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32

2000.05.04

“대 끊길라” 불가피한 씨받이?

율법 금지에도 불구 근친상간 잦아…아버지 첩·이복누이 강제로 범하기도

  • 입력2005-10-17 11: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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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 끊길라” 불가피한 씨받이?
    성서에는 혈족간의 성관계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 야훼는 “아무도 같은 핏줄을 타고난 사람을 가까이하여 부끄러운 곳을 벗기면 안된다”(레위기 18:6)는 은유적 표현으로 근친상간을 금지했다. 성행위가 금지된 대상으로는 어머니와 아버지는 물론이고 누이 손녀 고모 이모 숙모 며느리, 형제의 아내와 처제, 심지어 아비의 동거녀까지 열거했다(레위기 18:7∼18).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율법을 어길 경우 저주를 받는다. 모세는 온 백성이 큰 소리로 “아비의 이불자락을 들추고 아비의 아내와 자는 자” “아비의 딸이든 어미의 딸이든 제 누이와 자는 자” “장모와 자는 자”에게 저주를 빌 것을 명령한다(신명기 27:20∼23).

    그럼에도 예루살렘 주민 사이에서 근친상간이 드문 일은 아니었다. 야훼는 “너희 가운데는 자기 아비가 데리고 사는 여인을 건드리는 자가 있는가 하면 (중략) 며느리와 놀아나는 자도 있고 같은 아비에게서 난 누이를 범하는 자도 있다”(에제키엘 22:10∼11)고 말한다.

    성서에 가장 먼저 등장하는 근친상간은 창세기 19장에 소개된 롯과 두 딸의 성관계다. 하느님의 천사 두 사람이 소돔을 멸하러 왔을 때 우연히 롯의 집에 머물게 된다. 그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소돔 시민이 온통 몰려와 롯의 집을 둘러싸고 “오늘 밤 네 집에 든 자들이 어디 있느냐? 그 자들하고 재미를 좀 보게 끌어내라”고 소리친다. 롯은 천사 대신 두 딸을 제공하려 한다. 천사들은 롯의 도움에 보답하는 뜻에서 소돔 성을 멸하기 전에 롯의 식구가 성을 빠져나가도록 한다. 그들은 롯의 가족에게 “살려거든 어서 달아나거라. 뒤를 돌아다 보아서는 안된다”고 재촉한다. 롯이 작은 도시인 소알 땅에 이르렀을 때 해가 솟았다. 야훼는 손수 하늘에서 유황불을 소돔에 퍼부어 도시와 사람과 땅에 돋아난 푸성귀까지 모조리 태워버린다. 그런데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보다가 그만 소금기둥이 되어 버린다(창세기 19:1∼26).

    롯은 소알에서 사는 것이 두려워 두 딸을 데리고 산의 굴속으로 들어간다. 하루는 언니가 아우에게 “아버지는 늙어가고 이 땅에는 우리가 세상의 풍속대로 시집갈 남자가 없구나. 그러니 아버지께 술을 취하도록 대접한 뒤에 우리가 아버지 자리에 들어 아버지의 씨라도 받도록 하자”고 말한다. 그날 밤 아버지에게 술을 대접하고 언니가 아버지와 성교한다. 그 이튿날 언니가 아우에게 “오늘은 네 차례이다. 같이 아버지 씨를 받자”고 말한다. 이리하여 롯의 두 딸은 아버지의 아이를 갖게 된다(창세기 19:30∼36).



    히브리 가정에서 첩은 아내와 대등한 신분이 주어지지는 않았지만 가족의 일부로 간주되었다. 아버지의 첩과 성관계를 갖는 것은 성서에서 근친상간에 해당된다.

    야곱에게는 빌하라는 소실이 있었는데 야곱의 맏아들인 르우벤이 그녀를 범한다(창세기 35:22). 야곱은 훗날 유언을 남기는 자리에서 르우벤에게 “끝내 맏아들 구실을 하지 못하리라. 제 아비의 침상에 기어들어 그 소실마저 범한 녀석!”이라고 꾸짖는다(창세기 49:3∼4).

