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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근안 사건’ 막전막후

고문 후유증 앓는 ‘경찰 보안국’

박종철 이근안사건 겪은 뒤 위상 약화… 국정원에 차이고 내부선 3D부서 ‘찬밥’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고문 후유증 앓는 ‘경찰 보안국’



지난 10월28일 밤 성남지청으로 자수한 ‘고문기술자’ 이근안씨(62)의 마지막 직책은 경기경찰청 대공 (對共)분실장이었다. 경찰 대공 요원들은 이씨가 하루아침에 대공 수사관에서 수배자로 전락하자 매달 30여만원씩 갹출해, 1년간 이씨 가족을 지원했다고 한다. 경찰 대공은 도대체 어떤 분야이기에 손가락질 받는 이씨에게 그토록 끈끈한 유대감을 보인 것일까.

‘반달곰’ ‘박중령’으로 불렸던 이씨는 좌익사범을 고문하며 “지금은 내가 고문하지만, 민주화가 되면 너희가 나를 고문해라”고 큰소리치며 고문했다고 한다. 한 소식통은 “이씨가 그런 소리를 한 것은 윗 사람의 지시도 있었겠지만 ‘개인 감정이 아니라 나라를 위해 고문한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분석했다. ‘나라를 위한 고문’, 도저히 성립될 수 없을 것 같은 이 방정식이 바로 이씨를 살펴보는 화두(話頭)다.

이 화두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경찰 대공은 이근안과 더불어 오욕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대공국은 90년 보안(保安)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보안국은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4국)-국군 기무사령부 방첩처(3처)와 더불어 간첩과 좌익사범을 잡아들이는 3대 수사 기관이다. 경찰청 대공국이 보안국으로 이름을 바꾼 데는 87년 발생한 서울대생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과 88년 12월 지명수배된 이근안씨 사건이 큰 역할을 했다. 92년 2월 윤석양 이병이 민간인 사찰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보안사가 기무사로 이름이 바뀌었듯, 경찰청 대공국 역시 두 사건을 겪으면서 보안국으로 개명한 것이다.



경찰 업무는 경무-방범-수사 등 일곱가지로 나뉘는데, 이중 가장 비밀스러운 것이 ‘철통 보안’으로 불리는 보안 분야다. 경찰청 보안국이 위치한 경찰청사 11층 복도는 철문으로 가로막혀 있다. 역시 보안을 중시하는 경찰청 정보국이 있는 10층 복도는 경비 경찰관이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데 비해 보안국은 한 술 더 떠서 같은 경찰관조차도 허락 없이는 들어가지 못하도록 철문으로 ‘보안’하고 있는 것이다.

경찰청 보안국은 보안1-2-3-4과로 구성된다. 1과는 총무, 2과는 북한 정보의 수집과 분석을 담당하는 내근 부서이며 3과는 간첩, 4과는 좌익사범을 수사하는 외근 부서다. 그러나 실제 수사에서는 간첩과 좌익사범을 구분하기 어려워 3과와 4과 수사 영역은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3과와 4과는 이목이 번다한 경찰청사가 아닌 바깥에 ‘분실’ 형태로 나가 있다.

박종철군을 물고문으로 숨지게 한 서울 남영동 분실(실제로는 갈월동에 위치)이 바로 경찰청 보안4과였다(당시 이름은 치안본부 대공수사2단 5과 분실). 경찰청 보안 분실은 전국을 무대로 수사한다. 지난 10월16일 한국일보가 특종 보도한 모녀 간첩 사건을 수사한 것은 경찰청 보안3과였다.

