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닥치고’ 개혁에 “5共보다 퇴행” 대반격

  • 김종민 변호사  ·  전 대검 검찰개혁위원회 위원

    입력2019-11-23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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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무 - 검찰 수사권 갈등 파열, 검찰은 반격 카드 꺼내

    • 정치권 ‘청부’ 가능한 수사 보고 절차에 ‘윤석열’ 검찰 진노

    • 맹목적 검찰 무력화, “중대 범죄 수사하지 말라는 말?”

    • 공수처는 대통령 직속 사찰기관으로 변질 위험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11월 8일 청와대 본관 집현실에서 열린 ‘공정사회를 향한 반부패정책협의회’에 참석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법무부와 검찰의 대립 양상이 심상치 않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사퇴 이후 법무부가 주도하는 검찰개혁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면서 심각한 갈등으로 비화하는 분위기다. 법무부는 조 전 장관 일가에 대한 검찰 수사를 계기로 검찰개혁을 더는 미룰 수 없다는 입장인 반면, 검찰은 법무부의 개혁안이 조 전 장관 수사에 대한 보복이자 검찰을 무력화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검찰 운명을 가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법안과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이 12월 중 국회 처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가운데 논란을 불러일으킨 법무부 검찰개혁 드라이브의 실체와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청와대 수사 개입 문 열어두는 단계별 수사 보고

    공수처 설치와 검경 수사권 조정을 중심으로 추진되는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은 종전과 다른 양상을 보인다. 법무부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과 지방검찰청의 4개 반부패수사부를 제외한 전국 41개 직접수사 부서 폐지 방안을 내놓은 뒤, 주요 사건의 단계별로 검찰총장이 사전에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방침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기 위한 과거의 제도 개선과는 질적으로 다른 방향이다. 더구나 법무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청와대에 들어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2차례에 걸쳐 직접 지침을 받은 김오수 법무부 차관의 지휘 아래 진행되고 있고, 대검찰청과 사전 협의도 없이 법무부 ‘검찰개혁 추진지원단’과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금 검찰 내부에서는 청와대발(發) 검찰개혁의 정치적 중립에 대해 의구심을 걷어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검찰개혁의 의도와 배경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검찰 안팎에서는 검찰개혁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에 전략과 목표가 없고, 구체적 방안이나 절차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아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중요 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을 검찰총장이 사전에 법무부 장관에게 단계별로 보고하도록 ‘검찰보고사무규칙’을 개정하겠다는 방안이다. 검찰보고사무규칙은 제5공화국 시절인 1981년 검찰 통제를 강화하고자 제정됐다. 이 규칙은 중요 사건에 대해 각급 검찰청의 장이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에게 동시에 보고하거나 특별한 사유가 있을 경우 먼저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3월 대검찰청 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보고사무규칙이 제5공화국의 검찰 통제를 강화하고 법무부 장관의 검찰 수사 관여를 가능하게 만든 제도라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지휘는 반드시 서면에 의하도록 하고, 각급 검찰청의 장은 검찰총장에게 중요 사건의 수사 상황을 보고하되 필요하면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도록 규칙 개정을 권고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에 법무부가 검찰보고사무규칙을 개정해 중요 사건의 단계별 수사 상황을 검찰총장이 법무부 장관에게 사전 보고하도록 하려는 것은 이러한 권고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자, 제5공화국보다 퇴행하는 개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검찰총장이 중요 수사 상황을 사전에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문제되는 이유는 정치권력의 수사 개입을 공식화함으로써 검찰 수사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이 훼손되고 ‘검찰청법’에도 정면으로 위배되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는 수사 기밀 유지가 가장 중요한데, 검찰총장이 사전에 수사 상황을 법무부 장관에게 보고하는 것이 제도로 굳어진다면 정권과 집권여당의 권력형 비리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또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만 지휘하도록 규정한 검찰청법 제8조에도 위배된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검찰청법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일을 법무부가 추진한다고 격노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수사 상황 보고가 검찰에 대한 법무부 장관의 민주적 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검찰의 정치적 예속을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2013년 프랑스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법무장관의 검찰 수사지휘권을 전면 폐지한 것도 정치권력의 검찰 수사 개입이라는 끊임없는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검찰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였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검사인사권을 행사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으로부터 수사 상황을 보고받고 검찰 수사에 직접 개입할 수 있게 된다면 선거 범죄나 권력형 비리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질지 극히 의문이다.

