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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수능시험 뒷얘기

“튀는 문제…수능이 재미있었네”

‘가상뉴스’ 등 실생활 소재로 한 ‘파격문제’ 급증… “언어영역, 신문 보면 도움될 것”

  •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khmzip@donga.com

“튀는 문제…수능이 재미있었네”



(기자) “곤충 가운데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장수하늘소, 예전에는 북한산과 강원도 산간에서 볼 수 있었지만 최근 10년 동안에는 한번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장수하늘소가 경기도 광릉 숲에서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발견된 장수하늘소는 수컷이 암컷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장수하늘소는 수컷인데도 턱이 거의 없고 크기도 작아 암컷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장수하늘소가 환경파괴로 기형이 됐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11월17일 2000학년도 수학능력시험 1교시 ‘듣기평가’가 진행되고 있는 고사장 여기저기서 ‘쿡쿡’ 웃음소리가 터져나왔다. ‘가상뉴스’를 지문으로 제시하고 ‘뉴스를 전하는 취재기자의 태도’를 묻는 예상 밖의 문제가 나왔기 때문이다.

이어 ‘5번’ 듣기평가도 황당하기는 마찬가지. “얼씨구나 절씨구, 얼씨구나 절씨구, 돈 봐라, 돈 봐라, 잘난 사람도 못난 돈, 못난 사람도 잘난 돈, 맹상군의 수레바쿠처럼 동글동글 생긴 돈…” 판소리 ‘홍 보가’ 중 ‘박타는 대목’을 들려주고 판소리 대목에 나타나는 구성요소(아니리, 추임새, 발림, 북장단 등)를 찾는 문제였다. 이미 지문 속에 ‘답’이 있는 비교적 쉬운 문제였지만 판소리 자체에 익숙지 않은 수험생들은 당황하는 바람에 빤히 보이는 ‘답’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다.

“새 유형에 적응 안돼 고전”



이처럼 이번 수능의 중요한 특징으로 ‘정형화된 시험문제의 틀을 깬’ 파격문제와 실생활을 소재로 한 문제가 늘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2교시 수리탐구I에서 ‘1985년 1MHz이던 컴퓨터 중앙처리속도가 매 3년마다 약 4배의 비율로 빨라지고 있는데 기술적으로 중앙처리장치의 속도 한계를 약 4000MHz라고 했을 때 현재기술이 한계에 도달하는 해’를 묻는 것은 log를 이용한 비교적 평이한 수학문제였는데도 중앙처리속도니 MHz니 하는 전문용어 때문에 어렵다고 느껴졌다. 또 수리탐구II에서 ‘일상생활이나 실험실에서 접할 수 있는 발열과정과 흡열 과정’을 묻는 문제 역시 기존 시험에서는 볼 수 없는 유형이어서 학생들을 당황하게 했으리라는 게 일선 교사들의 설명이다.

여의도 고등학교 방태철교사(화학)는 “차세대 자동차 동력원으로 연구된 수소-산소 연료전지를 예로 들어 화학반응에 대해 묻거나 반도체 초전도체와 같은 신소재, 일상생활에서 흡습제로 흔히 쓰이는 실리카겔이나 카드뮴 화합물 등을 인용한 교과서 밖의 예문들이 매우 신선했다”면서 “그러나 예문에 관계없이 개념만 정확히 알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인데도 새로운 단어들에 학생들이 지레 겁을 먹은 것 같다”고 말한다.

종로학원 노원캠퍼스의 민완기강사(국어)는 “김유정의 ‘동백꽃’을 지문으로 주고 주인공 점순의 심정을 유추해서 가장 유사한 것을 찾으라는 식의 문제를 보면 출제자가 새로운 스타일의 문제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 느껴진다”며 “그러나 학생 입장에서는 내용물이 같아도 포장지를 빨강에서 노랑으로 바꿔놓으면 다른 물건인 것처럼 느껴지듯이 새로운 유형 자체에 적응이 안돼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했다.

