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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한국 정치의 세가지 딜레마

  • 이창훈 / 한남대 교수 . 정치학

한국 정치의 세가지 딜레마



현재 정치권의 주요 관심사는 ‘신당’ 창당을 통한 정계개편, ‘언론대책문건’사건의 향배, 그리고 김대중대통령에 대한 ‘빨치산 발언’과 관련한 한나라당 정형근의원의 사법처리 여부 등이다.

김대통령이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을 ‘합당체제’로 유도하고 나아가 지역화합형 전국정당화의 구현이라는 명분 아래 ‘신당’ 창당을 재촉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고육지책의 심정으로 봐야 한다. 과거 김영삼전대통령은 ‘3당합당’후 민자당 안에서 신민주계 형성을 발판으로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집권 초반에는 강력한 정부임을 과시하여 정국을 주도한 반면, 김대통령은 집권 불과 2개월 전에야 ‘DJP연합’을 달성하여 ‘자민련의 발목잡기’를 피할 수 없는, 태생적으로 취약한 정부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역적 한계가 김대중정권의 최대 장애물 중의 하나임을 지적할 수 있다. 지역분할구도가 의연한 한국정치 속에서 정당 구도가 취약한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18세기 후반 영국 사상가 버크의 정의대로, 정당이란 어떤 특정한 주의(主義)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그 주의에 의거하여 공동의 노력으로써 국민적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결합된 단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역대 한국의 정당들은 보편타당성 있는 이념이나 세계관에 입각하고 있지 못하다. 엄격히 말해서 한국정당은 정당이 아니라 붕당에 가깝다. 한국정당에서는 ‘보스’의 숨소리만 듣고도 뜻을 헤아릴 수 있어야 측근이라는 냉소적 유행어가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정치인들의 자질을 생각하면 실로 점입가경이다. 한국정치인들의 각종 선거는 당선 위주일 뿐 이념이나 정책을 구현시키겠다는 정치인들의 의지는 박약하다. 따라서 붕당적 폐쇄성의 위험이 도처에 산재해 있는 것이 한국정치의 첫번째 딜레마다.

18세기 프랑스 왕 루이 14세가 말한 “짐은 곧 국가이다”를 두고 우리는 전근대 정치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루이 14세의 표현은 집권자와 국가기관이 동일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선진정치의 경우, 국가기관은 국민의 복리증진에 기여하여 사랑받지만 전근대정치체제에서 국가기관은 집권자의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 과거 지난했던 군사독재정권의 최대 폐해는 한국정치의 수준을 전근대상태로 묶어 두어 결국 정치가 실종되고 말았던 데 있다.



‘빨치산 발언’은 고질병인 색깔론의 산물

다행히도 군사독재정권을 청산하고 문민정부에 이어 현재 국민의 정부에 이르렀지만 아직은 정치발전이 요원한 단계에 있는 것이 한국정치의 두번째 딜레마다.‘언론대책문건’파문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문건 작성자인 중앙일보 기자가 보인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을 망각한 경솔함도 탓할 것이지만, 문건 파문의 핵심 당사자인 이종찬씨와 정형근의원 모두 자신들의 사회적 이력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국가기관의 중추인 국정원과 그 전신 안기부에서 쌓았다는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로만 볼 수 없고, 한국정치의 현주소를 가르쳐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제는 진부한 표현에 불과하지만, 한반도는 지구상 냉전의 최대 피해 지역임이 틀림없다. 한국전쟁의 와중에는 말할 것도 없으며 그 후에도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남에서는 빨갱이로 몰려 죽고 북에 서는 미재(美帝)의 앞잡이로 몰려 학살당했던가. 한국정치사를 살펴 보면, 김대통령은 냉전적 사고의 가장 큰 희생자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지난 97년 대선에서의 김대통령 당선은, 총칼의 군사정권 아래 집권세력이 정권유지의 수단으로 조직적으로 행해 온 용공음해술책에 대해 국민이 더이상 속지 않는다는 역사적 의의도 담겨 있다. 이것은 분명 한국정치의 큰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정형근 의원이 11월4일 한나라당 부산집회에서 불쑥 제기한 김대통령에 대한 ‘색깔론’발언은 자기모순 속의 시대착오적 구태이기도 하거니와 모진 고문으로 상처입었던 부위를 다시 세차게 내려치는 모습을 연상시켜 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쓰럽게 한다. 크고 작은 음해가 난무하는 것이 한국정치의 세번째 딜레마다.



주간동아 209호 (p104~104)

이창훈 / 한남대 교수 .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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