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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필 자서전

‘대박’ 뒤에 ‘대필’ 있었네

잘 나가는 연예인 책 대부분 ‘쓴 사람 따로’… “차라리 양성화하자” 시각도

  •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대박’ 뒤에 ‘대필’ 있었네

‘대박’ 뒤에 ‘대필’ 있었네
최근 방영을 시작한 일일연속극 ‘해뜨고 달뜨고’의 한 장면. 여주인공역의 염정아가 ‘잘 나가는’ 중견 탤런트를 찾아가 꽃다발 공세를 하며 “우리 출판사에서 자서전을 내달라”고 조른다. 처음엔 거절하다 결국 끈질긴 설득에 마음을 돌리는 탤런트. “하지만 나는 바빠서 글쓸 시간이 없는데…”라고 답하자 대뜸 염정아는 “염려 마세요. 우리 좋은 대필작가 많아요”라고 받는다.

화면은 바뀌어 ‘대필 전문 출판사 직원’ 염정아가 이 극의 또다른 주인공 유호정을 만나고 있다. 유호정은 이 출판사에 소설 출간을 의뢰해 놓은 상태. 그런 그녀에게 “소설은 별로이니 대필작가로나 일해보지 않겠는가”고 염정아가 제안한다. 발끈한 유호정은 화를 내며 답한다. “그런 일은 절대 안해요.”

우리 출판계에 ‘대필’이 일반화되었으며,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이 얼마나 냉소적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극중 장면이다.

출판사들 대필전제로 인기인에 접근

언제부턴가 서점가에 깔리기 시작한 ‘자전적 에세이’류의 책들 중 상당수는 본인이 쓰지 않았다는 것이 출판계의 정설이다. 물론 이전에도 ‘저자 이름 따로, 글쓴 사람 따로’인 현상은 늘 있어왔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이 홍보 차원에서, 혹은 돈 많이 번 기업인이 명예욕에서 대필작가를 고용해 책을 펴낸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러나 요즘은 ‘장사가 될 성싶은’ 인물을 출판사가 먼저 찾아가 책을 내자고 제안한다. 물론 대부분 ‘대필‘을 전제로. 특히 방송가에서 ‘떴다’ 싶으면 그 인물은 즉시 출판사의 표적이 된다. 지난 봄 금강산관광길에서 북한에 억류된 민영미씨의 경우 귀환하자마자 수십군데의 출판사에서 “책을 내자”고 제의해 왔고, 한 출판사는 1000만원 대의 인세를 미리 주겠다는 제안까지 내놓았다.

연예인 이야기를 펴내는 대표적인 출판사로 알려진 곳은 중앙M·B. ‘사랑스런 악처 서정희의 작은 반란’, 탤런트 박원숙의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울어’ ‘맘좋은 년은 시애비가 열둘?’, 탤런트 류시원의 요리 무크나 김희선의 패션집 등이 이곳에서 출간됐다. 그러나 그 중 상당수가 대필작가의 손으로 쓰인 것. 특히 수십만부가 팔린 박원숙의 책은 대필작가가 썼다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례이며, 서점계에 ‘대박’을 터뜨린 S씨의 경우도 본인이 쓴 메모를 바탕으로 작가가 재구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그맨 출신 영화제작자 S씨, 개그맨 J씨, 전직 아나운서 J씨 등이 대필로 책을 펴냈고, 성공한 여성들의 자전적 수필을 꾸준히 펴내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는 M출판사도 업계에서는 ‘대필 전문’으로 지목을 받는 곳. 그 외에도 수능시험 화제자나 신인스타들의 ‘나의 이야기’ 식으로 나오는 책의 대부분이 대필자, 즉 고스트 라이터(Ghost Writer)에 의해 쓰인 것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판사는 대필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저자 본인이나 출판사 모두 ‘이미지 관리’에 득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출판사가 ‘몰래’ 대필을 해가며 유명인의 책을 펴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인기있는 사람의 책이 높은 판매고를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웬만큼 글을 써본 사람도 책 한권을 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하물며 바쁘기 그지없는 연예인들이 맛깔스럽게 읽힐 만한 책을 쓴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 이 때문에 대필이 이뤄진다.