    근친상간은 정치적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사무엘하 13∼18장에는 근친 사이의 강간사건이 빌미가 되어 암살 반란 근친상간 등 일련의 사태가 전개되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다윗의 맏아들인 암논은 이복누이 동생인 다말을 강간한다. 다말의 오빠인 압살롬은 암논을 암살하고 도망친다(사무엘하 13). 다윗은 3년이 지나서야 압살롬에게 품었던 노기가 풀린다. 다윗왕이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것을 눈치챈 신하가 그를 예루살렘으로 부르자는 건의를 한다. 압살롬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나 자기 궁으로 물러가 살면서 어전에는 얼씬도 하지 못한다. 결국 2년이 지난 뒤에 부자 상봉이 이루어진다. 압살롬이 어전에 들어가 얼굴을 땅에 대고 부왕 앞에 엎드리자 다윗왕은 압살롬에게 입을 맞춘다(사무엘하 14).

    그 뒤 압살롬은 자신이 탈 병거(兵車·전투용 수레)와 말을 갖추고 호위병 50명을 거느린다. 왕만이 거느릴 수 있는 수행 규모다. 압살롬은 다윗왕을 왕위에서 축출하기 위한 음모를 꾸민 것이다. 압살롬은 이스라엘의 모든 족속에 첩자를 보내 나팔소리를 신호로 “압살롬이 헤브론에서 왕이 되었다”고 외치도록 한다. 압살롬을 따르는 무리의 수가 불어나면서 반란세력이 커져 간다. 이스라엘의 민심이 압살롬에게 기울었다는 소식을 듣고 다윗은 왕궁을 지킬 후궁 10명만 남겨두고는 온 왕실을 거느리고 걸어서 피난길에 오른다(사무엘하 15).

    예루살렘에 입성한 압살롬이 왕위에 올라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의견을 묻자 한 신하가 “부왕이 궁궐을 지키라고 남겨두고 간 후궁들과 관계하십시오. 임금님께서 친아버지마저 욕을 보였다는 소식이 온 이스라엘에 퍼지면 임금님을 받드는 사람들은 의기충천할 것입니다”고 아뢴다. 압살롬은 궁궐의 옥상에 천막을 쳐 신방을 마련한 다음 온 이스라엘이 보는 앞에서 부왕의 후궁 10명과 차례로 성교를 한다(사무엘하 16).

    압살롬의 행위는 근친상간에 해당되지만 쿠데타의 성공을 알리는 정치적 행동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다윗의 입장에서는 유부녀인 밧세바와 불륜을 저지르고 그의 남편인 우리야를 싸움터에서 죽게 만든 죄를 벌하기 위해 야훼가 예언자 나단을 보내 선언했던 운명이 실현된 셈이다. 나단은 다윗에게 야훼의 말을 전한다.

    “바로 네 당대에 재난을 일으킬 터이니 두고 보아라. 네가 보는 앞에서 네 계집들을 끌어다가 딴 사내의 품에 안겨주리라. 밝은 대낮에 네 계집들은 욕을 당하리라. 너는 그 일을 쥐도 새도 모르게 했지만 나는 이 일을 대낮에 온 이스라엘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루리라”(사무엘하 12:11∼12).

    다윗은 군대를 모아 압살롬과 전쟁을 벌인다. 이스라엘 군은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하여 그날로 2만 명이 전사한다. 압살롬은 노새를 타고 울창한 상수리나무 밑으로 빠져나가다가 머리가 나뭇가지에 걸리고 만다. 다윗의 장군이 창 3개를 던져 나무에 매달린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다. 그러자 병사 10명이 달려들어 그를 쳐죽인다(사무엘하 18).

    예루살렘 왕궁으로 돌아온 다윗은 후궁 10명을 한데 몰아가두고 다시는 찾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을 때까지 갇힌 몸이 되어 생과부로 지낸다(사무엘하 20:3).

