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정현 의원 “정치판 갈아엎고 전문가와 청년 중심의 포괄 정당 세우자”

“건더기 상했는데 국물만 바꿔와…이제는 국솥 뒤집어엎는 근본적인 정치개혁 나설 때”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9-11-23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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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무소속 이정현 의원이 오랜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출신으로 보수정당의 불모지와도 같던 호남에서 재선(비례대표 포함 3선)에 성공한 그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위해 총대를 멜 태세다. 이 의원의 얘기는 간명했다. 정치꾼 말고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와 대한민국 미래를 짊어질 청년 세대에게 과감히 기회를 주자는 것, 그리고 이를 위해 더는 정치에 발을 들여놓지 않을 사심 없는 원로그룹이 중심을 잡고 중장년 세대가 병풍 역할을 자임하자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고속도로를 건설할 때 공사판 십장 노릇을 중장년 세대가 한다면 고속도로가 완성된 후에는 청년 세대가 미래를 향해 내달릴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 현역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현역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을 두고 ‘우국충정’이라는 시각에 동의하기 어렵다. 개인의 사적인 선택이 정치 쇄신을 위한 헌신일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현역의원의 차기 총선 불출마는 자신이 꿰차고 있는 자리를 다른 이가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 않나. 

    “몇몇 정치인의 불출마 선언에 따른 제한적 정치 쇄신으로는 근본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국민 눈높이를 전혀 충족할 수 없다. 불출마는 지극히 개인적인 선택으로, 사적 영역에 속한다. 반면, 정당 공천은 당 지도부가 어떤 인물을 국민에게 선보여 선택받을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이 담긴 공적 영역이다. 무엇보다 총선은 유권자 선택에 따라 당락이 갈린다. 실상이 이런데도 몇몇 정치인의 사적인 불출마 선언이 마치 당 지도부와 유권자의 영역인 공천 및 당락에 영향을 미칠 정치 쇄신 행위인 양 떠받들어지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정치개혁의 일부분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몇몇 개인의 선택에 따른 정치개혁으로는 한계가 있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전면적인 정치개혁이다. 나라를 다시 세운다는 심정으로 정치판을 바꾸라, 정치를 근본부터 바꾸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에 응답하는 길

    이 의원은 정치개혁을 국그릇을 뒤집어엎는 것에 비유했다. 

    “지금까지는 ‘국이 상했다’며 국물을 40~50%만 바꿔왔다. 그런데 그 정도로는 도저히 정치가 변하지 않는다. 국그릇에 담긴 건더기가 상했는데 국물만 바꿔온 것이다. 이제는 국솥을 통째로 뒤집어엎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하다.” 



    총선 때마다 40~50%의 정치신인이 국회에 입성했지만 정치개혁을 이루지 못한 만큼, 이제는 정치판 자체를 새로 짜는 개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것은 자연스럽게 양당제 폐해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과 자유한국당(한국당) 둘 중 하나를 고르라니까 30~40%의 정당 지지율이 나오는 것이다. 국민 선택지가 제한돼 있기에 나오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제5공화국 때는 민주정의당과 민주한국당 둘 중 하나를 고르라 하니 어쩔 수 없이 골랐지만, 2·12 총선 때 신민당이 생겨난 이후 결과가 어떻게 됐나. 신민당 돌풍이 일어나지 않았나. 정치개혁을 해낼 수 있는 올바른 선택지를 국민에게 제시하는 것이 국민의 정치개혁 요구에 응답하는 길이다.”

    이 의원은 “민주당과 한국당 중심의 정치판을 통째로 바꿔야 한다”며 “이제는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테크노크라트가 정치권에 대거 들어와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고쳐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 우리 국회가 어떤지 아나. 한미, 한일 외교가 파탄 날 지경인 지금 국회에 외교관 출신 의원이 한 명도 없다. 그뿐 아니라 국제정치에 밝은 전문가조차 없다. 외교 현안이 발생하면 신문에 난 사설 수준의 얘기를 하는 게 국회의 현주소다.” 

    이 의원은 20대 국회가 안고 있는 한계를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국제 흐름을 읽고 외교안보의 맥을 짚을 전문가가 없는 것도 문제지만, 4차 산업혁명이 코앞에 닥친 지금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고 법안을 만들어 예산을 배정하려는 의원이 국회에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다. 대한민국 미래를 준비할 4차 산업혁명 전문가도 국회에 대거 들어와야 하는 것 아닌가. 국민이 요구하는 정치개혁은 지금까지 해온 그저 그런 사람이 아닌, 각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재가 대거 국회에 들어가 대한민국 미래를 준비하라는 것이다.”

