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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블 천문학과 이상 문학의 싱크로율 [원포인트 시사 레슨]

허블우주망원경 발사 30주년에 이상의 시를 다시 읽자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허블 천문학과 이상 문학의 싱크로율 [원포인트 시사 레슨]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서 촬영한 허블우주망원경. [미 항공우주국(NASA)]

우주왕복선 디스커버리호에서 촬영한 허블우주망원경. [미 항공우주국(NASA)]

지구 궤도를 돌면서 우주를 관찰 중인 허블우주망원경이 4월 24일 발사 30주년을 맞는다. 구경 2.4m의 반사경(가시광선용)을 장착하고 지상 560km 안팎의 고도에서 하루 15번꼴로 지구를 돌며 불철주야 우주 저 너머를 관찰하고 있는 이 우주망원경은 지금도 현역이다. 종전의 우주망원경은 고장 나면 바로 버려졌지만 허블우주망원경은 우주왕복선을 통해 다섯 차례나 수리와 정비를 받으며 관리됐기에 가능한 일이다. 

허블우주망원경의 임무를 대체할 제임스 웨브(미 항공우주국·NASA의 2대 국장의 이름) 우주망원경은 육각형 조각거울 18개를 결합해 구경 6.5m의 반사경(적외선용)을 장착했다. 또 아예 지구 궤도를 벗어나 태양과 지구, 달 사이의 중력이 0이 되는 라그랑주 포인트(지구로부터 150만km 떨어진 L2 지점)에 고착된다. 그로 인해 허블우주망원경에 비해 25배가량 더 어둡고 5배나 더 먼 거리(최대 137억 광년)의 천체까지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고장이 나면 허블우주망원경과 달리 수선이 불가능하다. 지구와 달 사이 거리의 4배나 먼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고치러 가는 데도 엄청난 돈이 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2007년이던 발사 예정 시점이 2021년까지 계속 미뤄진 이유다.


허블의 팽창우주론

허블우주망원경을 대신하게 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상상도. [NASA]]

허블우주망원경을 대신하게 될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 상상도. [NASA]]

궤도 진입 후 광학거울의 결함이 발견돼 조롱거리로 전락했던 허블우주망원경은 1993년 1차 정비 때 문제점을 수정한 이후 혁혁한 성과를 올렸다. 우주가 암흑에너지로 꽉 차 있음을 발견했고, 인류가 볼 수 있는 가장 먼 우주인 ‘허블 딥 필드’를 촬영했다. 또 태양계 밖의 외계행성을 관찰했으며, 외계생명체 흔적도 추적 중이다. 

하지만 이 우주망원경의 최대 성과는 바로 그 이름과 관련 있다. 바로 정확한 허블상수 값을 구해내고, 그럼으로써 정확한 우주 나이가 138억 년에 살짝 못 미친다는 근삿값을 끌어낸 것이다. 이는 모두 1929년 미국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1889~1953)이 제기한 ‘팽창우주론’에서 시작됐다.


에드윈 허블. [미국 더 헌팅턴 도서관]

에드윈 허블. [미국 더 헌팅턴 도서관]

당시 우주는 고정불변의 존재여야 했다(정상우주론). 하지만 그때까지 세계 최대인 100인치(2.54m) 망원경이 설치된 미국 패서디나 근교의 윌슨산 천문대 소속이던 허블은 이런 통념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수백만 광년 이상 떨어진 천체에서 오는 빛의 스펙트럼이 시간이 지날수록 빨강 쪽으로 이동하는 적색편이(red shift)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는 빛을 발하는 천체가 관측자로부터 멀어질수록 빛의 파장이 길어져 발생하는 것이었다. 허블은 이를 토대로 멀리 떨어진 천체에서 오는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것은 우주공간이 계속 팽창하기 때문이며 멀리 떨어진 천체일수록 더 빨리 멀어진다는 ‘허블법칙’을 수립했다.



허블법칙은 수학적으로 ‘V=Hr’로 표기된다. 여기서 V는 천체가 멀어지는 속도, r는 해당 천체까지 거리, H는 공간에서 우주의 팽창률을 뜻하는 허블상수다. 이 허블상수가 얼마냐에 따라 우주 나이가 달라진다. 팽창하는 우주가 최초엔 결국 하나의 점이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허블상수는 50~90km/s/Mpc으로 추정되다, 허블우주망원경의 관측을 토대로 72㎞/s/Mpc 안팎으로 좁혀졌다(Mpc는 천문학적 관측단위). 이를 토대로 우주 나이가 대략 138억 년이라는 수치가 도출된 것이다(허블법칙은 수학적으로 이를 추론한 벨기에 수학자 조르주 르메트르의 공로를 함께 기리자는 의미로 2018년부터 ‘허블-르메트르 법칙’으로 불린다).


