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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회장의 ‘변신’

정몽구 ‘홀로서기’ 가능할까

전경련 회장 취임 앞두고 ‘존재 알리기’ 적극적... 재계 ‘MK체제’에 기대 半 걱정 半

  • 이명재 동아일보 정보산업부 기자 e@donga.com

정몽구 ‘홀로서기’ 가능할까



작년 12월 초 서울 계동 현대그룹 사옥 15층에는 수십 명의 내외신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이 날 이곳에서는 정주영명예회장의 동생 정세영회장이 맡아왔던 자동차 부문의 경영권이 정몽구 그룹회장에게 넘어간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열릴 예정이었다.

특히 이 자리에는 평소 기자들과 거의 접촉이 없던 정몽구회장(61)이 직접 참석할 예정이어서 기자들의 관심이 그만큼 높았다. 준비해온 발표문을 읽는 정몽구회장의 얼굴은 적잖이 긴장돼 보였다.

아버지 정주영명예회장을 빼다 박은 듯한 얼굴에다 듬직한 체구. 그러나 기자들과의 공개적인 만남에 영 익숙지 않은 듯 그는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기자회견 내내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까다로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배석한 박세용구조조정본부장(현대상선 회장)이 대신했다.

한국 최대 재벌 회장이면서도 그동안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MK’(정몽구회장의 이니셜)는 이렇게 대중 앞에 본격적인 ‘신고식’을 치렀다.



그리고 1년 뒤. 정회장은 이제 한 그룹의 영역을 벗어나 한국 재계를 이끄는 자리에 오를 채비를 하고 있다. 그는 대우그룹 워크아웃 결정으로 불명예퇴진한 김우중회장의 뒤를 이어 11월4일 전경련 새 회장으로 추대될 예정이다. 처음에는 고사하던 정회장은 “제의가 오면 수락하겠다”는 뜻을 밝힌 상태여서 그의 전경련 회장 취임에는 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전경련 회장직에 오르면 그는 전경련 사상 첫 부자(父子)회장 기록도 세우게 된다. 아버지 정주영명예회장은 80년대에 전경련 회장을 5회 연임하면서 특유의 저돌적인 스타일로 전경련을 이끌었다.

그렇다면 정몽구회장이 이끄는 전경련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재계 주변에선 ‘정몽구 전경련 회장 체제’에 대해 상당히 엇갈린 전망을 내놓고 있다. 그처럼 상이한 관측은 그에 대한 상반된 평가에서 비롯된다.

일부에서는 “MK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하지만 다른 한편에선 “그가 과연 재계를 대표할 정도의 역량이 있는 인물이냐”는 의문도 제기한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점은 그는 전임 김우중회장과는 다른 스타일로 전경련을 이끌 것이라는 점이다. 김우중회장은 전경련 조직을 완전히 장악하면서 재계를 주도적으로 이끌었지만 정회장은 ‘조용한’ 스타일을 선보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런 점에서 그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정회장의 한 측근은 “사실 김우중회장이 회장으로 있으면서 재계에 적잖은 불화를 일으킨 게 사실 아니냐. 정회장 체제에선 최소한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어쨌든 정회장에 대한 재계의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어쩌면 정회장이 아직 ‘검증’이 충분히 안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정회장은 이미 환갑을 넘었다. 재벌가 2세 가운데서도 연장자 축에 드는 적지 않은 나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은 그의 나이를 듣고 “아니 그렇게 나이가 많은가”고 놀라곤 한다. 그만큼 정회장이 아직도 ‘독자적인’ 경영자로서의 이미지를 대중에 심어주지 못했다는 얘기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이미지는 무엇보다 그 스스로가 오랫동안 ‘아버지의 그늘’ 속에 숨어 있었던 탓이덛. 그가 오랫동안 언론과의 접촉을 기피한 것도 “아버지와 삼촌이 계신데, 내가 감히…”라는 심정에서였다. 그동안 공개 행사장에서 아버지가 탄 승용차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는 정회장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심지어 96년 그룹 회장이 되기 전까지는 계동 사옥에 출근할 때 앞문을 놔두고 뒷문 출입을 고집할 정도였다고 한다.

