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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가 코로나19에 무너진 이유

세계2위 고령 국가에 병원과 의료진 감축, 특유의 친밀성·개방성이 화를 키워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입력2020-03-19 10:3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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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확산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가택격리된 상황을 풍자해 소셜미디어 상에 떠도는 이미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탈리아의 모든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가택격리된 상황을 풍자해 소셜미디어 상에 떠도는 이미지.

    이탈리아의 자랑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 속 인물이 사라졌다. 자신이 십자가에 처형될 것임을 예지한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 마지막 만찬 자리를 마련하였건만 그 자리엔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코로나19로 인해 3월 10일부터 4월 3일까지 보름간 전국에 이동 제한령을 내린 이탈리아 상황에 대한 이미지 풍자였다. 보건의료 종사자와 경찰, 군인, 공무원 그리고 대중교통 종사자를 제외한 사람은 사실상의 가택격리 상황에 놓였다. 중국을 제외하곤 두 번째 이동 제한령이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중국을 제외한 코로나19 발생 주요국가의 확진자 증가세. [뉴시스]

    중국을 제외한 코로나19 발생 주요국가의 확진자 증가세. [뉴시스]

    지난해 11월 학계에 보고된 이후 코로나19는 우리에게 크게 3단계의 충격을 안겨줬다. 진원지인 중국에서 확산세는 그 압도적 규모(3월 19일 오전 기준 현재 확진자 8만928명, 사망자 3245명)로 사람들을 멍하게 만들었다. 한국에서 확산은 2월 18일 31번째 확진자가 신천지 신도임이 밝혀진 후 대구·경북 지역 신천지 신도 중심으로 우후죽순 확산으로 발등의 불이 된 공포를 안겨줬다. 이탈리아의 코로나는 뒤늦게 불붙었음에도 순식간에 한국을 따라 잡은 확산 속도와 엄청난 치사율로 세계를 경악하게 하고 있다. 

    이탈리아 확진자가 처음 보고된 것이 2월 6일(이하 현지시간)이었다. 하지만 한 달 뒤인 3월 9일 이동 제한령이 떨어질 당시 확진자는 7000명을 넘었고 사망자는 366명에 이르렀다. 3월 14일부터는 하루 확진자가 3000명, 3월 15일부터는 하루 사망자가 300명을 넘고 있다. 3월 19일 현재 확진자 3만5713명, 사망자 2978명으로 집계됐다. 

    인구 6200만의 이탈리아는 100만 명 당 확진자 수(576명)로 1위다. 2위인 스위스(379명)와 3위인 노르웨이(305명)를 훌쩍 앞지른다. 더 심각한 것은 치사율이다. 3월 19일 현재 치사율이 8.3%. 세계평균 4.1%보다 두 배나 높다. 참고로 중국의 치사율은 4%, 한국의 치사율은 1%다. 사망자 숫자만 놓고 봐도 1위인 중국과 267명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세계1위 고령국가인 일본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는 이유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코로나19의 온상이 된 이탈이아 북부 롬바르디아 지역에선 임종하는 가족 없이 병원에서 홀로 죽음을 맞거나 제대로 된 장례 절차 없이 매장되는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한다. 또 마을 주민 중 사망자가 나올 때마다 조종을 울리던 성당들이 쏟아지는 사망자를 감당하지 못해 조종을 울리는 것을 하루 한 번으로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가족 간의 유대를 중시하는 이탈리아로선 감당키 어려운 슬픔이다.

    의료진 턱없이 부족한 초고령 사회

    3월 17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노령의 환자들. [AP=뉴시스]

    3월 17일 이탈리아 북부 브레시아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기다리고 있는 노령의 환자들. [AP=뉴시스]

    지금 현재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막심한 3대 국가를 꼽으라면 중국, 이탈리아, 이란이다. 중국과 이란은 권위주의 국가여서 정책결정이나 행정이 투명하지 않다. 게다가 후생복지 수준도 낮아서 의료서비스의 질도 낮다. 

