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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끌’ 주택 매수자의 항변, “청약 바늘구멍에다 1년 미루면 2억 손해 현실 외면” [사바나]

  •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영끌’ 주택 매수자의 항변, “청약 바늘구멍에다 1년 미루면 2억 손해 현실 외면” [사바나]

  • ●영끌 매수자들 “현실 모르면서 약 올리지 말라”고 김현미 장관에 분개
    ●“기다릴수록 손해인데다 가족 6인+무주택 8년 맞춘 뒤에도 청약 바늘구멍”
*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의 준말로 ‘밀레니얼 플레이풀 플랫폼’입니다. 한마디로 2030 놀이터입니다.

경기 하남시 아파트 단지. [동아DB]

경기 하남시 아파트 단지. [동아DB]

김현미 국토교통부(국토부) 장관이 30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돈을 마련했다는 뜻) 주택 매수자들을 겨냥한 발언을 했다가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김 장관은 8월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이하 국토위 회의)에서 “최근 법인과 다주택자 등이 보유한 주택 매물이 많이 거래됐는데, 이 물건을 30대가 ‘영끌’로 받아주는 양상”이라며 “법인 등이 내놓은 것을 30대가 영끌해 샀다는 데 대해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8월 31일 열린 국토위 회의에서는 “정책 실패를 왜 청년에게 떠넘기느냐. 30대 부동산 영끌 발언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미래통합당 김은혜 의원의 질의에 “말씀이 이해가 잘 안 된다”고 답해 또다시 젊은이들을 공분케 했다. 김 장관은 “영끌로 집값이 비쌀 때 사는 것보다 앞으로 나올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을 기다렸다 매수하는 게 좋다”고 말하기도 했다.

“정부 말 믿고 기다리다 낭패 봤다”

김 장관의 발언에 30대 영끌 매수자들은 “현실을 전혀 모르는 소리”라고 입을 모은다. 경기 용인시에 사는 직장인 윤모(33·여) 씨는 “김 장관의 ‘안타깝다’는 발언에 화가 났다. 지금 집값이 떨어지는데 왜 고점 매수하는 멍청한 짓을 했냐고 약을 올리는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윤씨가 분개하는 데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윤씨는 2년 뒤 근무지가 용인시에서 하남시로 바뀔 예정이어서 그때까지는 집을 사지 않고 기다릴 계획이었다. ‘집값이 곧 떨어질 것’이라는 정부 발표를 철석같이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해 봐둔 하남시 아파트가 1년도 안 돼 8억 원에서 10억5000만 원으로 2억5000만 원이 올랐다. 무턱대고 기다렸다간 2년 뒤 이 집을 살 엄두도 낼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몰려왔다. 결혼 3년 차이고 아이도 없어 청약 당첨도 불가능했다. 

윤씨는 결국 남편과 상의해 7월 중순 미리 봐둔 하남시 아파트를 전세 6억2000만 원을 끼고 매입했다. 처음엔 차액 4억3000만 원 중 일부라도 주택담보대출로 마련하려 했으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전세가가 주택담보대출비율(LTV)보다 많아 담보 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얘기를 은행에서 들었던 것. 하남시와 같은 투기과열지구의 LTV는 시가 9억 원 이하 주택은 40%, 9억 원 초과 15억 원 미만은 20%를 적용받는다. 

윤씨 부부는 차액 4억3000만 원을 만들기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신용대출과 청약저축, 연금저축에서 대출 가능한 액수만큼 최대로 빌려 1억2000만 원을 마련하고, 양가에서 각각 5000만 원씩 증여받은 1억 원, 그동안 저축해둔 돈 2억1000만 원까지 탈탈 털어 보탰다. 부모는 자녀 1인에게 5000만 원까지 비과세로 증여할 수 있다. 



“영끌로라도 집을 마련해 안심되느냐”고 묻자 윤씨는 이내 표정이 어두워졌다. 

