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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DJ식 재벌개혁 논란

‘재벌 목조르기’ 2탄 나올까

연말에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 “나올 수 있는 카드 다 나왔다” 분석도

  •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재벌 목조르기’ 2탄 나올까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가 연말이 다가올수록 초미의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는 바로 12월에 개최될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의 내용이다. 그동안 김대중대통령이 분기별로 재벌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모아 대기업 구조조정 원칙을 점검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해 왔던 전례에 비추어 12월에 열릴 정-재계 간담회에서도 이와 관련한 대통령의 구체적 언급이 나올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또 재계는 물론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숱한 논란을 빚어온 ‘연말까지 부채비율 200%를 달성한다’는 약속 시한이 다가옴에 따라 긴장의 강도는 더욱 고조되는 느낌이다. 전경련은 김각중 신임 회장대행이 이례적으로 대국민사과성명을 내면서까지 ‘부채비율 200%’ 조항의 재고를 건의했으나 금융감독위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행히 대우를 제외한 모든 그룹이 이 조항을 준수하는 데에 별 문제가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부채비율 200%를 맞추는 것이 김대중대통령이 집권 이후 가장 강력하게 추진했던 재벌개혁의 종언을 알리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후에 또다른 재벌 압박 카드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서만큼은 의구심이 가시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김대중대통령 이외에 어느 누구도 연말 정-재계 간담회에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정부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어렴풋이나마 정책의 방향을 짚어볼 수 있을 듯하다.



“시간표 맞춰 이행하는 문제만 남았다”

집권 초기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한 관계자는 “앞으로는 재벌들이 소유한 금융기관들이 비금융 계열사에 자금지원을 하지 못하도록 ‘방화벽’을 쌓는 데에 중점을 둘 것이다”고 말했다. 재벌소유 금융기관의 여신 운용에 대한 감독의 강도가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제2금융권의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자산운영의 건전성을 높인다’는 ‘5+3’에 명시된 방안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관계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그룹 내의 금융계열사로부터 출자나 지원을 받게 되면 비금융 계열사도 금융건전성 감독과 같은 수준의 감독을 받게 돼 있다”며 금융 기관을 갖고 있는 재벌 계열사들의 자금 독식을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전체적인 틀에서 보자면 ‘5+3’으로 집약할 수 있는 재벌 구조조정 방안으로 ‘나올 수 있는 카드는 다 나온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김우중회장에 대한 사법처리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는 ‘재벌 시스템’ 개혁과는 별개의 문제다.

정-재계 간담회 방식도 지금과 같은 ‘대통령이 재벌총수들과 마주앉아서 밑줄 그어가면서 점검하는’ 방식과는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외부 감시역할을 하는 이상 채권 금융기관만 부르는 방식이나 금감위나 공정위 등 감독 당국자들만 불러서 점검회의를 하는 방식도 있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러한 면에서 보더라도 이제 김대중정부 2년간의 최대 과제였던 재벌개혁의 범위와 속도는 모두 정해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업 경영 투명성 제고

△상호지급보증 해소

△재무구조 획기적 개선

△핵심 역량 강화

△지배주주 및 경영진의 책임 강화 등 재벌개혁 5대 원칙에 따르면 결합재무제표 도입, 상호지급보증 해소 등 구체적 실천 사항들과 관련한 2000년까지의 시간표가 이미 나와 있기 때문이다. 김대통령의 금년 8·15경축사에서 추가된 △기업 지배구조 개선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

△순환출자 및 부당지원행위 금지 등의 3대 원칙도 마찬가지다. 사외이사 비율을 맞추고 출자총액 한도를 부활하는 등의 구체적 실천사항을 2000∼2001년까지 시간표에 맞춰 이행하는 문제만 남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부터 정작 중요한 것은 12월에 예정돼 있는 청와대 간담회가 아니다. 김대중식 재벌개혁이 진입, 퇴출과 관련한 시장 제도를 정비함으로써 시장의 효율성을 증진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21세기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하는 문제로 모아진다.

오너 경영이냐, 전문 경영인 체제냐, 업종 전문화냐, 사업 다각화냐는 논쟁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을 깔고 있다. 물론 김대중식 재벌개혁에서는 오너 경영보다는 전문 경영인 체제를, 사업 다각화보다는 업종 전문화를 ‘정답’으로 채택해 놓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는 ‘도덕적 해이’문제를 수반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최대한 이익을 많이 내려는 오너 체제와는 달리 수익성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최대화할 수 있는 ‘규모 확장’ 쪽으로 기업경영의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른바 ‘대리인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연세대 정구현교수(경영학)는 ‘경제위기와 재벌의 구조조정’이라는 최근 논문에서 “전문 경영인 체제의 맹점을 극복할 만한 안팎의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전문경영인 체제로 대체하려는 것은 경제적-제도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너 경영이냐, 전문 경영 체제냐의 논쟁은 기업 입장에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니다. 어떤 체제를 선택하건 수익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식을 선택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신자유주의 논쟁과도 흡사하다. 김대중식 재벌개혁이 노동계를 비롯한 일부 경제학계에서 ‘신자유주의적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지만 정작 이러한 지적의 대상이 되어온 경제학자나 이론가들은 ‘신자유주의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여왔다. 또 동국대 황태연교수(정치학) 등 일부 이론가들은 DJ노믹스의 사상적 기반이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질서자유주의’ 라고 주장하며 ‘DJ노믹스=신자유주의’를 주장하는 이론가들을 반박하기도 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유승민박사는 “경제학계 일부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신자유주의냐, 국가개입주의냐에 대한 논란은 실용적 관점에서 보면 별 의미가 없다. 우리 경제 현실에 맞는 현명한 방법이 어떤 것인지를 찾아야 한다” 고 주장했다.

비슷한 관점에서 21세기에 한국 경제를 ‘먹여살릴’ 산업에 대한 비전을 세우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들어서야 재벌개혁 이후의 경제나 기업 패러다임에 관한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때늦은 감이 있다는 것이 많은 경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서울시립대 강철규교수(경제학)는 이와 관련해 재벌개혁 이후 정부의 역할을 ‘시장 경쟁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와 특혜를 버리고 정보통신산업 등 새로운 기술과 산업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요약했다. 시장을 바로 세우는 일에는 과거의 규제 논리를 과감히 버리되 새로운 경제 모델을 세우는 일에는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정부가 불필요한 규제에는 적극적으로 나서고 정작 새로운 산업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일은 등한히해 왔던 점을 감안하면 시사하는 바가 큰 지적이다.

부채비율 200%를 달성하는 12월말 김대중식 재벌개혁은 어느 방향으로 핸들을 돌릴 것인가. 한국개발연구원 유승민박사는 “이제는 서로간에 박수를 치고 21세기에 어떻게 세계 중심국가로 성장할 것인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주간동아 212호 (p46~47)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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