지방경찰청에는 보안과나 보안부를 두고 간첩과 좌익사범을 수사한다. 95년 ‘부여간첩’ 김동식을 추적한 것은 서울 옥인동에 나와 있는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분실이었다. 옥인동 분실은 10여년 동안 관리해온 고정간첩을 통해 역공작을 펼쳐 김동식을 검거했다. 97년 울산 부부 간첩 사건을 수사한 것은 경남지방경찰청 보안분실이었다. 이근안씨는 경기지방경찰청 대공분실장을 하다 수배자가 된 경우였다. 보안국 요원들은 아주 끈끈한 인간 관계를 맺고 있다. 회식이나 모임은 자기들끼리만 하고, 타 부서 요 원들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동료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도와준다. 이러한 단결은 권총을 빼들고 간첩을 추적하고, 북한과 좌익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온 데서 생긴 동지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보안은 5공 말까지는 확실히 힘있는 부서였다. 학생 좌익사범이 넘쳐나던 시절이라 대공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대공 수사관들은 열정을 갖고 운동권 학생들과 시국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한 소식통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근안씨 등은 국가를 위해 일한다는 주관적인 애국심으로 좌익사범을 고문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주관적인 애국은 결국 매국이란 사실을 몰랐다”고 분석했다.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은폐 혐의로 박처원 대공담당 5차장이 구속된 뒤 보안국장에는 순수 보안 출신 간부가 취임하는 경우가 사라졌다. 90년대 들어 학생운동이 급격히 퇴조하자 보안4과의 일이 크게 줄어들었다. 여기에 국가보안법 개정이 거론되고 햇볕정책을 내세운 김대중정부가 출범해, 경찰청에 대한 구조조정을 착수하자 일선 경찰서마다 있던 보안과는 정보과와 통합될 정도로 보안이 위축돼 버렸다.

기무사 방첩처는 군을 상대로 수사하나, 경찰청 보안국은 민간을 대상으로 수사한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은 주로 민간을 상대로 수사하나 때로는 군을 무대로 방첩 활동을 벌이기도 한다. 때문에 3개 기관은 수사 과정에서 ‘충돌’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경우가 부여 간첩과 울산 부부간첩 수사다.

두 사건은 경찰청 보안국이 수사한 것인데, 사건 발표는 안기부가 담당했다. 수사관들은 어떤 사건을 수사했는지에 따라 평가받기 때문에, 자기네 수사를 타 기관이 가로채 가는 데 대해서는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경찰 보안 쪽에서는 “목숨을 걸고 간첩을 덮친 것은 경찰인데, 공(功)은 안기부가 채갔다” 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국정원 대공수사국이 경찰 보안국이나 기무사 방첩처 수사에 개입하는 것은 국정원이 두 기관에 공작비를 지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원의 대가로 국정원은 두 기관으로부터 진행중인 사건 수사에 대한 보고를 받는데, 이러한 보고는 때로 긍정적인 결과를 낳기도 한다. 보고를 통해 대공 수사 전체를 파악하게 된 국정원이 중복 수사를 피할 수 있도록 수사 대상을 지정해 줌으로써 대공 수사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경찰 보안은 밖으로는 국정원에 치이고, 안에서는 찬밥 신세로 전락하게 되면서 위세 좋던 ‘철통 보안’은 옛말이 되었다. 경찰 구조조정 속에서 제 ‘밥통’을 간신히 지켜내야 하는 그런 보안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경찰 보안의 위축을 긍정적인 현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보안의 위축은 간첩 검거마저 소홀히 하게 함으로써 자칫 국가 안보를 해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한 소식통은 “주관적인 애국을 기초로 대공 용의자를 가혹하게 고문하는 것도 문제지만, 보안의 지나친 위축 또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인권을 강조하다 보안을 무너뜨려 국가 안보가 흔들린다면 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하는 격이다”고 염려했다. 때문에 뜻 있는 대공 수사 전문가들은 “이근안씨 자수를 경찰 보안의 정도(正道)가 무엇인지, 햇볕정책 시절의 보안이 가야할 길은 무엇인지 모색해보는 좋은 계기로 삼아야 한다” 고 강조한다.



주간동아 208호 (p52~53)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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