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간동아 로고

  • Magazine dongA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英 왕가 로맨스의 상징, 다이아몬드 팔찌 [명품의 주인공]

  • 민은미 주얼리 콘텐트 크리에이터 mia.min1230@gmail.com

英 왕가 로맨스의 상징, 다이아몬드 팔찌 [명품의 주인공]

플라밍고 브로치를 착용한 윈저 공작부인.

플라밍고 브로치를 착용한 윈저 공작부인.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국왕으로서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1936년 12월 11일 대영제국의 왕 에드워드 8세(재위 1936년 1~12월)가 BBC 라디오 방송을 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결단을 발표했다. 발표 내용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기 위해 왕좌를 버리고, 동생 요크 공에게 양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형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한 조지 6세는 영화 ‘킹스 스피치’의 실제 주인공이다.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왕좌를 박차고 나온 역사적인 이 사건을 어떤 이들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러브스토리라고 말한다. 대영제국 국왕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여인은 누굴까. 그녀는 미국인인 윌리스 심프슨(Wallis Simpson, 1896~1986년)으로, 두 번의 이혼 경력까지 있었다.

왕좌를 버리고 사랑을 택한 왕

윌리스 심프슨은 영국인 사업가 남편과 재혼해 런던에 정착했다. 침착하고 지적이며 세련된 감각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남편의 재력을 바탕으로 단숨에 런던 사교계의 별로 떠올랐다. 1931년의 어느 날 한 파티에서 그녀는 대영제국의 왕세자 데이비드(훗날 에드워드 8세)를 만난다. 푸른색 드레스를 우아하게 차려입은 35세의 심프슨은 왕세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결국 둘은 1937년 6월 3일 프랑스에서 세기의 결혼식을 올렸다. 그러나 하객이 16명뿐인 쓸쓸한 결혼식이었다. 신랑 측 가족은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 결혼 후 남동생 조지 6세로부터 공작 작위를 받았을 뿐이다. 신부는 결혼의 상징인 순백색 드레스 대신 영국 왕실의 배척에 반항이라도 하듯 푸른색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에드워드 8세와의 첫 만남을 기념하는 색이자 영원한 사랑의 상징색이었다.



결혼식 자체는 초라했지만 심프슨(이하 윈저 공작부인)의 푸른색 웨딩드레스 때문에 결혼식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녀가 입은 드레스의 푸른색은 ‘심프슨 블루’로 불리게 됐다. 심프슨 블루는 귀족과 왕족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서민을 의미하는 색으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심프슨 블루’와 로맨스를 간직한 주얼리

윈저 공작부인은 비록 공식적으로 왕비도, 공작부인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에드워드 8세(이하 윈저 공)와 결혼으로 그녀는 신분 상승 이상의 명성을 얻었다. 결혼 후 프랑스에 정착한 윈저 공과 윈저 공작부인은 공작 부부로서 유럽 여러 국가를 방문하고 수많은 파티와 공식, 비공식 행사에 참여했다.

윈저 공이 아내에게 선물한 수많은 보석과 주얼리도 그들의 러브스토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윈저 공은 화려한 보석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증명이라도 하듯, 왕위를 버리고 선택한 아내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게 장식한 여성’이 되길 바랐다고 한다. 그들은 특히 파리의 최고 하이 주얼리 하우스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특히 까르띠에와 인연이 돈독했다.

윈저 공은 웨딩 링으로 까르띠에의 플래티넘 웨딩 밴드를 교환했다. 주얼리에 특별한 메시지를 새겨 선물하거나 까르띠에에 특별히 주문해 그들만의 프라이빗 주얼리 컬렉션을 만들어갔다. 특히 월리스(Wallis)와 에드워드(Edward)의 이니셜이기도 한, ‘우리’를 뜻하는 ‘W.E.’는 이 부부의 상징이 됐다. 주얼리에 각인을 하는 것은 원래 영국 왕실의 전통이었다고 하는데, 대담하고 화려한 주얼리에 새겨진 둘만의 감성적인 스토리는 보석의 가치를 더 높였다.

그녀가 소유했던 주얼리 컬렉션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컬렉션으로 평가될 만큼 아직도 걸작으로 남아 있다. 윈저 공작부인의 주얼리 컬렉션 중에서는 단연 다채로운 유색 보석이 돋보인다. 그녀는 특히 사파이어 같은 파란색 보석에 애착을 보였다. 웨딩드레스 코드와 일치하는 색이기도 하다. 세계 최고 주얼러 까르띠에가 윈저 공작부인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Special Order)한 대표작을 소개한다.

까르띠에 십자가 참 브레이슬릿

십자가 참 브레이슬릿. [소더비 홈페이지]

십자가 참 브레이슬릿. [소더비 홈페이지]

윈저 공작부인이 가장 애용한 것으로 알려진 다이아몬드 팔찌다. 결혼식 날 푸른색 드레스에 착용한 팔찌이기도 하다. 보석이 박힌 십자가 9개가 연결돼 있고, 각 십자가에는 사파이어, 루비, 다이아몬드, 아쿠아마린 등이 세팅돼 있다. 그녀는 팔찌를 가리지 않기 위해 옷소매를 짧게 줄일 정도로 팔찌를 좋아했다.

