테릭짱+사이코변태로 변해갑니다…--;;”

지난 4월 실시된 인터넷 사이트 아이팝콘의 채팅설문 조사에서 은정양(위)과 최성연군(아래)이 기술한 ‘채팅 경험담’이다. 채팅이 사람들의 삶을 바꾸고 있다. 정보통신부산하 한국인터넷정보센터의 4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인터넷 사용자는 전체 인구의 30.2%인 1393만명. 이중 10.9%인 151만여 명이 채팅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터넷 사이트 심마니의 99년 최다 검색키워드조사에서도 ‘채팅’은 ‘포르노’ ‘MP3’를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채팅이 21세기의 대표적인 풍속도로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두 가지.

‘채팅 테크놀로지’가 급속히 진화했다. 영화 ‘접속’ 수준에서 이미 몇 단계 뛰어 올랐다. 화상채팅, 아이콘채팅, 음악채팅, 게임채팅, 아바타채팅 등 새로운 채팅 테크놀로지가 속속 등장했다. 채팅은 이를 바탕으로 학교 가정 직장 무역 병원 게임 쇼핑 미팅 맞선 주식투자 선거 법률서비스 사이버교육 영화 연극 경로당 반상회 고스톱판에까지 영역을 넓히고 있다. 자연히 채팅에 노출되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밥먹듯 채팅한다’는 말이 틀리지 않는 세상이 됐다. 은정양이나 최군처럼 많은 사람들이 지금 채팅으로 송두리째 달라진 일상을 체험하고 있다.

5월11일 밤 11시 서울소재 대학들의 연합 광고동아리 ‘애드컬리지’ 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이들은 목요일 밤마다 이런 모임을 갖는다. 장소는 동아리 홈페이지 내 ‘채팅방’. 한 회원이 기자의 요청을 받고 이날 14명이 이 채팅방에서 주고받은 대화를 이메일로 보내왔다. 다음은 ID는 생략한 대화내용.



“얼레리~, 밤샘할 사람?, 나도 껴줘용, I님이 대화방에 입장하셨습니다, 홍보부에 대해 간략히 알려주세요,…, 아~, 오늘 ...미팅하는데… 리나언니 만났다, 준규야 낼 심리학 드러갈꺼냐?, 당근이쥐, 앗..이제 보니 나만 실명, 지오디가 니꺼야?, 지오디는 어디로든 갈 수 있어, 신촌 모 피씨방에..스캔이 비싸더라, 나 스킨 발랐다, 요즘..스캔들 좋은 것 없나?…”

서울여대에 재학중인 배효인 회원은 “회원들이 여러 학교에 흩어져 있어 직접 만나긴 어렵다. 그러나 농담처럼 술술 하는 채팅을 통해 친목을 다지고 정보도 교환하며 활발한 활동을 한다”고 말했다. 채팅방이 70, 80년대 대학가의 ‘서클룸’이나 ‘동아리방’을 대체하고 있는 현장이었다. 요즘 ‘공강시간’ 대학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은 구내 전산실, 또는 교문 앞 PC방. 이곳에서 과제물이나 게임, 아니면 채팅을 한다.

학창시절 수업시간에 선생님 몰래 주고받던 ‘쪽지문화’도 휴대폰 채팅이 대신한다. 서울 S여고 1학년 박모양(16)은 휴대폰으로 1분에 150타의 문자메시지를 날린다. 내용은 간단하다. ‘그냥’, ‘재미없어’, ‘아까 미안해’, ‘아침 먹었니’ 정도. “그러나 이런 메시지를 주고받으면 친구와 더 가까워진다”는 게 박양의 말. ‘너 보고 시퍼…(줄 바꿔서)…렇게 질렸어’처럼 휴대폰에서만 구현될 수 있는 유머도 박양이 즐겨 쓰는 문자채팅의 감초다.

5월10일 기자는 017휴대폰의 토크박스로 들어가 음성채팅을 했다. 여성안내자가 나와 직접 채팅 상대방과 ‘매칭’시켜 주었다. ‘태지’라는 ID를 쓰는 상대자는 여성단체의 직원이라고 했다. “비가 와서 기분 전환하려고요.” 그녀는 “매일 휴대폰 음성채팅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그녀의 통신요금은 15만원.

인스턴트메시징과 화상채팅.

영산정보통신의 김영민차장이 말하는 채팅의 ‘위대한 전환점’이다. 이 둘의 등장으로 채팅은 ‘일상도구’가 됐다는 것이다. 김차장은 덕분에 가족과 더욱 가까워졌다고 한다. “출근해서 컴퓨터를 켜면 아내로부터 온 메시지가 모니터에 뜹니다. ‘이제 도착했군요’ 전화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화상채팅으로 아들(3)이 거실에서 노는 장면을 보며 일을 하기도 합니다.”

