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52

2020.08.14

진중권, “역사전쟁에서 보수가 이기는 길, 민초들 헌신 속에서 찾아야” [진중권의 직설-11]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0-08-11 17: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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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주간동아’는 진보논객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한국 정치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담긴 기고문을 매주 화요일 오후, 온라인을 통해 공개한다. <편집자 주>

    얼마 전 통합당 정경희 의원이 의원회관이 ‘대한민국 나라 만들기 1919~1948’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었다. 몇 년 전 뉴라이트가 촉발시킨 건국절 논쟁을 재점화하려고 한 것이다. 이 자리에는 ‘극우’로 분류될 만한 인사들이 다수 참석해 차마 들어주기 힘든 말의 성찬을 펼쳤다. 다행히 미래통합당에서는 이 퇴행적 움직임에 선을 그었다. 김병민 정강정책 TF 위원장은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며, 당 일각의 이런 움직임이 통합당의 공식적 입장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역사전쟁의 전사

    역사전쟁의 포문을 연 것은 원래 김무성 전 의원이었다.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로 여겨지던 2013년 8월 그가 개설한 ‘근현대사 연구교실’에는 의원 100명과 원외 당협위원장 19명이 참여했다. 이 모임은 단번에 새누리당의 최대계파로 떠올랐다. 그 자리에서 김무성 의원은 “좌파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야 한다”며 선전포고를 했다. 좌파들이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못난 역사로 비하”해 왔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를 반성하자는 주장을 ‘자학사관’이라 비난해온 일본우익의 논리를 빼닮았다. 마침 2차 아베 정권의 출범으로 일본의 우경화가 본격화하는 시점이기도 했다. 

    같은 해 11월 김무성 의원은 “대한민국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역사교과서를 국정으로 전환하자고 제의한다. 이 제안은 곧 박근혜 정권의 정책이 되어, 2014년 교학사 교과서가 출간된다. 하지만 이를 교과서로 쓰겠다고 한 학교는 전국에서 15교에 불과했고, 그나마 학생과 학부모, 지역 시민단체들의 항의로 줄줄이 채택을 철회하게 된다. 마지막 남은 경산 문명고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연구학교 지정이 취소된다. 역사전쟁은 우익의 처참한 패배로 끝났다. 자기들이 정권을 잡고 있던 시절에도 실패한 시도를 왜 이 시점에 다시 꺼내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무대는 민간으로 옮겨졌다. 최근 이영훈 교수가 쓴 ‘반일종족주의’가 한일 외교갈등을 배경으로 10만 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른바 ‘식민지근대화론’의 주창자인 저자는 당연히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를 향한 한국인의 반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한일간 갈등의 원인을 한국인에게로, 즉 저 멀리 샤머니즘 신앙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한국인의 문화적 DNA 탓으로 돌린다. 이 논리 역시 그 원형은 일본의 우익의 것이다. 현재 ‘반일종족주의’는 일본 사회에서 주로 한국인에 대한 인종적 편견을 강화하는 데에 활용되고 있다.



    민족사관과 식민사관

    이영훈 교수가 속한 ‘낙성대연구소’는 안병직 교수가 만든 것이다. 안 교수는 ‘식민지하에서 자본주의의 발전은 불가능하다’는 ‘식민지 반봉건사회론’의 주창자였다(이 이론의 실천적 결론은 물론 반미자주화 투쟁이다). 하지만 일제의 식민지 조선에도 자본주의의 발전은 있었고, 미제의 식민지 남한에서도 자본주의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 명백한 사실 앞에서 그의 이론은 무너지고 만다. 이 경우 그냥 ‘식민지하에서도 자본주의적 발전은 가능하다’고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그는 반대의 극으로 달려가 ‘식민지였기 때문에 자본주의적 발전이 가능했다’고 말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근대적 기술과 자본이 들어왔는데 식민지 사회라고 발전을 못 할 리는 없다. 하지만 민족주의 이념에 사로잡힌 이들은 (초기의 안병직처럼) 일본과 미국이 발전을 저해하여 한국이 반봉건 사회에 머물러 있다는 비현실적 인식을 갖고 있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의 맹점을 파고든다. 그들은 일제강점기에도 생산성 향상과 인구증가 등 발전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여러 자료로 ‘실증’한 후, 거기서 이상한 결론으로 비약한다. ‘일본이 식민지배를 통해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그러니 이를 인정하고 감사하라는 것이다. 

    민족주의 사관은 학문을 이념에 종속시졌다. 하지만 그 대안이 ‘식민지근대화론’일 수는 없다.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조선의 봉건적 생산력과 일제 하의 근대적 생산력을 비교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그 비교가 온당하려면, 독립국 조선의 근대화와 식민지 조선의 근대화를 비교해야 할 게다. 하지만 전자는 오직 ‘가정’으로만 존재하기에 이 비교는 실증이 불가능하다. 실증주의자들에게 실증할 수 없는 것은 곧 존재하지 않는 것.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이 종종 일본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축복이었다는 극단적 주장으로 치닫는 것은 이와 관련이 있다.

