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23

2000.03.02

떠오르는 ‘권노갑-한광옥 동맹’

공천 결과로 본 勢 변화…DJ 집권 후기 사전 정지작업, 탄탄해진 이인제 김근태

  • 입력2006-02-03 11: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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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떠오르는 ‘권노갑-한광옥 동맹’
    동교동계로의 회귀인가, 아니면 신진세력의 부상인가. 2월18일 발표된 민주당 1차 공천 결과가 아리송하다. 권노갑고문 자신은 불출마 선언을 했지만 권고문 계열 인사 여러명이 공천 관문을 넘어섰고, 반면에 동교동 직계 핵심인사인 최재승 윤철상의원은 탈락했다. 동교동계 내부 권력 구도에 미묘한 변화 기류가 있다는 얘기다.

    겉으로 드러난 이번 공천의 최대 수혜자는 ‘권노갑-한광옥 동맹’인 것처럼 보인다. 권고문은 자신을 희생양삼아 측근인 이훈평의원(서울 관악갑)과 전갑길 광주시의회부의장(광주 광산), 경제 ‘과외 교사’를 담당한 김효석 전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담양-곡성-장성)을 공천시켰다. 이석형변호사(서울 은평을)와 배기운 전보훈복지공단사장(나주)도 권고문 계열이다. 한광옥 청와대비서실장 역시 한때 물갈이 대상에 올랐던 김태식(완주-임실) 조찬형(남원-순창) 장영달(전주 완산) 장성원의원(김제) 등 이른바 ‘전주고 4인방’을 모두 구제하는 데 성공했다. 1차 공천에서 보류되기는 했지만 윤호중 전청와대정책기획실국장(경기 구리)과 설송웅 전용산구청장(서울 용산)도 한실장 계열에 속한다. 당내 어느 누구보다 ‘자기 사람들’을 심는데 성공했다는 얘기다.

    반면 사실상 공천작업을 주도한 정균환특보단장과 한화갑전총장은 ‘실익’이 거의 없었다. 수도권 공천자들의 대부분을 이들이 영입했지만 그들을 한전총장이나 정단장 계보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특히 권고문의 불출마선언에 따라 한전총장으로 대표주자가 정리되는 듯하던 동교동계 내부 분위기가 약간 꼬이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총선 이후 상황에 따라선 내부에서 경쟁 구도가 생길 수도 있다는 얘기다.

    여권내 세력구도의 재편 현상을 청와대 출신 소장파들의 공천 참패와 연결해 보는 시각도 있다. 사실 이들의 탈락은 이번 민주당 공천의 최대 의문점 가운데 하나다. 당초 공천 신청을 한 청와대 출신 소장파들은 장성민 전국정상황실장, 김득회 전제1부속실장, 유종필 전제2건국비서관, 김현종 오상범 임삼진 박현 등 국장 출신들. 과연 이들 모두가 공천 기준이라 하는 당선가능성 개혁성 청렴성 참신성 등에서 다른 후보들에게 밀렸기 때문일까.

    물론 이들 중 일부는 경쟁력에서 야당 후보나 공천 경합자에게 뒤질 수도 있다. 그러나 몇몇 인사는 충분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여곡절 끝에 막판에 탈락됐다. 이들의 공천 진입을 가로막은 최대 걸림돌은 아이로니컬하게도 동교동과 청와대의 최고 실세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겉으로만 본다면야 그 누구보다 먼저 챙길 수도 있는 자신들의 후배이자 대통령 친위세력을 몇몇 실세들이 끝까지 막았다는 얘기다.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개인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권력 재편을 둘러싼 신-구 갈등에서 찾을 수 있을 듯하다. 다시 말해 범동교동계 구파들은 386세대의 대거 진출이나 당내 새로운 세력의 급부상 등 빠르게 돌아가는 당내 역학구조의 변화 속에서 자칫 자신들의 주도권을 빼앗길까 위기감을 가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이 이런 위기감을 피부로 느낀 최초의 사건은 역시 권노갑고문의 총선 불출마 선언. 권고문을 필두로 해서 조만간 자신들의 위치마저도 흔들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구파들의 결속력을 높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정균환특보단장을 필두로 김한길 선거기획단장, 정동영 대변인, 정동채 대표비서실장, 김민석의 원 등 소장파 그룹이 부상하는 듯하자 강력한 견제 심리가 발동했다는 얘기다. 김대통령은 이해찬 전교육부장관을 선거기획단장으로 해야 한다는 당의 몇 차례 건의를 뿌리치고 김한길 전정책기획수석을 발탁했으며, 정특보단장에게도 실질적인 권한을 위임했다. 공천에서 탈락한 몇몇 청와대 출신 인사들은 이들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다.