    ‘조폭’, 권력형 비리, 경제범죄 수사 위축 우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뉴시스]

    윤석열 검찰총장(왼쪽)과 김오수 법무부 차관. [뉴시스]

    전국 검찰청의 직접수사 부서를 4개만 남기고 41개를 전격적으로 폐지하기로 한 것도 문제가 심각하다. 그동안 검찰의 직접수사로 문제가 생기기도 했지만, 권력형 비리와 중대 범죄를 효율적으로 수사해 형사사법 정의 실현과 부패 척결에 기여한 성과도 적잖다. 따라서 검찰청 직접수사 부서를 폐지하더라도 순기능은 살리고 부작용만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검찰의 직접수사권을 축소 또는 폐지하려면 두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프랑스와 독일처럼 경찰에 대한 검찰의 실효적 수사지휘권을 강화해 준(準)사법기관으로서 사법 통제 기능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의 형사사법 제도는 독일과 같은 대륙법 체제의 모델에 따라 사법적 권한을 행사하는 행정 기능을 검찰에 부여했다. 이는 공익과 인권 보호를 위한 장치다. 따라서 검찰의 수사권 폐지도 이 같은 제도와 기능의 범위에 있어야 한다. 검찰의 소추권을 완전히 박탈하고 법무부의 하부 기관으로 위상을 재정립하려면 개헌과 관련 법 개정을 통해 사법체제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 둘째, 국가 차원에서 권력형 부패 범죄 등 중요 범죄에 대한 수사 역량이 결코 훼손돼서는 안 된다. 

    그런데 법무부의 검찰개혁안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의 수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는 것이라 검찰의 수사지휘와 사법 통제 기능 강화가 전혀 없다. 현재 검찰이 담당하는 중요 범죄 수사 기능을 대체하기 위한 대안 역시 하나도 마련된 것이 없다. 대안 없이 진행하는 검찰청 직접수사 부서 폐지는 중대 범죄에 대한 국가적 대응 역량만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버닝썬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바와 같이 경찰은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대신하기에 역부족이다. 공수처가 신설되더라도 대통령 직속 사찰수사기구라는 성격 때문에 결코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대신할 수 없다. 국민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국가적 중대 범죄를 수사하는 검찰 기능의 약화에 동의한 바는 결코 없다.

    검찰 무력화 겨냥하다 교각살우 위험

    아무런 대안 없이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폐지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부패공화국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고, 주가 조작 같은 경제범죄와 조직폭력배도 활개를 칠 테다. 기업 범죄도 더욱 기승을 부릴 개연성이 높다. 검찰 공공수사부(옛 공안부)를 없앨 경우 당장 내년 총선의 선거 사범 수사가 문제될 수 있다. 폐지 대상에는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범죄수익환수부도 포함되는데, 법무부가 범죄 억제의 가장 효과적 수단인 범죄수익 환수를 포기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법무부의 검찰 직접수사 부서 폐지 방침은 아무런 정책적 타당성이 없을뿐더러, 무책임한 검찰 무력화 방안에 불과하다. 검찰의 직접수사 기능을 축소 또는 폐지하더라도 단계적으로 해야 하고, 법무부 소속의 특별수사기구를 설치해 이관함으로써 국가적 차원의 중대 범죄 수사 역량이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문재인 정부가 진정 의도하는 검찰개혁은 무엇일까. 국민을 위한 검찰개혁이라고 하지만, 개혁의 상징인 공수처는 고위공직자 부패와 상관없는 직권 남용이나 공무상 비밀 누설 같은 범죄까지 수사 대상으로 하는 대통령 직속 사찰수사기구로 변질될 위험성이 크다. 헌법상 아무런 설치 근거도 없으면서 헌법에 근거를 둔 검찰보다 우월적 지위를 갖게 하는 위헌적 규정도 적잖다. 일제 잔재와 유신정권 및 제5공화국의 유산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개혁 대상이 돼야 할 경찰이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독자적인 수사권을 갖게 된다면 통제받지 않는 정보와 수사가 결합된 무소불위 권력으로 재탄생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개혁이 공수처와 경찰을 이용해 중국식 공안통치 체제를 만들려는 것이라고 의심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형사사법 제도는 국가의 핵심 인프라다. 국가 발전을 위한 법과 제도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람이 없다. 검찰개혁은 미래지향적이고 발전적인 국가 개혁이어야 하고, 국가의 인프라 혁신을 위한 시스템 개혁이어야 한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는 오직 검찰 무력화만을 목표로 개혁을 밀어붙이고 있고, 검찰의 운명은 중대한 기로에 섰다. 법무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은 검찰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가득하다. 정권에 대한 검찰의 예속을 심화하고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을 해치는 제도적 개악은 결코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될 수 없다. 쇠뿔을 바로잡으려다 소를 죽이고 마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할 수 있다.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은 고쳐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가 인프라와 법치주의의 근간을 하루아침에 무너뜨린다면 검찰의 반발은 물론, 국민적 저항을 초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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