심마니 김영태팀장은 메시징서비스로 업무효율을 높이고 있다고 한다. 다음은 그와 ‘광고주’간의 채팅내용. “배너광고디자인이 갑자기 바뀌었습니다. 빨리 교체 바랍니다, OK, …, 배너이미지 지금 보냅니다, …, 받았습니다, …, 교체했습니다, 사이트 확인바람….”

윤씨는 “상대방이 자리에 있는지 확인할 수 있고 모니터 하나로 업무파트너와 대화하며 동시에 연관된 작업을 할 수 있고 수화기에 손을 뺏기지 않아도 되며 무료라는 점도 좋다”고 말했다. “명함에 인스턴트메시징ID는 기본. 사업제안서 등 중요한 문서도 인스턴트메시징으로 결제받는다. 근무시간에도 채팅을 즐긴다. 고객상담 및 아이디어를 찾기 위해…”(벤처기업에 와서 달라진 변화 20가지 설문결과 중)

L그룹 김모씨(30)의 취미는 점심시간 30분간의 인터넷 고스톱. 대학동기들을 모아 놓고 판을 벌인다. 김씨는 “게임을 하며 채팅으로 격의 없이 대화한다. 진짜 안방에 둘러앉아 고스톱 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ID 청정인은 5월1일 오후 7시 인터넷사이트 디지털로의 채팅방을 두드렸다. 한시간이나 계속된 강기탁변호사와의 채팅에서 그는 IMF(국제통화기금) 때 삭감된 임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다.

언어장벽도 문제되지 않는다. 컴퓨터자동번역 채팅서비스사이트인 네토모닷컴에는 일본 치바 나리타에 살고 있는 30세 일본인 Ken이 5월10일 대화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こんにちわ” 그가 쓴 글은 수 초 후 “안녕하세요”라는 한글로 번역돼 나타났다. 기자는 이 일본인과 1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이 사이트 관리자 윤종호씨는 “한국인 채팅 참여자가 일본인에 비해 네 배나 많다. 유료채팅환경인 일본보다 한국이 채팅열기가 훨씬 뜨겁다”고 말했다.

채팅은 첨단기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며 보다 ‘저렴’하고 혁신적으로 현실세계와 ‘전자세계’를 얽어매고 있다(한국예술종합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과 정진홍교수). 5월10일 밤 10시 서울 서초구 아리수인터넷(web114.com)에서 직원들이 퇴근도 잊고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새로운 화상회의 시스템 출시를 목전에 두고 있기 때문. 이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수 천만∼1억여 원에 이르는 화상회의 설치비를 월 1만원으로 끌어내렸다는 점.

채팅은 한편으로는 민중봉기의 촉진제(록 뮤지컬 ‘모스키토’), 무장공비의 접선도구(영화 ‘쉬리’), 불륜의 감시자(영화 ‘디펜스’, 남편은 화상채팅 화면으로 밖에서 집안을 감시한다)로 그려지기도 한다. 열린문청소년상담소에 따르면 채팅은 원하는 상대를 만날 때까지 사람을 끝없이 ‘배회’하게 한다. 그래서 채팅은 때때로 ‘매우 비효율적’이며 ‘중독성’을 띤다. 이 단체의 조사에 따르면 이모군(17)은 처음엔 채팅에 중독됐고 다음엔 부탄가스에 중독됐다.

문화평론가 고길섶씨는 채팅의 ‘두 얼굴’을 이렇게 설명한다. “유희가 있으면 편집증이 주는 괴로움이 따른다. 스피드와 감각적 자극의 한편엔 ‘재잘거림’의 ‘가벼움’만 남는다. 하루에 얼굴도 모르는 수 십 명의 사람들과 ‘터놓고’ 얘기를 나누다가도 ‘접속’은 언제든 끊어지고 허무가 찾아온다.”

IMT2000사업이 마무리되는 수 년 후 화상대화가 가능한 휴대폰이 나온다. 미래는 채팅 휴대폰 컴퓨터 TV의 기능구분이 사라지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채팅이 개척하는 신대륙의 끝은 어디일까. 아리수인터넷 김상동 대표이사는 “실제로 만나는 것처럼”이라고 말한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타입의) 대상을 실제와 거의 유사한 공간에서 만나도록 해주는 게 채팅테크놀로지의 궁극적 목표라는 것이다.

5월12일 저녁 서울대에서 열린 한 음악회 녹화장. 이 곳에서 ‘번개’로 만난 채널아이 음악채팅 동호회 ‘죽마고우’ 회원들에게서 그 꿈의 일면이 보였다. 같은 취미를 가진 채 세상에 흩어져 있던 이들은 100일만에 ‘죽마고우’가 돼 지금은 늘 함께한다. 시삽 임지현양(홍익대 1년)은 “채팅이 꼭 필요한 친구들을 찾아줬다”고 말했다.









주간동아 2000.05.25 235호 (p10~15)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
1218

제 1218호

2019.12.13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