이번에 시험을 치른 고3 이모군은 “사생활 보호, 언론 자유에 대한 질문등 교과서에서 직접 찾을 수 없는 개념들이 등장했지만 평소 사회적인 상식을 갖고 있다면 어려울 게 없는 문제”였다고 평하면서도 “평소 모의고사 수준의 정형화된 문제풀이에 익숙해진 친구들이 실수를 많이 한 것 같다”고 전한다. 특히 1교시 언어영역 시간에 시나 소설을 지문으로 한 문제들은 단순히 개념만 묻는 것이 아니라 언어적 센스를 요구하는 경우가 많아 어려움을 겪었고, 반면 나머지 영역은 수탐I의 경우 문제를 풀고서도 30분 가량 시간이 남을 정도로 너무 쉬워 언어영역의 점수가 대학의 당락을 결정할 만큼 중요한 요인이 될 것 같다고 말한다. 결국 이번 수능시험이 언어영역에 뛰어난 학생들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어 영역별 난이도 조절에 문제가 있었다는 불만도 제기됐다.

실제로 평소 모의고사 점수가 390점 이상 나오는 최상위권 학생들 중 상당수가 이번 수능에서 8~10점씩 하락한 것으로 분석되며, 오히려 모의고사 성적은 360~370점대이면서 언어영역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10~20점 이상 대폭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학년도 대입 수능시험 출제위원장인 안희수 서울대사범대교수(지구과학)는 “수학능력시험이 벌써 6년째 치러지다 보니 과거와 다른 새로운 문제를 뽑는 데 한계에 부닥쳤다”며 출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출제본부에 입소하면 열흘만에 문제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79명의 출제위원들이 각자 문제를 만들면 47명의 검토위원들이 기출문제인지, 난이도가 적합한지 여부를 점검하도록 돼 있어요. 그런데 기껏 출제를 해놓고 보면 번번이 기출문제인 경우가 있어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이번에 ‘튀는 문제’들이 많았다는 것은 새로운 유형을 찾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고, 또 전체적으로 출제자들의 연령이 낮았다는 데도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들이 참신하긴 했어도 결코 어려웠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육과정평가원에서 밝힌 대로 수능은 ‘대학에서 수업을 받을 수 있는 평균적인 지식인’을 가려내는 데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이런 수준으로 유지될 것입니다.”

규격화된 입시문제의 틀을 깬 이번 수능시험은 2001년도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들의 공부 패턴에도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민완기강사는 “교육과정평가원은 여러 차례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충분하다고 강조했지만 실제로 이번 시험에선 교과서 밖의 지문이 크게 늘었다”며 “앞으로는 정답을 찾아가는 식의 도식적인 공부가 아니라 다양한 글을 읽고 유추, 추리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또 실생활을 토대로 한 문제들에 대해서는 “언어영역의 경우 지금까지 문학작품 위주로 읽고 공부를 했다면 신문-방송 기사나 서간문 등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글을 실제 쓰면서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원외고 3학년 이범주군은 “그동안 수능과 내신을 구분해서 공부했는데 이제는 내신에 치중하다 보면 자연히 수능 성적이 오를 수 있는 시험유형인 것 같다”고 평가한다. 이군은 또 “일반사회 교과서는 200쪽이 넘는데 핵심개념만 정리해보면 6쪽밖에 안돼요. 나머지는 실례들이죠. 앞으로 바람직한 수능 공부는 교과서가 제시한 핵심개념들을 가지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을 파악해 보는 것인데 학생 혼자서 하기에는 너무 어려워요. 그러니까 수업중에 선생님들이 교과서의 기본 개념과 함께 제공하는 다양한 정보들을 놓치지 말아야 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시험으로서는 이례적으로 ‘재미있었다’는 평을 받은 2000학년도 수학능력평가. 그러나 아무리 재미있고 좋은 문제였다 해도 시험에 대한 불만은 여전하다. “너무 쉬워서 시간을 충분히 준 지능검사에 불과했다”는 지적부터 “입시지옥이라는 사회문제 해결만을 목표로 삼다 보니 학생들의 지적수준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비판까지 수학능력시험을 바라보는 시선이 결코 곱지 않기 때문이다.



주간동아 211호 (p54~55)

김현미/ 동아일보 신동아부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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