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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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물 먹은 전투기’ 어떻게 이륙했나

두개 연료통 중 이륙할 땐 동체내 연료통 사용… 이륙 직후 맹물 든 보조연료통으로 전환 ‘참변’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07-02-28 11: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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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월14일 경북 예천 상공에서 추락한 ‘맹물 전투기’ 사고는 왜 일어났는가. 이 사고는 양잿물 관장약 사고와 더불어 원칙이 무시되고 편법이 판을 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국회 국방위는 맹물 전투기사고 조사위원회를 구성할 정도로 이 사건에 많은 관심을 표시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 원인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처음 사고기에 주입된 연료는 95%가 맹물로 알려졌으나 정밀 조사 결과 97%로 밝혀졌다. 97%의 맹물을 실은 전투기의 이륙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사고기는 이륙에 성공했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16전투비행단 소속 김영관대위와 박정수대위가 ‘제공호’로 불리는 KF-5F를 몰고 경북 예천 기지를 이륙한 것은 9월14일 오후 6시41분이었다. 그러나 1분24초 후 좌측엔진이 꺼지고 3분19초 후에는 오른쪽 엔진마저 정지해 추락했다. 추락 과정에서 두 대위는 낙하산으로 비상탈출을 시도했으나, 고도가 불과 240m밖에 되지 않아 김대위는 중상을 입고, 박대위는 목숨을 잃었다.

    맹물 제공호가 이륙할 수 있었던 것은 연료통이 두 개였기 때문이다. 전투기에는 동체 내부에 있는 연료통과 좌우 날개 밑에 매다는 보조연료통 두 가지가 있다. 거대한 폭탄 모양으로 생긴 보조연료통은 장거리 출격을 할 때 단다. 이 경우 전투기는 무거워지므로, 적기의 공격을 받으면 보조연료통을 떨어뜨려 몸집을 가볍게 한 뒤 전투에 돌입한다. 이런 이유로 보조연료통을 달 때는 보조연료통 안의 연료부터 소비한다. 그러나 이륙 순간만은 동체에 담겨 있는 연료를 사용한다.



    지하수맥이 탱크압박 틈새 생겨

    제공호의 동체 안에 있던 연료는 정품이라, 완벽하게 이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륙 1분24초 후 연료 공급을 보조연료통으로 전환하자 맹물이 들어와 추락한 것이다. 제공호 보조연료통으로 주입된 연료는 예천기지 제3번 연료탱크에 있던 것이었다. 이날 3번 연료탱크로부터 연료를 받은 전투기는 8대였으나, 제공호가 추락하는 바람에 나머지는 이륙하지 않아 연쇄 사고를 면할 수 있었다.

    지금도 술자리에서는 “불쌍하다 우리 쫄병, 건빵 도둑놈”을 외치는 ‘야야송’이 불리고 있다. 물론 이 노래는 군수물자 비리가 심했던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맹물 제공호 사고 직후 많은 사람들은 누군가가 3번 탱크에 있던 항공유를 빼돌리고 대신 물을 채워놓은 것은 아닐까 의심했다. 조성태 국방장관도 이러한 의심을 품었다고 한다. 항공유를 빼내 외부에 팔아먹었다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그런 혐의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예천기지 3번 탱크는 6번 탱크에서 연료를 공급받았다. 6번 탱크는 예천기지에서는 가장 큰 5만배럴짜리인데, 지난 9월 6년마다 실시하는 내부 세척을 위해 45일간 3번 탱크를 비롯한 4개 탱크로 기름을 옮겼다. 이 때 6번 탱크에 있던 연료를 마지막으로 옮긴 것이 3번 탱크였다. 이로 인해 6번 탱크 맨 밑바닥에 있던 연료가 3번 탱크로 옮겨지게 되었다.

    문제는 6번 탱크에 있었다. 이 탱크는 81년 8월 한국건업이 산비탈을 깎아 시공한 것인데, 산비탈을 따라 지하수맥이 흐른다는 사실을 모르고 공사하는 바람에 이번 사고를 야기하게 됐다. 한국건업은 45cm 두께로 콘크리트를 치고 그 위에 지름 37.1m, 높이 7.3m 크기의 강철로 된 6번 탱크를 설치했다. 그런데 사고 직후 6번 탱크 내부를 살펴보니 ‘그림’에서처럼 산비탈쪽에 있는 탱크 철판이 지하수맥에 밀려 불뚝하게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높이 6m, 폭 10m에 걸쳐 나타난 배부름 현상은 최고 30cm나 되었다. 45cm 두께의 콘크리트는 방수처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 때문에 지난 18년 동안 산비탈을 따라 흘러내려온 지하수가 45cm 두께의 콘크리트에 스며들어 탱크를 압박했고, 그 과정에서 철판이 안으로 휘는 배부름 현상이 일어났다. 이로 인해 탱크 바닥이 조금씩 찢어져, 세 군데에서 폭 2mm, 길이 30mm의 틈새가 발생했다. 지하수는 이 실낱 같은 틈새를 뚫고 6번 탱크 안으로 스며들어 왔던 것이다.

