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9

2015.10.19

푸치니 오페라와 멜로드라마의 만남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이민자’

  • 한창호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5-10-19 14: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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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뉴욕을 대표하는 감독으로는 우디 앨런이 가장 유명한 것 같다. 그는 자신의 문제작을 거의 다 뉴욕에서 만들었다. ‘맨해튼’(1979)이 대표적이다. 앨런이 묘사하는 뉴욕은 중산층이 주로 사는 맨해튼 센트럴파크 부근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앨런처럼 뉴욕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는 최근작 ‘이민자’(2013)까지 다섯 편의 영화를 모두 뉴욕에서 찍었다. 그레이의 뉴욕은 앨런의 그것과 대조된다. 그는 맨해튼이 아니라 브루클린 같은 주변 지역에서 영화를 만든다. ‘이민자’가 처음으로 맨해튼을 배경으로 했다. 그런데 시대적 배경이 1920년대인지라 도시 풍경은 그의 영화들에서 봤던 하층민 지역과 별반 다르지 않다. 황량하고 가난하다. 그레이는 늘 이런 지역에 사는 주변인의 삶을 그려왔다(그 자신은 러시아계 유대인 후손이다).

    사랑의 틀에서 보자면 ‘이민자’는 한 여자와 두 남자 사이 삼각관계를 그린 멜로드라마다. 폴란드에서 막 이주한 에바(마리옹 코티야르 분), 그의 보호자이자 착취자인 포주 브루노(호아킨 피닉스 분), 그리고 에바의 낭만적 연인인 마술사 에밀(제레미 레너 분)이 주인공이다. 에바는 건강 문제로 이민 당국에 억류된 동생을 구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브루노는 에바를 사랑하지만 그의 이 약점을 이용해 매춘을 시킨다. 어서 돈을 벌어 행복한 삶을 살자면서 말이다. 에바는 보호자이자 착취자인 브루노에게 애증의 감정을 갖고 있다. 반면 에밀은 에바에게 백장미를 선물하며 ‘사랑의 줄행랑’을 호소한다. 당장 먹고살 형편도 안 되면서 말이다. 말하자면 브루노와 에밀은 현실(돈)과 이상(사랑)을 상징하는 인물로 에바 주변에 머문다.

    오페라에도 하층민이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가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한 이런 오페라를 ‘베리스모’(진실주의라는 뜻)라고 부른다. 그 선두에 자코모 푸치니가 있다. 그의 작품 ‘라보엠’ 속 지독하게 가난한 예술가들, ‘토스카’의 혁명주의에 사로잡힌 정치범들을 통해 푸치니는 하층민의 애환뿐 아니라 사회 부조리까지 성찰케 하면서 베리스모를 전파했다. 이러한 푸치니 오페라는 그레이의 멜로드라마와 겹친다. 그래서인지 그레이는 푸치니의 음악을 자기 영화에 이용하곤 한다. ‘투 러버스’(2008)에선 푸치니의 ‘마농 레스코’를, ‘이민자’에선 ‘제비’를 테마음악으로 썼다.

    ‘제비’의 내용도 삼각관계다. 고급 매춘부, 그의 보호자, 그리고 젊은 연인 사이의 이야기다. ‘이민자’의 삼각관계와 엇비슷하다. 두 작품 모두 멜로드라마의 공식이 그렇듯, 연인의 사랑은 결실을 맺지 못한다. 사회적 부조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 태도도 두 작품의 공통점이다. ‘제비’에선 한때 매춘부였던 신분이, ‘이민자’에선 생존을 위협하는 돈의 결핍이 사랑을 가로막는다.



    에바는 브루노의 구속을 끊고 에밀과 함께 ‘가난한 거리’를 떠나고 싶다. 그럴 수 없음을 알고 에바가 체념의 미소를 띠고 있을 때 ‘제비’의 유명한 이중창 ‘어떻게 나를 버릴 수 있나요’가 연주된다. 그 순간은 에바의 체념이 대다수 관객의 가슴에 자기 연민의 파장을 불러일으킬 때다.

    푸치니 오페라와 멜로드라마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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