“한편으론 불안해요. 지금은 은행 금리가 낮지만 2년 뒤에도 이 상태를 유지할지 장담할 수 없고, 법이 자주 바뀌니까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윤씨는 “공급이 충분하다, 집값이 안정되고 있다는 식으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정부의 말을 믿고 지난해 집을 사지 않은 게 후회된다”며 “무분별하게 쏟아낸 부동산대책으로 집값이 가파르게 오른 후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여전히 서울과 신도시 공급 물량이 나올 때까지 매수를 기다리라는 건 무주택자를 무시하는 말”이라고 날을 세웠다. 또 정부가 대규모 공급 계획을 밝힌 수도권 공공주택 입주를 한 번도 고려한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윤씨는 “투기가 목적이 아니기에 적어도 10년은 살 생각을 하고 집을 골랐다”며 “입지 조건과 주변 환경, 인테리어 등을 무시하고 단순히 싸기 때문에 공공주택에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8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입사 7년 차인 회사원 강모(36) 씨도 “집값이 떨어질 테니 기다리라는 국토부 장관의 얘기는 희망고문일 뿐”이라며 자신의 영끌 체험담을 들려줬다. 강씨는 지난 3년간 서울에서 분양하는 신규 아파트 일반물량에 줄기차게 청약을 넣었지만 번번이 떨어졌다. 청약 가점이 낮아 당첨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사이 집값이 폭등한 것은 물론이고, 전세도 귀해져 서울에서 살기가 어려워졌다. 하는 수 없이 그는 7월 중순 이른바 ‘영끌’로 서울 강북구 아파트를 전세(보증금 5억 원)를 끼고 7억5000만 원에 매입했다. 전세로 들어온 세입자는 그와 결혼을 약속한 예비신부 김모 씨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결혼식을 미룬 두 사람은 김씨가 받은 전세자금대출로 4억 원을 충당하고 강씨가 살던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 전세 보증금 2억 원, 김씨와 함께 신용대출로 마련한 1억 원, 강씨가 어머니로부터 증여받은 5000만 원을 합쳐 주택 구입비를 마련했다. 

강씨는 “당첨 확률이 낮은 청약에 기대기보다 더 오르기 전 집을 사두는 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어 특단의 방법을 택했다”며 “결혼하더라도 당분간은 혼인신고를 미룰 수밖에 없지만 후회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지난해 1월 결혼해 서울 강서구에 신혼살림을 차린 회사원 박모(34) 씨는 내년 1월 전세 만기를 앞두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아이가 생겨 30평형대 전세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인데, 아이를 키우기 좋은 대단지 전세 가격이 지난해보다 1억~2억 원 오르고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도 까다로워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세전 부부 합산 연소득이 6000만 원 이하여야 전세자금대출을 받기가 쉬운데, 우리 부부의 연소득은 세전 기준으로 1억 원을 넘어 대출 가능한 액수가 최대 2억 원 정도”라며 “전세가가 하도 많이 올라 이제는 서울에서 집을 구하긴 틀렸다”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친구들이 지난해 초 신혼집을 얻을 때 전세 말고 매입을 알아보라고 조언했는데 그땐 그걸 고려하지 않았다”며 “진즉에 영끌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된다”고 털어 놓았다.

“청약보다 영끌이 낫다, 오늘이 최저가”

한국감정원 통계에 따르면 7월 한 달 동안 30대가 서울에서 사들인 아파트는 5345가구다. 이는 7월 주택 매매량(1만6002가구)의 33.4%에 달한다. 30대의 주택 매입 비중이 관련 통계를 발표하기 시작한 지난해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30대 실수요자들이 영끌로 집을 사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분석됐다. 신규 주택 공급량이 적고, 지난 3년간 집값이 급등했으며, 청약 당첨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이다. 

한국감정원 청약홈 조사에 따르면 7~8월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이들의 최저 청약 가점은 평균 60.6점으로 집계됐다. 올해 상반기 평균 최저 가점인 55.9점보다 4.7점 높아진 수치다. 30대 가장이 이 정도 점수를 얻으려면 본인과 배우자를 포함한 부양가족 수가 6명 이상이어야 하고, 무주택 기간이 8~9년은 돼야 하며, 청약통장 가입 기간도 5년 이상이어야 한다. 이 조건을 맞추더라도 경쟁률을 뚫기란 쉽지 않다. 청약홈에 따르면 반기별 서울 시내 분양 아파트 1순위 청약 경쟁률은 지난해 하반기 44.2 대 1에서 올해 상반기 75.6 대 1로 올라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부동산 정보업체 리얼투데이의 자료를 보면 7~8월 서울 시내에서 일반분양한 아파트의 평균 청약 경쟁률도 총 3922가구에 24만9646명이 몰려 63.7 대 1을 나타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부가 약속한 서울과 수도권 신도시의 대규모 공급 물량도 코로나19 사태로 공사가 지연되는 등 계획에 차질을 빚고 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정부 관계자나 정치인들은 30대의 영끌 매수를 탓할 게 아니라 정책 실패를 먼저 반성해야 한다”고 꼬집는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영끌 매수는 정부가 지난 3년간 23회에 걸쳐 내놓은 부동산대책이 시장에서 가시적 효과로 나타나지 않고 집값이 더 치솟자 심리적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 30대 실수요자들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길”이라고 분석했다. 또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대도시 신규 공급 물량을 늘리고, 신혼부부나 무주택자가 집을 마련할 수 있도록 대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놓은 정책의 문제점을 열린 마음으로 들여다보고, 전문가 집단과 충분한 검증 절차를 거쳐 부작용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해야만 부동산시장 안정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였다.





주간동아 1255호 (p36~39)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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