이상의 난해시 속에 담긴 천문학

시인 이상. [소명출판사]

시인 이상. [소명출판사]

이런 허블의 팽창우주론이 식민지 조선의 천재 시인 이상(본명 김해경·1910~1937)의 시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음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를 이해하려면 경제학자인 김학은 전 연세대 교수가 2014년 펴낸 ‘이상의 시 괴델의 수’를 일독할 필요가 있다. 

서울대 공대의 전신인 경성고등공업학교를 졸업한 자연과학도였던 이상은 일본 잡지를 통해 당대 서구에서 벌어진 천문학혁명에 정통했다. 그는 19세 때 잡지 ‘조선의 건축’ 표지 공모에서 1, 3등을 차지했다. 그 3등 작은 미국 윌슨산 천문대 망원경 등장 전까지 세계 최대 망원경(72인치)이던 ‘파슨스타운의 괴물’ 형상을 단순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상의 시 ‘一九三一年’에 등장하는 ‘R靑年公爵(청년공작)’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R청년공작은 1845년 자신의 아일랜드 영지에 ‘파슨스의 괴물’을 세운 ‘로스(Rosse) 백작’ 윌리엄 파슨스(1800∼1867)일 개연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이상의 또 다른 시 ‘一九三三, 六, 一’에 ‘天秤우에서 三十年동안 살아온사람(엇던 科學者) / 삼십만 개나 넘는 별을 다 헤어놋코만 사람(亦是)’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전자는 적색편이를 발견한 미국 로웰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1875∼1969)고 후자는 27만 개의 별을 관측한 미국 하버드천문대의 에드워드 찰스 피커링(1846∼1919)이다.

서구 천문학계는 1920년부터 시작된 소우주론(우리 은하가 우주다) 대 대우주론(우리 은하 외에 다른 은하가 있다)의 논쟁으로 뜨거웠다. 파슨스와 슬라이퍼, 피커링은 대우주론자에 가까웠다. 1929년 허블의 팽창우주론은 소우주론에 대한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대우주론과 팽창우주론의 승리는 1931년 최종 확정된다. 자신의 일반상대성이론에 이미 우주의 팽창 가능성이 녹아 있다는 지적을 일축해온 아인슈타인이 우주팽창론에 무릎을 꿇고 충성서약을 한 해이기 때문이다. 그해 르메트르의 인도로 윌슨산 천문대를 방문해 허블의 강연을 들은 아인슈타인이 “내가 들었던 것 중 가장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해석“이라며 자신의 오류를 깨끗이 인정했다. 1931년은 별이 폭발하는 초신성 현상이 발견됐고 인류 최초로 외계전파가 포착됐다는 점에서 천문학혁명의 해였다. 그뿐 아니라 수학자 쿠르트 괴델(1906∼1978)이 모든 수학체계에 모순이 필연적이라는 불완전성정리를 발표한 수학혁명의 해이기도 했다.


‘13인의 아해’에 대한 우주론적 해석

'이상의 시 괴델의 수'. [보고사 출판사]

이상은 이러한 1931년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기하학, 물리학, 천문학 등 자연과학적 개념을 열두 달로 나눠 형상화한 그의 시 ‘一九三一年’에 ‘작품 제1번’이라는 부제를 붙인 이유도 거기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분석이다. 당대 자연과학의 발견을 문학작품으로 형상화하겠다는 포부, 곧 수(數)의 세계를 시의 세계로 포착해내겠다는 예술적 야망의 발현이라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十三人의兒孩가道路를질주하오’로 시작하는 이상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의 제1호 시를 들여다보자. ‘十三人의 兒孩’는 곧 ‘1930년대 천문학자들’을 말한다. 이 아이들은 막다른 골목길(길은막달은골목이適當하오)을 달린다. 막다른 골목은 우주 크기의 변화가 없다는 정상우주론과 연결된 소우주론을 상징한다. 우주팽창론과 연결되는 대우주론은 시 후반부에 등장하는 뚫린 골목(길은뚫닌골목이라도適當하오)으로 형상화된다. 이 아이들은 골목길을 달리며 모두 무서움에 떨지만 ‘무서워하는 아이’와 ‘무서운 아이’로 나뉜다. 전자가 소심한 소우주론자라면 후자는 자신만만한 대우주론자라는 해석이다. 

이런 우주론적 독해는 다른 시에도 적용된다. ‘선에 관한 각서 5(線에關한覺書 5)’에는 ‘확대하는 우주를 우려하는 자여, 과거에 살으라’는 시구가 등장한다. 또 ‘건축무한육면각체(建築無限六面角體)’ 연작시는 사각형 하늘이 무한 팽창한다는 팽창우주론을 숫자와 시로 형상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상은 현대의 우리를 능가할 정도로 통섭적 지식인이었다.






주간동아 2020.04.17 1235호 (p50~52)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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