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이란 신정체제 최대 위협으로 떠오른 코로나19

중동국가 중 중국과 가장 활발히 교류…중국인 관광객도 수백만 명 수준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0-03-08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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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방역요원이 테헤란국제공항에서 입국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ISNA]

    이란 방역요원이 테헤란국제공항에서 입국 승객들의 체온을 재고 있다. [ISNA]

    이란의 도시 콤(Qom)은 이슬람 시아파의 가장 중요한 성지다. 시아파는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의 후계를 둘러싸고 수니파와 대립하면서 갈라져 나온 분파다. 소수세력인 시아파가 아라비아반도에서 다수세력인 수니파의 박해를 피해 정착한 곳이 콤이었다. 8대 이맘인 이맘 레자의 여동생 파티마 마수메흐가 816년 이곳에서 사망했다. 17세기 사파비조 왕들은 파티마의 무덤 위에 황금 지붕을 씌운 사원을 지었고 이후 콤은 중요한 시아파 순례지가 됐다. 

    인구가 120만여 명인 이곳은 매년 이란 전역은 물론, 중동 각국에서 수백만여 명의 시아파 신자가 순례를 위해 방문한다.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140km 떨어진 콤에는 이란 전체 신학교의 90%가 밀집해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을 주도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도 이곳 신학교에서 공부했다. 호메이니는 혁명에 성공한 후에도 콤에 머물면서 이란을 통치했다.

    이란 코로나 집단감염지 ‘콤’

    이란 소방대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소방호스로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 [ISNA]

    이란 소방대원들이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소방호스로 소독제를 뿌리고 있다. [ISNA]

    콤이 졸지에 코로나19 ‘진앙지’가 되면서 이란은 물론, 중동 각국에서 순례에 나선 시아파 신자들까지 대거 감염되고 있다. 키아누시 자한푸르 이란 보건부 대변인은 “코로나19에 처음 감염된 환자는 대부분 콤 시민이거나 콤에 순례를 다녀온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 접촉한 사람들”이라며 콤을 진원지로 지목했다. 실제로 첫 코로나19 사망자가 나온 것은 2월 19일로, 콤에 거주하는 무역업자였다. 이란 정부는 1월 31일 중국을 오가는 모든 직항 여객기의 운항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렸지만, 이 사망자는 다른 지역을 경유해 중국으로 출장을 다녀왔다. 이 사망자가 언제 어떻게 코로나19에 감염됐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상당 기간 일상생활을 했고, 이 때문에 코로나19가 크게 확산됐다. 

    이 무역업자가 사망한 지 닷새 만인 2월 24일까지 이란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은 모두 12명이었다. 이때부터 이란은 중국 이외에 코로나19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가 됐다. 게다가 공식 발표와 달리 이란 정부가 사망자와 확진자를 은폐하는 등 통계를 조작한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란 혁명수비대 출신으로 콤이 지역구인 아마드 아미라바디 파라하니 의원은 2월 24일 “콤에 250명 넘는 확진자가 격리 수용됐다”며 “특히 사망자 수가 50명에 달한 것은 2월 13일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했던 코로나19 방역 실무책임자인 이라즈 하리르치 보건부 차관이 다음 날 확진 판정을 받기도 했다. 

    이란은 현재 ‘중동의 우한’이라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무하마드 미르모함마디 국정조정위원회 위원(장관급)이 사망했다. 국정조정위원회는 이란 국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호세인 하메네이를 보좌하고, 중장기 국가정책을 입안하며, 최고지도자 유고 시 임시지도부 구성을 주도하는 핵심 기관이다. 마수메 엡테카르 부통령을 비롯해 고위지도자들과 모하바 졸노르 의원, 마흐무드 사데기 의원 등 국회의원 23명과 성직자들이 줄줄이 감염됐다. 



    이란 코로나19 사태의 특징은 치사율이 높다는 것이다. 이란의 치사율은 2월 말 20%에 달했다 최근 5.5%로 줄어들었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최근 영국 BBC 페르시아어 방송은 이란에서 코로나19로 2월 27일까지 최소 21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치사율이 높은 이유는 제대로 치료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란은 인구 1000명당 의료기관 병상 수가 1.5개로 공공의료체계가 열악한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의 강력한 대이란 제재조치로 의약품과 의료기기가 부족한 실정이다.