출판사들이 기를 쓰고 상업적인 인물의 자서전을 내려고 하는 데는 우리 출판시장의 협소함이라는 구조적 문제도 크게 작용한다. 독서인구가 1억명 정도는 되어야 일본처럼 여러 종류의 책을 소화할 수 있는 독자 스펙트럼이 형성될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 독자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출판의 다양화가 불가능한 것. 그러다 보니 당장 성공할 만한 ‘한 건’을 올리기에 급급한 것이다.

대필 출판을 ‘전문’으로 해오지는 않았지만 회사 형편상 어쩔 수 없이 유명인 대필 작업에 뛰어든 S출판사 편집장은 “팔릴 만한 책을 내려니 어쩔 수 없다. 소문에 의하면 얼마 전 화제를 모은 무용가 모씨의 에세이 역시 대필작가가 써준 것인데, 하도 ‘이야깃거리’가 없어 작가가 많은 부분을 창작했 다고 하더라. 나도 별 수 없이 대필작가에게 똑같은 당부를 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고 고백한다.

‘대필‘로 쓴 책의 출간 과정을 잠시 살펴보자. ‘잘 나가는 연예인’ 책의 경우 거의 100%는 저자가 아닌 출판사의 제의로 출간된다. 대개의 경우는 출간이 결정되면 출판사가 구술자의 캐릭터에 맞는 대필작가를 선정, 하루 정도 만나서 인터뷰한 뒤 샘플 원고를 작성한다. 그 원고의 문체나 내용을 보고 구술자가 OK 하면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간다. 대필자는 많게는 수십차례까지 구술자와 인터뷰를 나누며 녹음한 테이프를 정리해 글을 쓴다. 이렇게 대필해서 받는 보수는 작가의 ‘등급’에 따라 천차만별. 웬만큼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의 경우 200자 원고지 한장당 7000~1만원을 받는다. 대략 책 한권당 800만~1000여만원을 받는 셈이다. 인세는 물론 ‘명목상 저자’, 즉 구술자에게 지급된다. 그러나 이런 정도의 고료는 일부 ‘상한선’ 작가들의 경우이고, 많은 작가들이 그에 한참 못미치는 고료를 받는다. 잡지 자유기고가로 활동하며 단행본 대필도 병행하고 있는 K씨는 “IMF 이전에는 한권당 700~800만원 정도 받았는데, 요즘은 600~700만원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 갑자기 연예가에 화제로 떠오른 어느 가수의 자서전은 400만원만 받고도 글을 쓰겠다는 작가가 나서 ‘덤핑 판매’가 되기도 했다.

공동 필자군을 형성해 일을 수주받는 작가들도 있다. “100% 구술정리는 800만원, 기존 원고나 자료를 재정리하는 작업은 500만원을 달라”는 조건으로 출판사들에 편지를 보낸 ‘○○작가협회’가 그 예다. 간혹 원고는 거의 완성됐는데 구술자 측과 의견이 맞지 않아 계약금을 제대로 못받고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도 생긴다. 명문 정치인 집안 출신의 ‘신세대 무속인’ C씨의 책을 대필했던 R씨의 예가 그렇다. 800만원을 받기로 약속하고 계약금 400만원을 받은 상태에서 원고를 80%쯤 완성했는데, 구술자 C씨가 “집안 이야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불만이고, 문체도 마음에 안든다”며 퇴짜를 놓은 것. 결국 뒷마무리는 다른 작가가 했고, R씨는 나머지 400만원을 받지 못한 채 손을 놓았다.

