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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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포켓몬… 애들 마음 꽉 잡았지롱”

인형 완구 스티커 딱지 등 수집 열풍… 넉달 새 라이선스료만 40억원 달해

  • 입력2007-04-05 14: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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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 포켓몬… 애들 마음 꽉 잡았지롱”
    “텔레토비 미워요!” “둘리는 유치해요!” 서울 개포동의 한 초등학교 2학년 교실. 뒷벽에는 아직도 아이들이 종이접기로 만든 텔레토비들이 붙어 있었지만 아이들은 비정(?)했다. 포켓몬스터에 빠진 아이들은 다른 캐릭터들에 대해 ‘싫증났다’가 아니라 ‘밉다’고 소리쳤다. 반에서 포켓몬 캐릭터 상품을 가장 많이 가졌을 뿐 아니라 만화의 주인공 지우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점을 몇 번이나 강조한 지훈(9)이는 “학교에서 압수당한 것까지 합치면 카드와 장난감 사는데 십만원쯤 들어갔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슈퍼마켓의 빵과 과자 봉투에서 포켓몬 스티커만 빼돌리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포켓몬스터에 열광하고 있었다.

    “카드 장난감 값만 10만원 들었다”

    그러나 포켓몬 때문에 진짜 속앓이를 하는 쪽은 어른들인 듯하다. 서울 마포초등학교 앞의 한 문방구점 주인은 “8년이나 거래해온 도매상에서 포켓몬 카드 한 상자에 팔리지도 않는 물건들을 잔뜩 끼워 넘겼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본에서 포켓몬 라이선스권을 사온 ㈜대원동화 캐릭터 라이선싱 남종합 팀장은 매일 세관 직원들을 다그쳐 가짜 포켓몬 캐릭터 상품을 적발하고 있지만 근절은 불가능해 보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캐릭터가 일단 뜨면 중국에서 싼 캐릭터 물건을 들여와 2, 3개월에 쉽게 4억~5억원 정도는 남길 수 있기 때문에 업자들이 처벌을 감수하고 계속 수입을 하는 거죠.”



    그가 적발한 가짜 포켓몬 상품 중에는 포켓몬을 잡는 ‘마스터볼’에 일본 산리오사의 유명한 캐릭터 ‘헬로 키티’를 붙여 교묘하게 저작권 망을 벗어가려 한 것도 있었다.

    지난해 우리 나라 캐릭터 산업 규모는 5000억원 정도였지만 올해는 텔레토비, 복고풍을 타고 다시 떠오른 헬로 키티, 그리고 아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포켓몬 등으로 인해 캐릭터 시장 규모가 훨씬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캐릭터, 애니메이션 전문가들은 우리 나라의 캐릭터 산업은 이제 걸음마 단계로 성장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한 캐릭터 라이선싱 관계자는 “텔레토비와 포켓몬은 대기업들과 소규모 출판사(혹은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관계를 역전시켰다. 고압적이던 대기업들이 그림 한 컷을 받기 위해 고개를 숙이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포켓몬은 7월14일 SBS 전파를 타기 전 이미 완구와 봉제 라이선스가 팔려나갔고, 현재 빵 과자 문구 운동화 치즈 소시지 등 거의 모든 제품에 포켓몬이 붙어 있어 업계에서는 대원동화측이 판 라이선스가 4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짐작한다.

    80년대 초 장난감 ‘끈끈이’를 개발해 대히트를 한 ㈜손오공의 최신규대표는 “90년대 초 디즈니가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장난감은 그냥 장난감이었다. 당시 국내업자들은 일본에서 캐릭터 상품을 개발하는 것을 보고 유치하다고 했다”고 기억한다. 그러나 지금 캐릭터가 없는 완구나 문구류는 경쟁력을 완전히 상실했다. 그리고 캐릭터의 ‘힘’은 그것을 보여주는 매체의 힘(‘커뮤니케이션 툴’)에 비례한다.