    6번 탱크 안에 항공유가 가득 차 있을 때는 항공유가 내리누르는 압력 때문에 지하수도 많이 솟아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부 세척을 위해 45일 동안 항공유를 빼내자 지하수의 분출이 많아져, 마지막으로 항공유를 옮긴 3번 탱크로는 최고 97%의 맹물이 전달된 것이다.

    폭 2mm, 길이 30mm에 불과한 틈새로 그렇게 많은 지하수가 들어올 수 있느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사고 한달 뒤, 비워둔 6번 탱크를 열어보자 지하수가 무려 60cm 깊이로 들어차 있었다. 한달반 뒤에는 1m로 늘어나 있었다. 이 정도로 지하수의 압력이 강했기 때문에 강철 탱크는 배부름 현상을 일으켰던 것이다.

    지하 수맥에다 연료 탱크를 건설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는 ‘인재’(人災)다. 하지만 이러한 인재에 대비해 갖가지 안전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는 것이 군대다.

    물과 기름이 혼합되면, 물은 밑으로 내려가고 기름은 그 위에 뜨게 된다. 예천기지에서는 보급대대가 연료탱크를 관리한다. 3번 탱크로 연료를 옮겨 온 뒤 곧 유류 담당 성모 상병이 시료를 채취해 조사하자, 탱크 바닥에 약 500배럴 정도의 물이 있는 것이 밝혀졌다. 보고를 받은 유류중대장 한모 중위는 ‘3번 탱크 연료는 내보내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재빨리 3번 탱크 아래에 있는 ‘드레인’(drain· 배수) 밸브를 열어 물을 빼냈어야 하는데, 이 경우 갑자기 연료량이 줄어들게 된다. 그래서 배수를 차일피일 미루었다.

    그러는 사이 공군 군수사령부에서 검열을 나오자, 성상병은 3번 탱크가 아닌 다른 탱크에서 채취한 샘플을 제시해 ‘합격’ 판정을 받았다. 그런데 이같은 ‘사이비 합격’을 유류통제반장 황모 상사가 사실로 믿고, 유출 지시를 내렸다. 3번탱크에서 연료를 빼낼 때는 바닥에서 20cm 높이에 있는 밸브를 연다. 이 밸브가 항공유가 떠 있는 높이에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필이면 맹물이 차지한 아래쪽에 있었다.

    그리하여 97%가 맹물인 연료가 제공호의 보조연료통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여기서 또 허점이 있었다. 활주로 근처에 계류중인 제공호에 연료를 공급하려면 급유차가 있어야 한다. 3번탱크에서 급유차로 기름을 옮기는 급유 라인에는 물 섞인 연료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급유를 차단하는 ‘수분(水分) 자동차단 밸브’와 물이 섞인 연료를 자동으로 걸러내는 ‘여과기’가 있다. 그러나 수분 자동차단 밸브는 부속품이 없어서, 여과기는 필터를 교체하지 않아서 모두 작동 불능이었다. 도둑이 들려면 개도 짖지 않는다더니 바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한국 공군의 허술함은 보급대대 운영일지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8월30일자와 사고 다음날인 9월15일자 일지를 비교해보면 온도는 언제나 화씨 57도이고 급유차 안에 있는 연료량도 변함없이 3만3000ℓ 였다. 온도는 계속 변하게 마련이고 급유차에 실리는 연료도 매일 변하는데, 일지 작성 병사는 언제나 똑같은 내용을 기록했다. 상급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예천비행단장인 김모 준장은 6번 탱크를 비운 직후인 8월19일 6번 탱크 내부에 균열이 있다는 보고를 올렸으나 공군 군수사령부는 사고가 날 때까지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맹물 전투기 사고는 최고 지휘관에서부터 말단 병사까지 모두가 ‘설렁설렁’ 일하다가 일어난 군기(軍紀) 사고다. 지하수 먹은 공군. 관계 조사관들이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 말 한마디뿐이라고 했다.

    “얼 차려! 공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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