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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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다 살아난 ‘도심복합사업’ 기본설계 들여다보니

[황재성의 부동산 맥락] 정부, 증산4지구 등 서울 시내 6개 선도지구 기본설계 확정 발표

  • 황재성 동아일보 기자

    jsonhng@donga.com

    입력2023-04-09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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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증산4지구 기본설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서울 증산4지구 기본설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도심 역세권이나 노후 준공업지역, 저층 주거지 등을 고밀도로 개발하는 ‘도심 공공주택 복합사업’(이하 도심복합사업)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정부가 3월 27일 서울 시내 6개 도심복합사업 선도지구의 밑그림에 해당하는 기본설계를 확정해 발표했기 때문이다.

    도심복합사업은 지난 문재인 정권이 2021년 2월 발표했던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이하 2·4대책)의 핵심 프로젝트다. 당시 정부는 2025년까지 전국 대도시에 주택 83만6000채를 공급하되 서울(약 32만 채)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만 61만 채를 선보이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도심복합사업을 통해 공급할 주택은 19만6000채(23.4%)로, 수도권·신도시 등 공공택지(26만3000채)와 함께 전체 목표 물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프로젝트

    당시 2·4대책의 성패가 도심복합사업에 달렸다는 평가까지 나왔다. 공공택지는 정부가 목표를 달성할 수단이 많지만, 도심복합사업은 민간 협조를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적잖은 걸림돌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업 기간이 차기 정부로 이월된다는 것은 치명적인 문제였다. 이를 의식한 당시 정부도 2·4 대책 발표 직후인 같은 해 3월 1차 사업지 21곳을 선정한 후 이듬해 1월까지 10개월 동안 8차례에 걸쳐 76곳을 도심복합사업 후보지로 서둘러 선정했다. 또 2021년 12월 서울 증산4구역 등 7곳을 본지구로 첫 지정하고, 두 달 뒤인 이듬해 2월에도 인천 제물포역세권을 본지구로 추가 지정하며 속도를 높였다. 당시 정부는 2022년 1월 이런 과정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통해 “현재까지 전체 공급 목표의 절반 이상을 1년 만에 확보했다”며 “후보지 선정부터 지구 지정까지 4년 이상 단축한 것”이라고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지난해 3월 대선을 통해 정권이 교체되면서 ‘전 정권의 역점 사업들’의 동력은 꺾였고, 도심복합사업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도심복합사업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주택사업자가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방식이어서 민간 주도 공급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국정 기조와 맞지 않았다.

    예상대로 새 정부는 지난해 8월 발표한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이하 8·4대책)을 통해 “기존 도심복합사업 후보지의 경우 원칙적으로 (도심 내 주택의) 신속한 공급과 (정책 중단에 따른) 혼란 방지를 위해 기존 방식을 유지하고, 예정 지구 지정의 후속 조치를 추진해나간다”고 발표했다. 이어 “호응이 낮은 사업장은 (후보지 지정은) 철회하고, 민간사업으로 전환을 적극 지원할 계획”이라며 사실상 사업 축소 방침을 밝혔다.



    이후 지난해 12월 부산 부암지구를 9번째 도심복합사업지구로 지정하고, 9차 후보지 3곳을 추가했다. 하지만 기존 후보지였던 78곳 가운데 주민 동의률이 낮은 21곳을 후보지에서 제외했다. 그 결과 현재 도심복합사업 후보지는 57곳만 남은 상태다.

    6곳 기본설계 확정으로 도심복합사업 탄력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6곳에 대한 기본설계를 확정했다는 것은 지지부진하던 도심복합사업이 다시 힘을 얻게 됐음을 시사하는 셈이다. 박재순 국토교통부(국토부) 공공주택추진단장도 기본설계 확정을 알리는 보도자료를 통해 “앞으로도 주민들이 선호하는 도심의 주거 환경을 개선하고, 양질의 공공주택이 신속하게 공급될 수 있도록 (도심복합사업 관련) 제도개선 같은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럼에도 추진 동력의 강도는 지난 정부와 큰 차이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특히 사업성이 양호한 것으로 평가받는 지역을 후보지로 대거 지정했던 지난 정부와 달리 신규 도심복합사업은 노후 주거지 밀집지역이나 낙후지역 가운데 민간개발이 어려운 지역에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즉 크게 주목받기 어려운 사업지역이 될 확률이 높다. 또 지역주민의 참여를 강화하는 내용으로 ‘공공주택특별법’ 개정안도 국회에 상정돼 있어 법안 통과 시 도심복합사업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복잡한 속내가 뒤얽혔다는 점에서 이번에 정부가 결정한 6개 지구의 기본설계 내용을 꼼꼼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번 기본설계는 현상 공모를 거쳐 선정됐다. 공모는 국토부와 서울시, LH 등의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거주와 비거주의 공존’이나 ‘작고 단일한 도시(Small Compact City)’ 등을 개발 콘셉트로 제시하고, 공개경쟁 프레젠테이션(PT)를 거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대상 지구는 저층 주거지인 은평구 증산4지구(①)와 영등포구 신길2지구(②), 역세권인 은평구 연신내역지구(③), 도봉구 방학역지구(④), 쌍문역 동측지구(⑤), 쌍문역 서측지구(⑥) 등 6곳이다. 모두 2021년 2월 도심복합사업이 도입되고 같은 해 12월 본지구로 지정된 지역들이다.