    ‘권노갑-한광옥 동맹’이 결성된 것도 이런 와중의 일. 민주당의 기나긴 공천 작업 기간 중 권고문은 2월8일 불출마 선언 이후 이틀에 한번 꼴로 청와대를 들어가고, 한실장은 거의 매일 권고문에게 ‘보고성’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긴밀한 연대 속에서 공천의 최종 막후 조율을 한 것. 남궁진 청와대정무수석, 최재승 기획실장 등도 이 동맹의 실무 라인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최재승 윤철상의원의 탈락 배경은 과연 무엇일까. 최의원의 경우는 공천 실무작업 과정에서 정균환특보단장과 지나친 주도권 경쟁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핵심에서는 호남권 물갈이를 할 경우 대외적 이미지 제고를 위해 윤철상 한영애 최재승의원의 순서로 교체한다는 묵계가 있었는데, 한의원이 여성계 몫으로 구제되는 바람에 순위가 최의원까지 올라갔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최의원과 윤의원은 비례대표로 구제한다는 방침.

    결국 이번 민주당 공천은 당내 비주류 그룹을 철저히 잘라내고 김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권력누수를 막기 위한 친위 그룹을 ‘배양’하는 데 초점이 맞추어졌으며, 이를 ‘권-한 동맹’이 적절히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이런 사전 정지작업이 오는 9월 전당대회에서의 지도부 경선을 염두에 두고 있음은 물론이다.

    가장 껄끄러운 상대인 김상현의원은 물론, 김의원 계보인 박정훈 이길재 김종배의원 등도 모두 탈락했다. 정대철전의원 역시 자신의 계보인 조홍규 조순승의원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은 겨우 턱걸이를 했다. 이종찬고문도 상황은 마찬가지. 이고문과 가까운 이영일 전대변인도 낙천했다. 한나라당 공천이 수장(首長)들은 자르고 몇몇 계보원들은 거둠으로써 이회창총재의 기반 확대를 꾀하고 있다면, 정반대로 민주당은 이용가치가 있는 수장은 적정한 예우를 하면서 ‘밑동’은 사정없이 잘라낸 것.

    한때 김대통령에 의해 ‘제2인자’로까지 추켜세워졌던 김중권 전비서실장 역시 세(勢)의 몰락을 맞이하는 중이다. 김전실장이 역동적으로 추진했던 대구-경북의 ‘김중권 벨트’는 현재 자취도 거의 없다. 경북 문경 출신인 김광식 전경찰청장 등 총선 출마를 염두에 두고 인사 단계에서부터 ‘심었던’ 인사들이 모두들 총선출마를 고사했기 때문. 이로 인해 김대통령이 김전실장을 대하는 태도 또한 전과 같지 않다는 소식이다.

    다만 이인제 선대위원장과 김근태의원은 사정이 약간 다르다. 물론 공천 결과로만 보면 이 두 사람도 위의 비주류와 별다를 것이 없다. 이른바 ‘충청권 조각(組閣)’을 이위원장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충청권 이외에 이위원장 계보로 분류되는 인물은 이희규전도의원(경기 이천) 뿐이다. 그나마 이씨도 이위원장 지원을 받았다기보다 ‘자력갱생’한 것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김근태의원도 지난 15대 총선에서는 모두 10장의 ‘공천 티켓’을 받았지만, 이번에는 한 장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이위원장의 경우 자민련 아성인 논산-금산에서 살아 돌아오고 충청권 몇 석을 건져낼 경우, 얘기가 달라진다. 이른바 중부권을 대표하는 대권주자로서 강력하게 총재 경선을 요구하면서 동교동계에 맞설 한 축을 형성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 또한 지난 대선에서 얻은 500만표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적 인기몰이로 ‘포스트 김대중’의 가장 강력한 후보로 떠오를 가능성도 높다. 경기 남부와 충청권 인사들은 벌써부터 이위원장에게 줄을 서는 모습도 보인다.

    김근태의원도 나쁘지만은 않다. 김영환 천정배의원 등 15대 공천티켓을 통해 원내에 진입한 인사들이 이번에도 거뜬히 공천 관문을 통과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386세대 등의 젊은피 수혈이 이루어졌기 때문. 과연 얼마나 원내에 진출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주요 대학교 총학생회장 출신인 이들 386세대는 기성정치문화의 폐습을 타파하겠다는 강력한 개혁 성향을 보이고 있어서, 김의원 중심으로 독자세력을 구축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물론 운동권출신도 모두 개혁 성향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몇몇 인사들 중 일찍이 권고문 계열에 투항한 것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본다면 오는 9월 전당대회에서 동교동계에 필적할 만한 비주류 그룹은 사실상 이인제위원장과 김근태의원 정도밖에 없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공천 작업을 실질적으로 동교동계가 관장했기 때문에 수도권 총선 결과에 따라 문책론이 대두될 가능성은 있다. 또한 권노갑고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있는 정동채 정동영 김한길 등의 소장파 그룹이 어느 선까지 김대통령의 ‘신임’을 획득할 것인지도 한 변수가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권력재편 과정은 역시 총선 결과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된다. 살아 돌아와야만 그 다음의 권력쟁패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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