이런 상황에서 대필작가들의 불만도 만만찮다. 자신의 이름을 책에 넣어줄 것을 몇차례 출판사 측에 요청했다가 거절당한 대필작가 K씨는 “어차피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책을 만들기 위해 대필이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대필을 죄악시하는 것보다 사회적으로 인정해주고, 작가 이름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풍토가 자리잡혔으면 좋겠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그래야 대필작가들도 자기 이름을 내걸고 책임감 있게 글을 쓸 수 있고, 보수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출판계 내부에도 부정적 의견은 많다. 풀빛출판사 온현정편집장은 “남이 대신 글을 써주다 보면 뉘앙스나 의미 전달에서 아무래도 오류가 생기고, ‘의도하지 않았던’ 거짓이 끼여들게 마련이다”고 지적한다. 또한 “이런 책을 군소 출판사도 아닌, 규모가 제법 큰 회사에서 앞장서서 내고 있는 데 대해 출판계에서 볼멘소리가 들리고 있다”고 전한다.

이런 의견에 대한 중앙M·B 최봉수기획위원의 반론도 만만찮다.

“물론 대필했을 경우 그 사실을 떳떳이 밝히고 대필자 이름도 책에 수록하는 게 가장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내 독자들이나 저자들은 ‘대필’ 자체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드러내놓고 밝히지 못했을 뿐, 대필했다는 사실 자체는 크게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차피 독자들은 유명인의 글솜씨를 감상하려는 게 아니라 내용을 읽으려는 목적으로 책을 사기 때문에 누가 대신 써주든 원저자의 생각이 온전히 담길 수만 있다면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과연 독자들은 최씨의 의견처럼 “누가 쓰는지보다는 내용 자체가 중요하다”고 수긍하고 있을까. 대부분 인기인의 책이 본인이 직접 쓴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안 뒤에도 저자의 이름과 내용만 보고 책을 살 것인가. 그 판단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어쨌거나, 독자의 수요가 있는 한 대필로 제작된 인기인들의 책이 앞으로도 계속 출간되리란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대필? NO … “내 책은 내가 씁니다”

이홍렬-김수미-서갑숙-이금희씨 등 … “내 얘길 다른 사람이 어떻게 쓰나”


수년째 인기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는 개그맨 이홍렬씨(사진 위)에게는 ‘책을 펴내자’는 제의가 끊이 지 않지만, 그는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고사한다. ‘도와주는 사람’ 즉 대필자를 붙여주겠다고 제의를 할라치면 그는 정색을 한다. “내 책은 내가 써야 한다”는 게 그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93년 ‘개그나라 사요나라’(자작나무 펴냄)를 펴낸 그는 지금까지도 당시의 원고를 책장에 고스란히 보관하고 있다. “혹시 당신 책도 대필한 것 아니냐?”는 말을 들을 때 “자 봐라, 내가 직접 쓴 거다”고 증명하기 위해서다.

이번에 화제를 불러모은 서갑숙씨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중앙M&B 펴냄) 역시 본인이 직접 쓴 책. 중앙대 연극영화과 시절부터 문학도를 꿈꾸며 문예창작과 학생들과 자주 어울리던 그는 평소에도 틈틈이 글을 써왔고, 그의 글재주를 간파한 한 기자의 제의로 ‘사랑은 없다’라는 글을 ‘문예중앙’에 실은 게 계기가 되어 그 유명한 ‘성담론’이 시작되었다.

본인이 쓴 수필이 아니면 절대 ‘이름만 빌려’ 책을 내지 않는 샘터사에서도 두 사람의 방송인 책을 낸 바 있다. 탤런트 김수미(아래)와 아나운서 이금희가 그들. 김수미씨는 연기자들 사이에서도 글 잘 쓰는 것으로 이름난 이로, 종종 수필을 발표했었다. 김씨의 책 ‘미안하다, 사랑해서’를 펴낼 당시 제작을 담당했던 샘터사 이영희부장은 “맞춤법 교정과 글의 게재 순서를 조절한 것 외엔 일체 가필하지 않았다”고 밝힌다. 이금희씨는 바쁜 방송생활 틈틈이 글을 쓰느라 과로해서 쓰러졌던 에피소드를 책 속에 소개하기도 했다.

대필로 책을 내기로는 연예인 못잖은 이들이 정치인 집단. 특히 요즘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의 자서전이 우후죽순 출간되고 있는데, 그중 시인이기도 한 김영환의원은 본인이 직접 글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간동아 208호 (p80~82)

김정희 기자 y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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