    정치권 밖 새로운 세력이 정치개혁 추동해야

    [지호영 기자]

    [지호영 기자]

    테크노크라트가 자신의 전문성을 살릴 수 있는 정치를 역설한 이 의원은 미래세대인 청년 중심의 정치도 강조했다. 

    “지금 국회에서는 20대와 30대가 자신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는 발언권이 없다. 국민건강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보장성을 크게 강화한 결과를 젊은 세대가 떠안을 수밖에 없는데 그런 결정을 막기 위한 발언권이 젊은이에게는 없는 것이다. 국회에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의원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도 미래에 대한 투자가 아닌, 현 정부의 입맛에 맞게 선심 쓰듯 하는데, 이것에 제동을 걸지 못하고 있다. 내년 총선에서는 미래 세대가 대거 국회에 들어와 자신들의 미래를 지킬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의원은 “세계를 무대로 맹활약하는 젊은 세대가 정작 국내 정치에서는 소외되고 있는 현실을 이번 기회에 확 바꿔야 한다”고 역설했다. 

    국회 구성을 바꾸려면 무엇보다 정당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정당 공천을 받아야 본선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으니…. 

    “정치를 혁명적으로 바꾸려면 기존 정당으로는 안 된다. 정치권 밖에서 새로운 세력이 정치개혁을 추동해야 한다.” 

    정치권 밖에서 국민의 신망을 받는 정치세력을 만든다? 

    “사심 없이 국가 장래를 걱정하는 원로그룹이 앞장서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전직 총리와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국정 경험이 있는 원로그룹이 자신들의 경험을 토대로 정치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나라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할지 정치개혁의 방향을 잡고, 50대와 60대 중장년층이 고속도로를 낼 때 공사판 십장 역할을 자임하는 것이다. 원로그룹과 중장년층이 만들어놓은 정치개혁의 고속도로를 20, 30대 청년세대가 대거 달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

    40대 이하로만 180명 공천

    이 의원은 “국회의원에 입후보할 수 있는 25세부터 29세까지는 국회의원 정수의 10%인 30명 정도를 공천하고, 30대와 40대를 대거 공천해 40대 이하로만 국회의원 정수의 60%인 180명을 공천하면 정치혁명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기존 정당들이 청년세대 몫으로 한두 명 구색 맞추기 정도로 공천했던 것을 확 뜯어고쳐 청년이 앞장서고 장년층이 뒷받침하며 원로가 중심을 잡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출현해야 기성 정치권 중심의 판을 갈아엎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가능할지 모르지만 현실성이 있을까. 

    “새로운 정치를 바라는 젊은 세대와 그들을 도우려는 중장년층, 원로그룹이 결합한다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참여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의원은 새로운 정치세력은 “진보와 보수를 구분 짓지 않는 포괄 정당을 지향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가 제3의 길을 제시해 집권에 성공한 것은 보수당이 노동당의 정책을 받아들여 포괄 정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미국 민주당도 공화당의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여 집권했다. 독일 기독교민주연합, 프랑스 사회당, 심지어 일본 자유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세계 각국 정당들이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좋은 정책을 받아들여 포괄 정당으로 거듭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김종필, 박태준 등 보수 인사들과 손잡고 포괄 정당으로 거듭난 이후에 국정을 맡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얘기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보육료를 높이고 노령연금을 올린 것은 포괄 정당으로 변해야 국민의 삶을 바꿀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앞으로 정치는 진보와 보수를 모두 다 끌어안는 ‘캐치올’ 정당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진보와 보수로 나뉘어 소모전만 계속한다면 아무것도 진척시킬 수 없다. 전혀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정당끼리 진보니 보수니 서로 싸우는 것이 도대체 국민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포괄 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그의 주장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과연 현실화될 수 있을까. 사심 없는 원로그룹이 방향을 잡고, 중장년층이 병풍 역할을 자임한 뒤 젊은 세대가 앞장서 대한민국 미래를 설계하는 정치가 이 의원 한 사람의 꿈에 그칠지, 아니면 정치개혁의 맹아가 돼 새봄에 활짝 꽃을 피울지 지켜볼 일이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꿈에 그치지만, 여럿이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되기도 한다. 뜻을 세운 사람이 그 뜻에 동의하는 동지를 규합해 세력을 형성하면 다수 국민이 일정 기간 그 세력에게 자신들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이 대의민주주의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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