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커버스토리 | ‘사드’, 그 정치적 도박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韓, 대북압박 최우선 외교의 연장선…美, 한미일 협력 강화로 중국 견제

  • 조숭호 동아일보 기자 shcho@donga.com

    입력2016-07-19 11:5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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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대하는 북한 위협에 대한 미사일 방어태세를 향상하기 위해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와 관련한 공식 협의를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설날 연휴가 한창이던 2월 7일 류제승 국방부 정책실장은 이같이 말했다. “이번 결정은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의 건의에 따라 이뤄졌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미 당국 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논의가 공식화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한국이 사드에 대해 ‘3No(미국에서 요청도, 협의도 없었으며 결론 낸 적도 없다)’ 답변만 2년 넘게 되풀이한 것에 비춰보면 전격적인 전환이었다. 그리고 5개월이 지난 7월 8일 한미 당국은 “사드 체계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사드 협의 공식화를 발표한 날(2월 7일)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6월 22일에는 사거리 3000km가 넘는 무수단 미사일(화성 10호)을 고각(高角)으로 발사해 고도 1413.6km까지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북한의 위협 고조로 인한 사드 배치 불가피’라는 논리를 북한이 제공해준 셈이다. 하지만 중국, 러시아는 한미 양국의 논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미국이 최소 1조5000억 원 넘는 값비싼 사드를 한반도에 갖다놓으려는 배경에는 과연 ‘북한 대응’만 있을까. 한국은 어떤 생각이기에 2년 넘게 끌어온 ‘3No’를 일거에 바꿨을까.



    중국과 남중국해 갈등 빚는 미국 승부수

    웬디 셔먼 전 미 국무부 정무차관은 5월 한 강연에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나오게 하려면 제재 강도가 매우 높아야 한다”며 “사드 체계를 비롯한 미국 미사일방어(MD)나 군사훈련, 인권문제 제기 등을 통해 ‘최후통첩’ 식 압박을 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사드가 배치되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이 덜 먹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사드 배치 결정 이유에 북한 요소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봐야 한다.



    3월 데이비드 만 미 육군 중장은 기자들을 만나 “미 중부사령부의 요청으로 유럽에 사드 포대를 파견하는 문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우주·미사일방어사령부’ 지휘관인 만 중장은 “향후 5년간 9개 사드 포대를 추가로 배치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미 괌에 사드 포대를 운용 중인 미군이 전 세계적으로 사드를 추가 배치할 계획이며 한반도가 이 중 한 곳임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MD를 책임지고 있는 프랭크 로즈 미 국무부 군축담당 차관보도 6월 16일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 강연에서 “MD는 미국 안보 공약의 핵심 요소”라며 “한국과 진행 중인 사드 배치 논의도 MD 협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또 “MD를 따로 떼서 보지 말고 북한 같은 국가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연합 방위 능력의 일부로 봐야 한다. 중국, 러시아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국이 터키에 이어 루마니아, 폴란드로 MD 거점을 확대해가는 상황에서 사드를 MD의 일부로 보라는 설명은 러시아에게 ‘너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나 마찬가지로 들릴 수 있다.

    중국 역시 시진핑 국가주석이 ‘신형대국관계’라는 표현으로 화평공존을 강조했던 2015년과 달리 남중국해 등에서 미국과 갈등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중국을 안방 들여다보듯 샅샅이 볼 수 있는 AN/TPY-2 레이더가 사드 포대와 함께 한국에 배치되면 중국은 안심할 수 없다. 반대로 미국은 원할 경우 이 레이더로 중국 내륙 깊숙이까지 들여다볼 능력을 갖게 된다. 안보부처 실무자는 “중국은 미국을 겨냥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동북 지린성에 두고 있다”며 “미국이 사드 한반도 배치에 열을 올리는 이유에는 이 기지를 염탐할 수 있다는 점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드 배치로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는 점도 중국을 견제하는 데 보탬이 된다. 일본은 이미 AN/TPY-2 레이더 2기가 배치돼 미국 MD에 통합된 상태다.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일본 관방 부장관도 7월 8일 브리핑에서 “양국(한미) 간 사드 협력이 진전되는 것은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일”이라며 “지지한다”고 밝혔다.



    미, 11월 대선 앞두고 결정 서둘러

    미국이 올해 속도를 내는 데는 국내 사정도 영향을 미쳤다. 11월 대통령선거(대선)가 있는 미국 처지에선 행정부가 바뀌기 전 사드 정책을 결정하지 않으면 1년 이상 시간이 지연되는 걸 감수해야 한다. 새 행정부가 들어서면 ‘정책 재점검’에 들어가 주요 의사결정이 사실상 중단되기 때문이다.  

    한국은 왜 2년 넘게 유지해온 ‘3No’를 전격 변경한 걸까. 2012년 10월 한미가 미사일협정 개정을 통해 탄도미사일 사거리를 800km로 늘렸을 때 국방부는 “한국은 미국 주도의 MD에 참여할 계획이 없다. ‘한국형 미사일방어(KAMD)’를 독자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드를 배치하기로 결정함으로써 한국은 사실상 MD에 편입되는 것이나 마찬가지가 됐다. AN/TPY-2 레이더는 MD의 핵심 구성 요소다.

    다시 2월로 돌아가보자. 7일 사드 배치 논의를 시작한다고 밝히고 사흘 뒤 한국 정부는 ‘개성공단 폐쇄’를 결정했다. 남북경협의 상징으로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 때도 운영하던 개성공단을 문 닫겠다고 나선 것이다. 당시 한미는 북한의 4차 핵실험(1월 6일) 이후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협의하고 있던 시점. 미국이 “다른 나라에는 ‘북한과 외화벌이사업 협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면서 한국이 매년 수백억 원씩 현찰을 가져다주는 개성공단을 운영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압박했고 정부는 이를 반박할 논리를 찾지 못했다.

    이번 사드 배치 결정도 비슷한 논리적 구조로 진행됐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한국이 북한의 미사일 위협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대응무기(사드)를 한반도에 안 갖다놓는 게 말이 되느냐”는 미국 측 주장에 할 말이 없어진 것이다. 한국이 ‘대북 압박 최우선 외교’로 기조를 정하면서 스스로를 논리의 함정에 빠뜨린 셈이다. 안보부처 실무자는 “북한 방어 목적만이라면 사드보다 이지스함에 SM-3 미사일을 배치하는 등 대안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더구나 그동안 “사드는 현안이 아니다”라며 ‘3No’ 식으로 대응하다 갑자기 미국 쪽으로 돌아선 이유를 한국은 중·러에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사드는 주변국 외교의 ‘뜨거운 감자’가 돼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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