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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칼럼

우리 시대의 ‘선생님’

우리 시대의 ‘선생님’

우리 시대의 ‘선생님’
다른 건 몰라도, ‘은사(恩師) 복’은 있었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만큼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나는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말을 수없이 들으며 자랐다. 불행이라면 불행이겠지만, 그 말을 입에 달고 산 사람이 바로 어머니였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장으로 돌아가셨으니 말하자면 소위 ‘선생네 집’ 아들이었고, 지금도 형님네는 부부교사, 매제 또한 현역 교사로 있으니 ‘교육자 집안’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런 내가 어려서부터 ‘금과옥조’처럼 듣고 자란 말이 바로 선생 똥은 개도 안먹는다는, 비하와 탄식이 어린 말이었다.

힘들고, 보수는 적고, 보람을 찾기엔 마음고생이 너무 많은 직업…. 그 일이 얼마나 고되면 그가 눈 똥을 개도 안먹으려 할까. 아마 그런 뜻일 것이다.

그런데도 청소년시절 한때 나의 꿈은 선생님이었다. 그것도 어느 벽지나 섬에 가서 평생을 걸고 ‘삶의 스승’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건 아마 내가 중고등학교에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며 얻은 ‘그 역할의 가치’ 때문이었을 것이다.

학교 교육의 현실을 우려하는 여러 진단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의 교육현장에 여전히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고, 그 희망의 그루터기로 선생님을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아직 ‘선생님, 우리들의 선생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학생이 아니고 선생님들이 아니다. 이 두 기둥을 둘러싼 밖에 있다. 교육정책과 학부모들의 가정교육이 그것이다.



산아제한이라는 정책이 가장 단기간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나라가 한국이어서, 인도에서는 우리 나라를 그 표본국으로 보고 많은 것을 연구한다고 들은 게 벌써 10여년 전의 일이었다. 적게 낳아 잘 기르자는 건 좋은데, 이러다 보니 애를 기르는 게 아니라 아예 아이들을 주물러 터트려 가면서 기른다.

젊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별의별 것을 다 가르쳐야 성이 차고, 아이들 기를 키워준다고 무슨 짓을 해도 다 좋다는 식이다. 이건 자유분방이 아니다. 거의 난잡에 가깝다. 그렇게 자라나니 학교에 와도 산만하기 짝이 없고, 공동생활의 기틀 같은 것은 아예 설자리가 없는 인성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제 자식 기 살려 준다고, 식당 안에서 들고뛰어도 본체만체하는 젊은 부모들은 이제 이상할 것도 없다. 아이가 소리치며 뛰어다니는 걸 옆자리의 손님이 보다 못해 한마디 하면, 아이를 나무라며 사과를 하기는커녕 “그러니까 애지요!”하며 자식을 두둔하기까지 한다.

언제까지 선생님들에게 헌신과 희생을 강요할 건가

삼촌뻘이 되는 친척 한 분이 농사를 지으시는데, 그 분이 농사 짓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방치농법’ 이란다. 논밭 몇 개를 그렇게 실험적으로 경작한다는 것이었다. 이름이 재미있어서 무슨 기묘한 농업기술인가 했더니, 한 마디로 ‘내팽겨쳐 두는 농사법’이란다. 비료며 농약이며 성장촉진제며 그런 것 없이, 씨 뿌리고 나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 거두기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슨 농사가 되겠어요?”하고 물었더니 태연하게 대답한다. “물론 되지. 김이나 매 주면 되지, 언제부터 우리가 비료며 농약을 썼던가.”

그렇게 한번 지어 봤더니, 수확이야 적지만 그 수확물이 제대로의 맛을 내더라는 것이다. 방치농법이라. “삼촌이 게으르시니까 공연히 그러시는 거죠”하며 웃고 말았지만, 그 절묘한 단순성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좀 내버려두고 기를 수는 없는 것일까. 아이 기를 살려서 무엇이 되는가. 그것은 자의(自意)가 아니라 자의(恣意)적인 인간이 될 뿐이다. 자의(自意)가 창의(創意)를 만든다면, 우리는 지금 커다란 오류를 우리의 자식들에게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어느 학교에선가는 아마 이런 방치교육(?)을 하며 ‘맛있는 인간’을 길러내고 있는 선생님이 분명히 계시리라.

나는 아직도 믿고 있다. 선생님은 직업(job)이 아니라 역할(role)이며 사명(mission)이라고. 그러나 언제까지나 선생님들에게 개도 안먹는 똥을 누는 헌신과 희생을 강요한다면 그건 국가가 아니다. 교육부 장관 직의 부총리 격상이 선생님들의 격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2000.02.24 222호 (p104~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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