9개의 십자가 참에는 1934년부터 1944년까지 특별한 기념일이 각인돼 있고, 문구도 적혀 있다. 가령 파란색 아쿠아마린이 세팅된 십자가에는 ‘God save the King for Wallis. 16.VII. 36.’이라고 각인돼 있다. ‘신이 월리스를 위해 왕을 구하셨다’라는 뜻인데, 1936년 7월 16일 윈저 공에 대한 암살 기도 사건을 뜻한다. 파란색 사파이어가 세팅된 십자가에는 ‘Wallis-David 23-6-35.’가 각인돼 있다. 1935년 윈저 공의 40번째 생일(6월 23일)을 기념한 것이다. 10여 년간 특별한 날마다 하나씩 윈저 공이 선물해 9개의 참 팔찌로 완성했다고 한다.

까르띠에 플라밍고 브로치

플라밍고 브로치.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플라밍고 브로치.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까르띠에 파리 아틀리에(공방)에서 1940년 스페셜 오더로 만든 대담한 크기의 브로치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윈저 공 부부의 주얼리에 대한 빼어난 안목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플라밍고에 루비, 에메랄드, 사파이어가 날개 부분에 화려하게 장식돼 있다. 원석은 대부분 윈저 공 부부가 까르띠에에 공수해준 것이라고 한다. 부리와 눈, 날개 끝부분에 장식된 파란색 사파이어가 인상적이다. 플라밍고 브로치는 2016년 6월 까르띠에 메종 청담 오픈을 기념해 메종 청담에서 열린 ‘왕의 보석상, 보석상의 왕’ 전시회에 진열돼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까르띠에 팬더 브로치

팬더 브로치, 1948년(왼쪽). 팬더 브로치, 1949년. [Archives Cartier © Cartier,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팬더 브로치, 1948년(왼쪽). 팬더 브로치, 1949년. [Archives Cartier © Cartier, Vincent Wulveryck, Collection Cartier © Cartier]

당대 가장 우아한 여성 가운데 한 명으로 손꼽힌 윈저 공작부인은 1948년 최초로 등장한 팬더 모티프 에메랄드 브로치를 착용해 팬더 컬렉션을 크게 유행시켰다. 116캐럿 에메랄드 카보숑 위에 위엄 있는 자태를 선보이는 사실적인 모습의 팬더가 장식된 브로치다. 이는 윈저 공이 까르띠에 하이 주얼리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인 쟌느 투상에게 자신의 아내를 위한 선물로 팬더 브로치를 요청해 스페셜 오더로 제작된 것이었다. 이듬해인 1949년에는 사파이어가 장식된 팬더 브로치를 판매용으로 제작했는데 이 역시 윈저 공작부인이 구입해 소장했다.

까르띠에 빕 네클리스

까르띠에 빕 네클리스.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까르띠에 빕 네클리스. [Nils Herrmann, Collection Cartier © Cartier]

1947년 스페셜 오더로 만든 빕 네클리스는 트위스트 골드에 아메시스트, 튀르쿠아즈, 다이아몬드가 장식돼 있다. 까르띠에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목걸이는 보라색 아메시스트와 튀르쿠아즈의 파란색이 어우러져 이국적이면서도 절묘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윈저 공작부인은 1953년 6월 파리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무도회에 오픈 숄더 드레스를 입고 빕 네클리스를 착용한 채 참석해 이목을 집중케 했다. 

1972년 윈저 공이 프랑스에서 먼저 숨을 거두자 윈저 공작부인은 검은색 상복에 심프슨 블루의 숄을 걸치고 장례식장에 나와 다시 한 번 그들의 로맨스를 상기시켰다. 사랑을 택해 왕실 밖으로 내쫓겼던 에드워드 8세는 윈저 성내에 묻히는 것을 허락받아 사후에 영국 왕실로 돌아왔다. 14년 후인 1986년 90세에 숨을 거둔 윈저 공작부인도 남편 곁에 나란히 묻힐 수 있었다. 윈저 공작부인의 마지막 유언은 심프슨 블루의 옷으로 갈아입혀 달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윈저 공작부인의 독보적인 주얼리 컬렉션은 경매시장에서도 끊임없이 화제를 모았다. 2010년 11월 런던 소더비에서 그녀의 사후에 열린 주얼리 컬렉션 경매에서 20여 점의 낙찰가가 800만 파운드에 이르렀다. 

에드워드 8세와 윈저 공작부인. 세기의 로맨스 주인공들은 심프슨 블루와 함께 무덤에 묻혔지만 그들의 뜨거웠던 사랑은 주얼리 컬렉션에 그대로 각인돼 지금도 빛나고 있다. 주얼리가 가진 마법의 힘이 아닐까.





주간동아 1260호 (p42~45)

민은미 주얼리 콘텐트 크리에이터 mia.min1230@gmail.com
다른호 더보기 목록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