    밀접 접촉 확률 높은 예배 방식

    이란 수도 테헤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거닐고 있다(위). 이란 의료진이 테헤란 한 병원에서 환자들의 검사 결과를 보고 있다. [ISNA]

    이란 수도 테헤란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거리를 거닐고 있다(위). 이란 의료진이 테헤란 한 병원에서 환자들의 검사 결과를 보고 있다. [ISNA]

    이란에서 이처럼 확진자가 급속히 늘어나는 이유는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의 예배 방식 때문이다. 무슬림은 많은 사람이 서로 몸이 닿을 정도로 바닥에 촘촘히 앉아 예배를 보기에 밀접 접촉 확률이 높다. 이란 정부가 2월 28일부터 수도 테헤란을 비롯한 콤 등 주요 도시에서 중요한 종교행사인 금요 대예배를 취소한 것도 그래서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탄생한 이슬람 공화국에서 금요 대예배가 중단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또 코를 비비면서 악수하는 인사법도 문제다. 게다가 현 집권세력이 2월 21일 치른 총선 승리에만 집착하는 바람에 코로나19 방역대책에 소홀했을 뿐 아니라 의도적으로 확진자 발생 사실을 외면해온 것도 원인이라 할 수 있다. 

    이란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늘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교역 등 중국과 밀접한 경제협력 때문이다. 이란은 중국의 전통적인 우방이자, 미국의 대이란 제재로 경제적으로나 정치·외교적으로 친중 국가다. 특히 이란은 경제적으로 중국에 상당히 의존해왔다. 미국 정부가 2018년 5월 대이란 제재를 재개하기 전인 2017년 중국은 이란의 전체 수출액 1074억 달러(약 127조4516억 원) 가운데 31%를 차지했다. 2위 인도(19%), 3위 한국(13%)을 합친 것에 맞먹는 비중이다. 또 이란의 2017년 전체 수입액 544억 달러(약 64조5565억 원)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율은 37%로 2위 한국(8.1%), 3위 독일(6.5%), 4위 터키(6.3%), 5위 인도(6.2%)를 합친 것보다도 많다. 

    미국의 경제제재 이후 중국에 대한 이란의 경제 의존도는 더욱 심화돼왔다. 이란 무역업자들은 중국 각 도시를 방문해 생필품 등 각종 제품을 대규모로 수입해 자국뿐 아니라 중동 시아파 국가들에 되팔아왔다. 이란에는 중국 대도시 직항노선뿐 아니라 소도시들을 운항하는 저비용항공편도 있다. 이란 정부는 외화 수입을 늘린다는 목표로 지난해 7월 중국인 관광객을 유치하고자 3주간 체류할 수 있는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기도 했다. 이란 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6월까지 석 달간 이란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은 203만 명이나 됐다. 게다가 이란 정부의 조치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더욱 늘어나는 추세를 보여왔다.

    이란은 중국의 중동 진출 교두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ISNA]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웃으며 악수하고 있다. [ISNA]

    물론 중국도 이란의 천연가스와 원유 등을 대규모로 수입할 뿐 아니라, 각종 인프라 사업에 거금을 투자해왔다. 중국 수출입은행은 이란 테헤란과 동북부의 제2 도시 마슈하드를 잇는 926km의 철로를 전철화하는 사업에 15억 달러(약 1조7800억 원) 차관을 제공했다. 중국 국영기업 중국철로공정총공사(CREC)도 테헤란과 콤, 이스파한을 잇는 18억 달러 규모의 고속철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런 사업들에서 일하는 중국인 노동자 수도 수만 명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또 반미국가인 이란을 자국 편으로 끌어들이고 중동지역 진출의 교두보로 적극 활용하고자 정치·외교·군사 분야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란 고위지도자들과 장관을 비롯해 관리들도 중국을 수시로 드나드는 등 밀접하게 교류해왔다. 이란 고위지도자들이 대거 코로나19에 감염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 정부는 뒤늦게 2월 27일부터 중국인의 입국을 전면 금지하는 조치를 내렸다. 특히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혁명수비대와 군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구는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한 전시대비체제에 즉각 돌입하라”고 명령했다. 이란 정부가 국가비상체제를 가동한 이유는 코로나19 사태로 자칫하면 신정체제가 무너질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혁명수비대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본부를 설치하는 등 모든 병력을 동원하고 있다. 준군사조직으로 150만 명의 대원을 보유하고 있는 바시즈 민병대도 의료진과 함께 30만 개의 팀을 꾸려 ‘가정 방문 검진’에 나서고 있다. 이란의 총인구는 8000만여 명이고, 가구수는 2420만여 개다. 중국 정부도 이란에 마스크는 물론, 코로나19 진단키트 등 의료장비를 대규모로 무상 지원하고 있다. 중국은 이란에 병도 주고 약도 주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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