    캐릭터 애니메이션 관계자들은 ‘일단 TV 전파만 타면 공책, 종이접기 등 문구류 판매에서 기본은 한다’고 말한다. 이 때문에 애니메이션 기획시 캐릭터 상품을 염두에 두는 경향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최근 SBS를 통해 방송되면서 로봇 완구에서 포켓몬을 누른 ‘구슬동자’의 경우, 시리즈 중간에 한국 완구회사에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 일본 만화제작사로 보내면 장난감이 그대로 만화의 캐릭터로 살아난다. 일본에서는 아이들의 용돈이 두둑해지는 명절과 새 학기 무렵 새로운 만화 캐릭터가 등장한다. 영화 ‘용가리’를 제작한 영구아트무비의 이형승실장은 “일본 애니메이션이 강한 것은 장난감 회사와 만화제작사가 긴밀히 이어져 제작비 투자가 안정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화도 캐릭터의 ‘커뮤니케이션 툴’로서 줄거리보다는 캐릭터가 얼마나 멋진지를 최대한 부각시켜 주어야 한다. 국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영혼기병 라젠카’는 로봇들이 행동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캐릭터 산업에서 돈을 벌어들이지 못했다는 평이다.

    방송, 비디오, 출판 만화, 게임 등의 매체가 중요한 또다른 이유는(상대적으로 극장용 만화는 캐릭터 산업에 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그것이 ‘평평한’ 만화 그림에 말 그대로 ‘성격’(캐릭터)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또한 캐릭터가 지속적으로 아이들을 끌어들이려면 그들의 상상력 속에 부모들이 알지 못하는 규칙으로 이뤄진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서 아이들에게 ‘임무’를 맡길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한 아동 심리학자의 말을 인용해 ‘아이들은 6, 7세부터 사물을 파악하여 ‘지배’ 하려는 열망이 생겨난다. 포켓몬은 이런 요구를 만족시켜 준다’고 분석한다. 포켓몬은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신종 생물(식물, 동물, 에너지 등이 잡종 결합된 생물)들과 각종 수련과 대결 규칙으로 이뤄진 하나의 세계를 설정한다. 요즘 아이들에게 인기있는 공룡 만화 ‘무적캡틴 사우르스’도 매그넘 사우르스, 마하루스 등 어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공룡 이름들로 이뤄진 세계다. 이처럼 캐릭터 하나 하나로는 단순한 포켓몬이 아이들에게 수집가의 역할을 맡기는 만화라면 ‘구슬동자’는 다양한 변신을 통해 복잡한 구조를 파악하게 한다. 또한 아직도 여자 어린이들에게 절대적 인기를 얻고 있는 ‘세일러문’이나 요즘 나오는 ‘카드캡터 체리’는 주인공이 싸우기 전마다 화려한 옷을 갈아입는 팬터지의 세계로 아이들을 끌어들인다.

    이런 과정에서 캐릭터의 타깃과 라이선스 상품 리스트도 결정된다. 원작자는 각종 상품에 어울리는 캐릭터들의 포즈와 표정도 만들어내는데 이러한 상업적 ‘매뉴얼’이 가장 발달한 곳은 역시 디즈니다.

    개포초등학교 전왕건교사는 “수업시간에도 물끄러미 만화 카드만 보고 있는 애들이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아이들은 비록 조악한 그림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도 세계를 상상하기에 충분한 것이다. 대원동화 남종합팀장은 “아이들 중에도 혁신적인 집단이 있다. 새로운 것을 빨리 알거나 먼저 구입해 우월감을 느끼는 아이들인데 이들이 캐릭터 상품 판매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만화 기획의 어려움은 어른들이 이러한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놀던 것을 생각해보세요. 건전지 하나를 들고 비행기라며 날리고 기차라고 칙칙폭폭 말하잖아요. 그때 어떤 상상을 했는지 떠올리는 겁니다.”

    ㈜손오공 최신규대표의 말이다. 그의 말은 “집 근처 논과 밭에서 벌레를 잡아 상자에 가둬놓고 놀던 기억”으로 포켓몬을 고안했다는 창안자 타지리 사토시의 말과도 일치한다.

    포켓몬이나 텔레토비, 디즈니 캐릭터의 성공은 캐릭터 산업의 양면을 보여준다. 즉 캐릭터는 고부가가치 산업이긴 하지만 지속적으로 ‘커뮤니케이션 툴’을 유지해주면서 얼굴과 성격을 ‘진화’시켜 나가야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다. ‘둘리’의 가장 큰 교훈은 ‘커뮤니케이션 툴’만 있다면 우리도 고유의 캐릭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최근 MBC를 통해 방송 중인 ‘부미 다미’도 우리 나라에서 자체 개발한 캐릭터인데 장난감 인기 아이템인 자동차가 많이 등장해 만화와 캐릭터 산업의 긴밀한 연관 관계를 보여준다.