    반면 이탈리아는 G7(주요 7개국) 회원국이다. 2018년 기준 이탈리아 국민의 1인당 GDP(국내총생산)는 3만4318달러다. 한국의 3만3346달러보다 높다. 게다가 전 국민은 물론 외국인 거류자에게도 보편적 의료복지를 제공하는 나라다. 고비용 특수진료와 약제비, 치과진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한다는 소리다. 

    그런데 왜 코로나19 앞에서 종이호랑이 신세가 된 걸까. 일단 이탈리아는 고령자 인구 비중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나라다. 2019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비중이 23%로 일본(28.4%) 다음이다. 15%대인 한국은 물론 18%인 유럽연합(EU) 평균을 훌쩍 뛰어넘는다. 고령인구 비중이 7%가 넘으면 고령화사회, 14%가 넘으면 고령사회, 20%가 넘으면 초고령사회로 분류한다. 

    실제 이탈리아의 코로나19 감염 사망자는 70대 이상에 집중됐다. 이탈리자 정부의 최근 통계자료의 사망자 연령분포를 보면 80대(45%)와 70대(32%) 90대(14%) 순으로 70대 이상이 9!%를 차지한다. 통계 전문 기관인 ‘스태티스타(Statista)’의 3월 16일 기준 통계에서 확진자 중에서 70대 이상의 비율이 37.4%라는 점을 감안하면 고령자의 희생이 압도적임을 확인할 수 있다. 

    설상가상 이탈리아가 재정적자 폭을 줄이기 위해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정부 예산을 대폭 삭감하면서 의료기관과 의료진 숫자가 크게 줄었다. 이탈리아 일간 코리에레 델라 세라는 지난 5년간 문을 닫은 의료기관이 758개소에 이르며 의사 약 5만6000명, 간호사 5만 명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의료진에 대한 보수가 낮다보니 우수 인력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어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67세인 로베르토 스텔라 이탈리아 의협회장까지 코로나19 환자를 돌보며 사투를 벌이다 3월 11일 순직하는 비극까지 벌어진 이유다. 

    실제 이탈리아의 건강·의료서비스에 대한 공공지출은 GDP의 8.9%로 EU 평균 10%를 밑돈다. 그렇지만 한국(7.3%) 보다는 높다는 점에서 한국과 이탈리아가 비교 대상이 되고 있다.

    ‘0번 환자’를 찾아라

    3월 10일 이후 사실상의 가택겨리 상태에 들어간 이탈리아인들이 발코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AP=뉴시스]

    3월 10일 이후 사실상의 가택겨리 상태에 들어간 이탈리아인들이 발코니에서 서로를 격려하는 노래를 부르고 있다. [AP=뉴시스]

    친밀성을 높이기 위해 스킨십이 강한 이탈리아의 사교문화와 외국 관광객에게 개방적 문화도 코로나바이러스에게 알맞은 서식환경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처음 보는 사이에도 볼키스 인사를 나누고 친밀한 사람들과 모여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춤과 노래를 즐긴다. 비슷한 라틴계 국가인 스페인(확진자 4위)과 프랑스(확진자 순위 7위)에서도 코로나19 확산세가 급증하고 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게다가 이탈리아는 세계 5위의 관광대국이다. 세계관광기구(UNWTO)에 따르면 2018년 이탈리아를 찾은 관광객은 6210만 명으로 이탈리아 전체 인구보다 많다. 그중에 코로나19의 발원지인 중국에서 온 관광객이 10%를 차지한다. 지난해 이탈리아를 찾은 중국인 관광객은 600만 명에 이른다. 관광대국인 프랑스(1위)와 스페인(2위)이 더욱 불안에 떠는 이유다. 

    1월 31일 발표된 이탈리아 국내 첫 확진 사례도 중국 우한에서 관광 온 중국인 부부였다. 2월 6일 발표된 세 번째 확진자는 중국 우한에 살다 귀국한 이탈리아인이었다. 이후 첫 지역감염 사례가 보고된 것이 2월 21일이었지만 이미 그때는 대규모 감염에 진행됐을 것이라는 것이 보건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첫 지역감염 확진자에게 코로나를 전파한 ‘0번 환자(patient 0)’의 정체를 추적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실제 감염자 숫자가 현재 확진자 숫자의 두세 배는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치사율이 과도하게 높다는 점과 이탈리아의 검사자 규모가 한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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