    증산4지구(①)는 그동안 도심복합사업의 1호 사업지로 손꼽혀온 지역이다. 증산동 168-3번지 일대 16만7300여㎡ 부지에 아파트 등 주택 3500채 안팎을 짓는 방식이다. 전체 개발 규모가 커서 이번 설계 공모에선 2개 블록으로 나뉘어 공모가 진행됐다.

    1블록은 1종 일반주거지역과 3종 일반주거지역이 뒤섞인 곳이다. 이곳에 용적률 300%, 최고 높이 40층을 적용해 주택 2400여 채가 들어선다. 기본설계 당선작을 만든 디에이건축+범도시건축+정목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은 ‘오래된 미래를 담은 시루뫼 마을’을 콘셉트로 제시했다. 시루뫼 마을은 시루처럼 생긴 시루봉 아래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증산동은 이를 한자화한 것이다. 기존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도 사업 대상지가 지역 중심지로 거듭나기 위한 설계를 담고 있다.

    2블록은 준주거지와 3종 일반 주거지역으로 지정된 곳이다. 용적률 500%, 최고 층수 45층을 적용해 주택 1100여 채가 지어진다. 강남건축+재우건축 컨소시엄은 ‘도시와 공존하는 마을’을 목표로 이미 주변에 있는 10층 이상 공동주택 등과 새로 지을 고층 건물이 한데 어우러지는 계획안을 제시했다.

    개발 콘셉트 제시하고 공개경쟁 PT 거쳐

    신길2지구(②)는 신길동 250-136 일대로, 6만여㎡ 부지에 주택 1300여 채가 들어선다. 이곳은 당초 신길뉴타운의 중심부에 위치했지만, 2014년 재개발구역에서 해제된 이후 노후화가 진행되고 있다. 해안건축이 단독으로 설계를 맡아 ‘가고 싶고, 걷고 싶고, 살고 싶은 그린 인프라시티’를 콘셉트로 제시했다. 인근에 지하철역이 없다는 단점을 극복하고자 사업지구 곳곳에 선형(線型)공원이나 학교가는길, 공공보행통로 등을 배치하고, 지역주민이 이용할 도로와 연계된 커뮤니티 시설을 집중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서울 연신내역지구 기본설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서울 연신내역지구 기본설계. [한국토지주택공사 제공]

    연신내역지구(③)는 서울지하철 3호선과 6호선의 환승역인 연신내역 인근에 위치한 불광동 319-1 일대 8100여㎡다. GTX 신설역 등이 예정돼 있어 고밀 개발이 필요한 지역으로, 용적률 650%, 최고 층수 49층 높이를 적용한 주상복합건물과 400채 안팎의 주택이 들어선다. 한결건축+위더스건축+디엔에이엔지니어링 컨소시엄이 설계를 맡았다. ‘삼중의 조화’를 주제로 역세권 공공주택 복합단지이자 인접한 저층 주거지와 공존하는 형태로 조성된다.

    방학역지구(④)는 도봉동 622-6 일대 8400여㎡ 부지로, 서울지하철 1호선 방학역 역세권이자 도봉중과 붙어 있다. 준주거지역인 이곳에 용적률 600%, 최고 층수 39층 높이의 주상복합건물이 지어지고 주택 400여 채가 공급된다. 금성건축+어반인사이트+보통과이상 컨소시엄이 ‘주변 동네 흐름을 연결하는 마을풍경’을 개발 콘셉트로 제시했다. 도봉산, 수락산, 북한산 등에 둘러싸이고, 도봉로와 방학역의 중심 사업가와 붙어 있는 지역적 특성을 살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서울지하철 4호선 쌍문역 역세권은 동쪽과 서쪽이 한꺼번에 개발된다. 다만 행정구역이 나뉘어 있어 개발은 별도로 진행되지만 양쪽의 연속성을 고려한 단지와 도로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쌍문역 동측지구(⑤)는 도봉구 창동 663-2 일대 1만5800여㎡ 부지다. 준주거지역과 1종 일반주거지역이 뒤섞인 곳으로 용적률 500%에 최고 층수 39층을 적용해 주택 600여 채가 들어선다. 기본설계 당선작을 낸 이어담건축+우재건축+도시건축이음 컨소시엄은 ‘새로운 도시를 향한 움직임’을 콘셉트로 제시했다.

    쌍문역 서측지구(⑥)는 도봉구 쌍문동 138-1 일대 4만1100여㎡ 규모의 준주거지역이다. 용적률 450%, 최고 층수 45층을 적용한 주상복합건물에 주택 1000여 채가 조성된다. 유선엔지니어링이 단독으로 설계를 맡아 보행권을 보장하는 ‘다층적 가로 네트워크’를 기본설계 목표로 내세웠다.

    국토부는 이번 기본설계 확정으로 지구별 특색을 살리면서도 편리하고 쾌적한 정주(定住) 환경을 갖춘 도심 내 주택 공급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 6개 선도지구에 대해서는 주민 의견을 반영한 시공사 선정과 사업계획승인 신청이 이뤄질 수 있도록 사업계획승인권자인 서울시, 사업자인 LH와 적극 협력해나갈 방침이다.

    다만 1호 사업지로 꼽히는 증산4구역 기본설계에 대해 지역주민협의체가 3월 29일 ‘수용불가’라는 입장을 내놔 사업 추진에 난항도 예상된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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