    캐릭터 산업 관계자들은 캐릭터와 애니메이션 산업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캐릭터 개발’보다 ‘가짜 단속을 통한 저작권 보호’라고 입을 모은다. 한 완구업자는 “로열티가 매출액의 5~10% 정도를 차지하더라도 텔레토비의 경우처럼 중국에서 조악품을 들여오고 국제적 망신까지 당하는 것보다 낫다”고 말한다. ‘포켓몬의 생명도 가짜와의 싸움에 달려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말이다. 싸움은 쉽지 않다. 라이선스를 얻은 업체마저 몰래 중국의 싸구려를 팔다 적발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캐릭터가 붐 주역

    무려 151가지 … 독특한 진화시스템도 한몫


    일본에서 시작된 포켓몬스터(약칭 포켓몬) 열풍이 미국 유럽 대만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상륙했다. 닌텐도의 게임과 TV 애니메이션에서 시작된 포켓몬 열풍은 다양한 캐릭터 상품으로 만들어지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포켓몬스터가 아이들을 사로잡는 가장 큰 이유는 캐릭터 가치가 월등히 높다는 점. 아이들은 각기 다른 개성으로 무장한 151마리의 포켓몬에 열광한다. 일반적으로 한 편의 만화에는 10명 이내의 주요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중에서 인기를 얻는 것은 서너 개뿐이다. 그러나 포켓몬은 151마리의 캐릭터들이 모두 사랑받고 있다. 다람쥐 거북이 개구리 꽃 버섯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을 조합해 만들어낸 포켓몬이란 신종 ‘생물’은 만화와 게임, 캐릭터 상품 속에서 생명력을 얻고 있다. 웬만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라면 포켓몬 1번부터 151번까지의 이름은 물론 각각의 특성까지 줄줄 욀 정도다.

    또 다른 인기요인은 포켓몬만의 독특한 육성시스템. 자신의 주인인 포켓몬 트레이너와 함께 모험을 떠난 포켓몬은 트레이너의 애정과 훈련을 통해 다른 포켓몬으로 진화한다. ‘피카추’는 ‘라이추’로, ‘이상해씨’는 ‘이상해풀’을 거쳐 ‘이상해꽃’으로 진화한다. 진화를 거듭할수록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나 능력이 늘어난다. 하지만 진화를 위해서는 ‘달맞이돌’ 등의 도구가 필요하기도 하고, 수련도 쌓아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트레이너와 포켓몬 사이의 교감과 애정. 사랑하는 포켓몬을 위해서라면 승부에서 패배를 감수하기도 한다. 포켓몬 세계를 접하는 아이들은 감정이입을 통해 마치 자신이 포켓몬 트레이너가 된 것처럼 포켓몬 상품들에 애정을 쏟고, 더 많은 포켓몬을 모으려고 하는 것이다.

    마케팅적인 측면에서 캐릭터 상품을 발매하기 전에 철저한 사전준비를 한 것도 포켓몬 열풍의 비밀이다.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거나 캐릭터 상품을 발매하기 위해서 먼저 각 나라별 언어와 아이들의 취향에 맞게 151마리의 포켓몬 이름을 지었다. 대표 캐릭터인 피카추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포켓몬은 나라마다 이름이 다르다. 자그마한 거북이 모양을 한 ‘꼬부기’는 일본에선 ‘제니가메’(ゼニガメ), 미국에선 ‘스쿼틀’(Squirtle)로 불린다.

    캐릭터 사용권리를 총괄하는 일본의 쇼프로(ShoPro)는 151마리의 포켓몬 이름과 등장하는 사람들의 이 름, 마을 이름, 건물 이름, 거리의 이름까지 모두 정해진 다음에야 상품 발매를 허가한다. 우리 나라에서 도 출판, 애니메이션, 팬시 관련자들이 모여 이름을 정하기 위해 1년 동안 회의를 거듭했다.

    현재 한국에서 방영되는 TV 애니메이션은 1차 시리즈. 일본에선 현재 3차 시리즈를 방영중이고 5차 시 리즈까지 방영 예정이다. 5차 시리즈까지 방영되면 현재 151마리인 포켓몬은 모두 300마리로 늘어난다. 캐릭터 상품의 숫자 역시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날 전망이다.

    오태엽 아동만화잡지 ‘팡팡’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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