작년 4월 환갑을 맞았을 때도 그는 아무에게도 이를 알리지 않았다. “아버님이 아직 건재하신데 환갑잔치를 치르기가 민망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아버지의 ‘우산’은 그만큼 깊었다.

정회장을 접해본 기자들은 말이 무척 어눌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는다. 그걸 그의 역량이나 자질과 연결지어 우려를 나타내는 기자도 있을 정도다.

그의 측근이나 현대 PR 본부 직원들도 “회장님이 기자들을 만날 때마다 솔직히 무척 긴장된다”고 털어놓는다. 정회장은 기자들의 유도 질문에 익숙지 않아 곧잘 ‘수위’를 넘어서는 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위해 유럽에 출장했을 때도 곤욕을 치렀다. 기아차 세금 문제로 정부를 비판하는 말을 무심코 했다가 한 일간지에 그의 발언이 인용되는 바람에 현대차 홍보실이 밤새 진땀을 흘렸다.

하지만 현대 임원들이 정회장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매우 다르다. 가장 흔히 쓰는 말이 ‘의리와 뚝심, 인정의 사나이’ ‘맏형 같은 오너’‘보스 기질’ 등 찬사 일색의 평가다.

그가 언론과의 접촉을 꺼린 것에 대해서도 다른 이유를 댄다. 지금까지 그가 맡았던 계열사가 현대정공이나 인천제철 등 소비재와는 거리가 먼 중공업 계통이기 때문에 기자들과 만날 이유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

그의 눌변에 대해서 다른 얘기를 하기도 한다. 한 측근의 설명이다.

“회장님이 원고를 읽으면서 하는 연설에 서투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가끔 경영자회의를 해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정회장은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하는 연설은 무척 잘하신다. 상황의 맥도 잘 짚어낸다.”

그의 역량에 우려를 나타내는 시각에 대해 한 계열사 사장은 “정주영회장이 어떤 분인데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가장 애지중지하는 자동차를 맡기셨겠는가”고 반문했다.

정회장의 경영자로서의 역량은 작년 12월 이후 새로 맡은 현대차와 기아자동차의 경영 성과로 평가될 듯하다. 그러나 아직 이에 대한 평가를 내리기는 이른 것 같다. 부실기업이던 기아차의 경영환경이 크게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이는 자동차 경기가 급속히 회복되는 등 외부 환경에 힘입은 바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진정한 평가는 아직 성급하다는 게 중론이다. 특히 내년부터 일본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국내에 상륙하는 등 자동차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지는 상황에서 그가 어떤 경영 능력을 보일지 주목된다.

일부에서는 그가 과도하게 ‘홀로서기’에 집착, 오히려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물량 위주의 자동차 수출에 매달리는 게 대표적인 경우라는 설명이다. 현재와 같은 현대차 품질 수준으로는 이런 수출 방식은 곧 한계에 부닥칠 것이라는 게 자동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그는 작년 말 이후 확실히 달라졌다. 의도적으로 ‘이미지 변신’에 나서고 있다는 인상마저 받는다.

적극적으로 외부 행사에도 나선다. 좀처럼 없던 해외출장도 부쩍 잦아졌다. 해외 모터쇼에 나가 기자들과 즉석에서 문답을 나누는 모습도 자주 보인다. 금융권과 재무구조개선 약정을 맺을 때도 다른 그룹 회장들이 대리인을 내보낸 데 비해 그는 직접 사인을 했다. 이런 적극적인 행동은 본인 스스로가 내려두었던 ‘장막’을 걷고 ‘무대’로 나서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그늘’에서 나와 ‘햇빛’ 가운데 자신의 존재를 분명히 알리겠다는 메시지다.

부지런히 얼굴을 내밀고 마이크 앞에 선 덕분인지 어눌했던 말솜씨도 많이 좋아졌다. “정몽구회장이 이제 서서히 잠재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평가도 들린다.

그러나 과연 정회장이 ‘의리와 인정’만으로 재계를 이끌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 어느 때보다 ‘바람 많은’ 재계를 이끄는 건 그에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도전이 될 것이다.



주간동아 208호 (p42~43)

이명재 동아일보 정보산업부 기자 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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