    성서의 율법 중에는 형제의 아내와 상간(相姦)을 허용하는 특별한 경우가 한 가지 있다. 수혼(嫂婚)이라 불리는 유대의 특이한 풍습에서는 과부가 된 형수와의 성교를 의무화하고 있다. 여러 형제가 함께 살다가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산다. 그래서 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는다(신명기 25:5∼10).

    수혼의 대표적인 사례는 창세기에 나오는 오난의 이야기이다. 유다는 맏아들 에르에게 아내를 얻어주었는데 그의 이름은 다말이다. 에르는 야훼의 눈밖에 나서 죽는다. 유다는 에르의 동생인 오난에게 이르기를 형수에게 장가들어 시동생으로서 할 일을 하여 형의 후손을 남기라고 한다. 그러나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고 오난은 형수와 한 자리에 들었을 때 정액을 바닥에 흘려 형에게 후손을 남겨주지 않으려 한다. 그가 한 짓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이었으므로 야훼가 그를 죽인다(창세기 38:6∼10).

    수혼제도에 도전한 오난의 행위는 피임기술의 일종인 질외사정으로 보는 견해가 없지 않지만 그의 이름에서 비롯된 오나니즘(onanism)은 수음(手淫)을 뜻한다.

    다말은 훗날 매춘부로 변장하고 길섶에서 유다를 유혹하여 아이를 갖는다. 며느리와 시아버지의 상간으로 혈통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창세기 38:12∼26).

    성경에서는 근친상간의 범위를 부모 형제 등 혈족에서부터 아비의 첩, 형제의 아내, 며느리까지 포함시키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근친상간은 부녀상간, 모자상간, 남매상간, 동성상간 등 가족 사이의 성관계를 의미한다.

    근친상간은 고대 이집트나 잉카 제국의 왕실에서처럼 지배계급에 의해 용인된 경우도 있긴 하지만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랫동안 금기로 전승되어 왔다.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관습이 보편적으로 존재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두 가지 상반된 설명이 있다.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근친상간을 은밀히 갈망하지만 사회적 터부의 존재로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매우 가까운 친척 사이에는 성적 흥분을 느끼지 못하므로 성관계를 혐오한다고 주장한다. 전자는 근친상간이 금지돼 있다고 보는 반면에 후자는 회피되었다고 본 것이다.

    19세기 말 근친상간에 대해 체계적으로 연구한 최초의 인물은 핀란드 사회학자인 에드워드 웨스터마크이다. 그는 1891년에 펴낸 ‘인간 결혼의 역사’에서 근친상간 회피이론을 제안한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사는 사람들 사이에는 성적 감정이 거의 없으므로 성교행위에 대해 혐오감을 갖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이 혈족간의 성교를 꺼리는 관습으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근친상간이 회피되었다는 것이다.

    회피이론은 오스트리아 정신분석학자인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공격을 받는다. 그는 근친상간이 본능적 혐오감에 의해 회피된 것이 아니라 문화적 구속력에 의해 금지되었다고 주장했다. 1913년 출간된 ‘토템과 터부’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근친상간 금기를 설명했다. 프로이트의 다분히 공상적인 이론과는 달리 사회적 기능의 측면에서 근친상간 금기의 기원을 설명한 사람은 프랑스 인류학자인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이다.

    그는 1949년에 펴낸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사회결연 이론을 제안했다. 농경집단사회에서 다른 가족과 결연을 맺으면 이득이 많으므로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다른 가족에게 선물로 증여하기 위해 딸과 누이를 이성으로 대하지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버지와 딸, 어머니와 아들, 오빠와 누이가 잠자리를 함께 한 것이 들통나서 받게 될 사회적 비난과 처벌이 두려워 근친상간을 삼가는 것일 뿐 매일 유혹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요컨대 근친상간 터부는 문화적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고 프로이트는 주장한다.

    그러나 웨스터마크는 그와 정반대의 입장에서 근친끼리는 본능적으로 성관계를 혐오하여 회피한다고 주장한다. 대관절 근친상간은 금지된 것인가, 회피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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