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7

2016.07.20

사회

아무도 모르는 국가자격증?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실무’ 빠진 실기시험, 합격률 20%대…인지도 낮아 무용지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7-19 09:4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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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생 박모(26) 씨는 취업을 준비하면서 의료관광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의료 한류’가 확산되면서 국내 병원이 해외 환자를 적극 유치하고, 의료관광시장의 규모도 커질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박씨는 의료관광업계에 대해 공부하던 중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알게 됐다. 의료관광 분야에서 유일한 국가자격증이었다. 자격증 준비 학원에 문의하자 학원 측은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이 있으면 취업은 걱정 없다. 수강료 할인 혜택을 줄 테니 어서 등록하라”고 홍보했다. 학원 측이 설명한 자격증 준비 기간은 6개월에서 1년. 박씨는 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할지 고민 중이다.

    의료관광 분야 자격증에 취업준비생들의 눈길이 쏠리고 있다. 정부는 2009년 의료관광을 ‘차세대 신성장동력산업’으로 선정하고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을 신설해 2013년부터 시행해왔다.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는 해외 환자 유치와 관련한 행정업무 전반을 담당하는 인력이다. 한국에 의료관광을 오는 환자의 출입국부터 의료, 관광, 사후관리 등 모든 절차를 도맡기에 폭넓은 지식, 외국어 능력이 필수다.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시험은 보건복지부·문화체육관광부 공동 주관이며 주요 과목은 의학용어를 포함한 보건의료 지식, 관광 행정, 마케팅 등이다. 시험 시행부처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 자격시험에 대해 ‘연간 5000명 이상의 수요를 예상한다’고 설명해놓았다.



    취득 후에도 “의학용어, 외국어 어려워”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 자격증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먼저 응시 기회 자체가 제한돼 있다. 응시 자격은 △4년제 대학 보건의료 또는 관광 분야 학과 졸업자 △2년제(3년제) 전문대 관련 학과 졸업자로 보건의료나 관광 분야 실무경력 2년(1년) 이상인 자 △의사, 간호사, 보건교육사, 관광통역안내사, 컨벤션기획사 등 관련 자격증 취득자만 가능하다. 이들 중에서도 일정 수준의 외국어(영어는 토익 700점 이상 등) 자격증을 제출해야만 시험을 볼 수 있다. 합격률도 낮아서 2013~2015년 필기시험 합격률은 64~68%, 실기시험 합격률은 11~29%에 머문다. 3년 동안 1573명이 응시했지만 최종 합격자는 247명에 그쳤다.

    정부 당국은 “시험이 까다로운 이유는 검증된 전문가에게만 자격증을 수여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는 생명을 다루는 보건의료 분야 전문가다. 따라서 시험 기회를 제한하고 문제 난도도 높게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자격증 보유자 사이에서는 “업계 내에서 자격증 인지도가 낮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2014년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시험에 합격한 이모(32) 씨는 “2년간 공부해 자격증을 땄는데 정작 병원 실무자들은 자격증에 대해 잘 모르더라. 취업 면접을 볼 때 ‘민간자격증과 뭐가 다르냐’는 질문을 여러 번 들었다”고 말했다.  

    ‘이론지식에 치우쳐 실무와 연관성이 적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1년을 준비해 자격증을 따고 지난해 한 종합병원에 입사한 김모(29·여) 씨는 “병원에 입사하자 모든 업무를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했다. 병원마다 마케팅, 행정, 서비스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암기 위주의 지식은 별 도움이 안 됐다”며 “까다로운 성향의 외국인 손님을 대하려면 고급 영어실력이 필요해 입사 후에도 영어학원에 따로 다녔다”고 말했다.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시험은 필기, 실기로 나뉘는데 실기는 의료관광 기획, 실행 등을 필답으로 기술한다. 즉 응시 자격만 충족하면 병원 현장을 경험하지 않고도 자격증을 딸 수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장에서는 자격증보다 실무능력이 훨씬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의료관광 전문가를 양성하는 한 기관의 장모 대표는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필드(현장) 경험이다. 병원 마케팅, 위기 관리, 해외 고객 서비스 지식을 습득하고 인턴십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장 대표는 “모든 업무를 외국어로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딴다고 그만큼 높은 수준의 외국어로 의료관광 업무가 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시험 과목의 비중이 행정, 마케팅에 치우쳐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 시험의 출제 경향을 연구한 이현주 중원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2013년도부터 지금까지 출제된 문제를 보면 보건행정, 마케팅 비중이 높다.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는 환자와 의료진의 의사소통 창구이므로 의학용어 등 전문지식이 매우 중요한데, 시험에서는 의학용어가 필기 100문제 중 20문제에서만 다뤄질 뿐이라 전문성을 검증하기엔 미흡하다”고 분석했다. 



    채용, 승진 보상 적어 ‘허탈’

    마지막으로 ‘취업이나 승진에 큰 특혜를 주지 못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서울 한 대형병원 대외협력팀에서 근무하는 이모(30·여) 씨는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딴 사람은 우리 병원에서 나 혼자다. 중국, 러시아 등 해외 환자가 많이 오는 병원이지만 자격증이 입사에 절대적 도움이 되진 못한 것 같다”며 “‘병원 코디네이터’ 등 한두 달 만에 딸 수 있는 민간자격증으로도 충분히 일반 성형외과의원 등에 취업할 수 있어서 굳이 국가자격증이 필요 없다”고 말했다. 자격증 보유자인 최모(32·여) 씨는 “자격증을 딴 후 월급이 200만 원에서 220만 원으로 조금 올랐다. 국가자격증을 취득하느라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보상이 너무 적다”고 털어놓았다.

    자격증 보유자의 취업 현황도 알 길이 없다. 시험 합격자 수는 집계되지만, 자격 취득 후의 취업 통계는 전무하다. 한국산업인력공단에 따르면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을 법령상 우대하는 분야는 공무원 채용 등에 국한된다. 장 대표는 “민간업계에서도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 자격증 보유자에게 채용 가산점을 준다’는 업체는 많지 않다. 업계에서는 ‘자격증을 보유한 신입사원을 뽑기보다 현장을 잘 아는 경력자를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자격증이 실제 채용으로 연계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단법인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협회 관계자는 “의료기관에서 국가자격증 취득자의 채용 및 연봉체계에 일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기존 취업자도 전문성 제고를 위해 자격증을 취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현주 교수는 “자격증 취득자에 대한 의무고용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원자가 줄어들어 시험 자체가 없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격시험에 ‘실습’이 포함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장 대표는 “현 시험제도에 현장 실습을 추가해야 한다. 병원에서 실무 경험을 쌓게 하고 그 점수를 시험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먼저 국립병원부터 인턴십 시범 시행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국제의료관광코디네이터의 시험 내용이 조정될 계획은 아직 없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시험 합격률이 매우 낮기 때문에 시험과목과 출제 경향은 당분간 유지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도 “시험 자체에 대한 문제점이 공식 접수된 바는 없다. 시행된 지 3년 남짓한 시험이라 아직은 경과를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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