    재판 해방전후사

    학문에서 ‘실증’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실증주의’(positivism)는 그 자체가 민족주의 못지않은 이데올로기다. 이는 이영훈 교수가 ‘이승만학당’을 이끄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민족주의자들의 인식이 친일파가 득세하던 해방전후사에 고착돼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는 이영훈 교수의 시각 역시 여전히 이승만이 단독정부를 수립하던 그 시절에 가 있다. 민족사관이나 식민사관이나 실은 오래전에 그 역사적 타당성을 잃은 두 개의 극단적 주장에 불과하다. ‘종북좌파’와 ‘토착왜구’의 두 패로 나뉘어 서로 요란하게 싸우는 것은 사실 여야 양쪽의 소수 극단적 지지층뿐이다. 

    NL 운동권의 소수 극단적 분파를 제외하고, 오늘날 ‘민족적 정통성이 북한에 있다’거나, ‘대한민국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없다. 대부분의 시민은 미소냉전의 구조 속에서 이승만의 단독정부 수립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기 위해서 굳이 식민사관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대다수의 국민은 친일파들이 해방 후 반공주의자로 변신하여 이 나라의 역사를 굴절시킨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의 청산은 이루어져야 하며, 과거에 친일을 했던 이들이 적어도 그 사실을 고백하고 반성해야 한다고 믿는다. 

    김영삼 정권이 ‘역사 바로 세우기’에 나선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이 업적을 하필 그의 후예인 김무성 전 의원이 뒤엎으려 한 것은 매우 이상한 일이다. 워낙 퇴행적인 시도라 그 전쟁은 결국 보수의 패배로 끝났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식민지근대화론이나 반일종족주의 담론으로 시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그것으로 민족주의 사관을 이길 수도 없다. 오늘날의 민족사관은 과거의 NL 운동권 버전처럼 그렇게 조야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정경희 의원이 국회에 뉴라이트 인사들을 데려와 역사전쟁을 재개한 것은 여러모로 부적절한 일이었다.

    건국절과 국부 논쟁

    사실 이 논쟁은 아주 오래 전에 시작된 것이다. 2006년 7월 이영훈 교수는 한 신문사 기고글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 8월 15일 건국일로 규정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가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 대통령 자신은 정작 대한민국의 건국일을 1948년으로 보지 않았다. 그가 제정한 제헌헌법은 1919년의 기미삼일운동을 건국으로, 1948년의 정부수립을 ‘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들 대한국민은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하여 세계에 선포한 위대한 독립정신을 계승하여 이제 민주독립국가를 재건함에 있어서….”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뉴라이트에서 1948년을 건국일로 삼으려 하는 것은 그 이전에는 대한민국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럼 당시의 조선은 무엇이었는가? 당연히 일본제국의 일부일 수밖에 없다. 건국절을 제정하자는 제안은 결국 한일합방이 합법적이었다고 말하는 은밀한 방식일 뿐이다. 친일 전력자들에게는 솔깃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이 없었다면 친일은 매국이 아니게 된다. 나라가 있어야 팔아먹을 게 아닌가. 게다가 일본이 조선의 근대화를 도왔다는 인식이 합쳐지면 친일은 졸지에 조국 근대화를 위한 노력으로 둔갑해 버린다. 

    이런 논리적 함정 때문에 정경희 의원이 시작한 건국절 논쟁은 결국 보수를 덫에 빠드릴 것이다. 이런 이에게 공천을 줬다는 것은 통합당이 아직 뉴라이트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이리라. 물론 집권 여당의 일부 정치인들이 민족주의 이념의 편향에서 빠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청와대 민정수석이 SNS에 “죽창가”를 올리고, 집권 여당의 의원들이 친일파 파묘 법안을 발의하는 등 퇴행적 행동을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기 위해 굳이 역사수정주의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보수는 다시 김영삼 정권의 ‘역사 바로 세우기’로 돌아가야 한다. 

    국가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양아버지를 모실 필요는 없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만든 것은 ‘국부’라 불리는 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와 맞서 싸운 것은 이 땅의 백성들이었고, 북한의 침략에 맞서 싸운 것도 이 땅의 민초들이었다. 고된 노동과 아픈 희생으로 산업화를 이룩한 것은 이 땅의 노동자들이었고, 군부독재에 대항해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 역시 이 땅의 시민들이었다. 바로 그들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고, 앞으로도 그들이 이 나라를 만들어나갈 것이다. 보수가 찾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이 이름 없는 시민들의 희생과 헌신과 노력 속에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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